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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곡성’이 그리운 ‘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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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곡성’이 그리운 ‘마더!’

입력
2017.10.1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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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더!' 포스터. 균열이 가득한 얼굴은 극 중 마더(제니퍼 로렌스)의 불안한 미래를 암시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마더!' 포스터. 균열이 가득한 얼굴은 극 중 마더(제니퍼 로렌스)의 불안한 미래를 암시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이 리뷰엔 영화 ‘마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마더!’의 포스터를 멀리에서 보면 배우 제니퍼 로렌스 얼굴이 마네킹처럼 보인다. 포토샵 수정을 한 듯 주름 없이 반들반들해 보여서다. 착시다. 가까이에서 보면 그의 얼굴은 ‘사막’이다. 그물처럼 갈라진 피부는 생명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한 번만 손대면 부서질 듯 위태롭다. 그런 그의 눈엔 눈물이 흐른다.

12일 개막한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공식 초청된 ‘마더!’가 13일 국내 언론시사회에서 베일을 벗었다. 포스터처럼 영화엔 반전이 펼쳐진다. 초대하지 않은 손님들의 연이은 방문에 평화로워 보이는 부부의 삶엔 균열이 생긴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거리낌 없이 집으로 들이는 남편(하비에르 바르뎀)에 그의 아내(제니퍼 로렌스)는 속이 썩는다. 집 안에선 담배 피우지 마라는 얘기를 듣고도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입에 물고 집에 흠집을 내는 사람들과 그들을 부처님 가운데 한 토막처럼 포용하는 남편. 부부의 집을 찾아온 손님의 가방엔 남편의 사진이 들어 있다. 시인인 남편의 팬이란다. 도대체 어떤 인연일까. 아내는 요령부득이다.

영화 '마더!'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마더!'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스릴러의 외피를 입은 영화엔 종교적 화두가 똬리를 틀었다. 남편은 임신한 아내가 초대하지 않은 손님들에게 폭행당하는 걸 지켜보면서도 무뢰한들을 내치지 못한다. 악순환이 반복되며 집은 멍들고, 아내는 무너진다.

상영 내내 이름이 한 번도 불리지 않는 남편의 이름은 ‘힘(HIM)’이고, 아내의 이름은 ‘마더(Mother)’다. 자신을 믿는다(팬)는 이유로 불청객을 내치지 못하는 남편은 ‘신’이고, 그들에게 무참히 짓밟히는 아내는 ‘자연’이다. 아내가 지키는 집은 지구. 영화엔 성경적 은유가 겹겹이 쌓여 있다. 마더의 당부를 무시하고 들어가지 말라는 힘의 방에 들어가는 불청객 노부부와 결국 힘이 아끼는 구슬을 깨고 마는 남성은 에덴동산에서 사과를 깨문 아담처럼 보인다.

명장이 되고 싶은 걸까. 대런 애러노프스키 감독은 ‘마더’에서 영화적 은유로 중무장을 한 채 성경으로 인류의 근본적인 문제를 들춘다. 용병술은 여전히 흥미롭다. 애러노프스키 감독은 ‘엑스맨’과 ‘헝거게임’ 시리즈로 전사 이미지가 강한 로렌스에게서 불안을 포착해 배우에게 새 옷을 입혔다. ‘할리우드 엄친딸’ 내털리 포트먼에게서 욕망과 강박(‘블랙스완’)을 끌어 낸 캐릭터 변주는 그의 영화적 볼거리 중 하나다.

끝나면 허한 게 문제다. 넘치는 은유와 복선보다 주제가 평이해 되레 김이 빠진다. 힘을 너무 줬다. 영화 후반엔 부부의 집에서 인종과 종교 문제로 인한 테러까지 벌어진다. 비현실적 기괴함으로 끌고 온 비극에 현 인류의 문제를 얹혀 주제(인류의 잔혹함)를 환기하는 방식이 너무 직접적이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갑자기 무서운 윤리 교사에게 수업을 받은 기분이랄까. 판타지로 흘렀던 영화는 다큐멘터리로 급변해 조급하게 문을 닫는다.

영화적 흥미가 부족한 걸 무거운 주제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지루하진 않지만 스릴러로서의 긴장감은 떨어진다. 마더가 맞이할 결말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고, 주제에 닿기까지 복선과 은유가 쉽게 노출된다.

애러노프스키 감독은 ‘레퀴엠’ 등 전작에서 환각으로 인간의 비극을 표현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다. 그의 영화적 상상력은 인간의 이중성을 백조와 흑조로 표현한 ‘블랙스완’에서 빛을 발했다. 그의 파격은 어디로 갔을까. ‘마더’는 ‘할리우드판 곡성’이라 불릴 만큼 ‘곡성’과 주제의 결이 비슷하다. ‘곡성’처럼 관객을 끊임없이 의심하게 하고 현혹하는 극적인 미끼를 만들지 못한 게 함정이지만. 19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부산=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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