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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의 시 한 송이] 연두가 되는 고통

입력
2017.05.18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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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는 나뭇잎을 아삭아삭 갉아먹었어요. 나뭇잎에게는 궁지이고 벌레에게는 긍지인 시간이었을까요. 둘만 알 일이죠. 나뭇잎은 나무에서 떨어져 나왔죠. 나뭇잎 스스로가 택한 것인지는 알 수 없죠. 벌레가 갉아먹은 나뭇잎은 하늘을 보게 하는 창이 되었죠. 격투의 흔적은 하늘의 것인지도 모를 일이죠.

초록 옆에 파랑이 있다면 무지개, 파랑 옆에 보라가 있다면 멍이라 하지요. 무지개는 태양의 반대쪽에 비가 내리고 있을 때 나타나지요. 갉아먹고 갉아먹은 곳에 나타나는 것을 새잎이라고 하지요. 무지개의 마지막은 보라지요. 멍이지요. 그래서 궁지는 행복보다 더 행복한 곳, 흉터는 신비보다 더 신비한 곳이지요.

떨어진 나뭇잎에 눈길이 가요. 벌레가 갉아먹은 나뭇잎으로 하늘을 보고 싶어요. 나뭇잎 하나를 집어든 사람에게 새잎 나고 새잎 나요. 새잎은 무지개처럼 옮겨가요. 무지개에 멍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요. 시인과 촌장의 ‘풍경’이라는 노래에 이런 부분이 나오지요. 세상 모든 풍경 속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 자리로 돌아오는 풍경. 연두가 되는 고통. 기적처럼 연두의 물결이 시작되었어요.

이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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