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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중국의 외교전략에서 본 APEC

입력
2014.11.1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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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ㆍ태평양경제협력체(APEC)와 같은 주요 다자회의가 열리면 여러 나라의 외신 특파원들과 통화할 기회가 많이 생긴다. 그들의 질문들을 듣다 보면 각 나라의 배경과 국익에 따라 관심분야도, 또 같은 사건을 보는 시각도 많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예를 들어 유럽의 한 외신 북경특파원은 중국이 일본과의 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가 커다란 당혹감을 느끼게 만든 반면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와는 우호를 과시한 점에 다소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질문을 이어갔다. 러시아의 행동이 당면한 위협으로 인식되고 동북아의 정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유럽인들의 정서를 기사에 반영해 보려는 시각이다. 반면 한국정부는 한ㆍ중 FTA, 한ㆍ중ㆍ일 정상회담 제의, 한ㆍ뉴질랜드 FTA 관련 이슈에 촉각을 곤두세웠고, 한국사회는 중ㆍ일의 만남에서 보여준 시 주석의 굳은 표정과 미ㆍ중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언급한 대목에 높은 관심을 표했다.

여러 관련국들이 각각의 시각으로 APEC을 평가하지만 그 중 공통되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APEC을 전후로 나타났던 중국의 변화된 모습이었다. 즉 이번 APEC을 통해 한국이 놓쳐서는 안 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부분은 중국의 외교가 경제발전 중심에서 향후 다가올 미ㆍ중의 양강구도를 준비하는 전략적 변화가 점점 더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중국은 1978년 덩샤오핑이 개혁ㆍ개방 정책을 실시한 이후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경제 발전’을 국가 최고 목표로 삼아왔으며, 외교 정책은 이를 지원하는 것을 중심으로 수립돼 왔다. 특히 80년대 말 냉전의 시기가 끝나며 국제질서가 요동칠 때도 덩은 조용히 힘을 기르며 때를 기다리라는 ‘도광양회’와 아직은 힘이 부족하니 국제사회(당시는 제3세계)에서 우두머리가 되지 말라는 ‘부요당두(不要當頭)’ 등을 국가 외교정책의 근본으로 삼고 발전중심의 외교를 펼쳐왔다. 하지만 APEC 회의를 전후로 나타났던 중국의 모습은 이제는 외교전략에 변화가 있음을 숨기기 어려운 지경이다.

우선 중국은 APEC이 시작되자 중ㆍ일 정상회담을 통해 역내 정치문제를, 한ㆍ중 회담에서는 한중 FTA를 체결하며 역내 경제문제를 다루는 지역리더로서의 이미지를 만들어갔다. 이어 미ㆍ중 정상회담에서는 국제사회의 당면한 현안들을 다루며 미국과 대등한 ‘책임대국’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일본과 미국과의 만남에서는 때를 기다리며 인내하는 중국의 모습보다는 이제는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듯한 인상이 강했다. 심지어 모든 나라가 조공을 바치러 중국에 온다는 뜻인 ‘만방래조(萬邦來朝)’라는 표현이 중국 관영언론에 나타나 중국내부에서조차 논란이 있을 정도였다.

또한 중국은 그간 미국이 유럽과 이끌어온 국제통화기금(IMF), 일본과 주도해온 아시아개발은행(ADB)에 대응해 브릭스 국가들과 손잡고 ‘신개발은행(NDB)’, 현재까지 22개국이 참여하는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AIIB)’의 설립을 추진 중이다. 게다가 이번 APEC에서 중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에 맞서는 ‘아ㆍ태 자유무역지대(FTAAP)’ 설립의 로드맵을 주도적으로 통과시켰다. 이미 신흥경제국과 개발도상국의 입장을 대변하기 시작한 중국은 국제기구의 우두머리로 나선 것은 아니지만 이들 그룹의 중요한 리더로서의 역할은 분명히 해내고 있다.

만약 중국이 미ㆍ중 양강구도 외교로 전환하는 모습이 본격적으로 나타난다면 한국은 안보(미국)와 경제(중국)를 나누어 비교적 용이하게 미ㆍ중 사이에서 국력신장과 경제발전을 이루던 시대와 이별하게 된다. 이슈별로 정치, 안보, 경제의 요인들이 뒤섞이며 미ㆍ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는 현상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아직 중국의 국력 부상이 충분치 않고, 미국의 국력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동안 한국은 역내에서 미ㆍ중 사이의 협력을 강화하는 전략적 고리의 역할을 빠르게 확립해 나가야 한다. 일본과는 다른, 즉 미국과는 동맹을, 중국과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조화롭게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

김한권 아산정책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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