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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식의 세상만사] 독선은 언제나 악(惡)이다

입력
2017.05.18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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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출범으로 사회 분위기 일변

‘유쾌한 영부인’ 등 소통능력 끌어올려

극성 지지자의 일탈이 찬물 끼얹어서야

역시 문제는 정치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열흘도 안 돼 사회 분위기가 일변했다.분노와 낙담이 걷힌 자리에 기대와 희망이 자라고 있다.

문 대통령의 소탈한 풍모에 더해 ‘유쾌한 영부인’이 국민의 친근감을 불렀다. 덧붙여 파격과 균형이 빛난 일련의 ‘열린 인사’도 한몫을 했다. 정의당에 몸담았던 피우진 예비역 중령의 보훈처장 임명을 백미로 꼽을 만하다. 파란만장한 그의 이력 자체가 ‘여성 수난 극복사’라면, 보훈처장 취임은 그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이호철 양정철 최재성 등 오랜 심복들의 잇따른 ‘2선 후퇴’도 보기 좋았다.

문 대통령은 안정감도 보여 주었다. 취임 직후 4강 정상과의 통화로 새로운 리더십의 수립을 알린 데 이어 4강에 특사 파견으로 오랜 외교 공백을 메웠다. 북한의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직후 상황보고를 받고 즉각 국가안보회의를 소집, 대응태세를 점검한 것도 국민의 안보 불안을 덜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의 역사적 자리매김을 향한 대통령의 진심과 그에 대한 국민적 공감이, 참석자 전원이 제창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타고 나라 전체에 번져 나간 5ㆍ18 기념식에 이르기까지 순조롭지 않은 게 없다.

그러나 세상 일이 순조로울 수만은 없다. 햇빛이 밝으면 그늘이 짙고, 좋은 약도 부작용(副作用)이 있다. 맨 먼저 고개를 든 게 이른바 ‘문빠’의 과도한 공격성이다. 개인적으로 ‘노빠’나 ‘문빠’라는 표현에 거부감을 느낀다. ‘태극기 할배’에 가슴이 답답했어도 ‘틀딱’이란 말은 싫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이나 세력, 집단의 행동을 비난할 수는 있어도 그들을 너무 멀리 밀어내다 보면 결국 반대 쪽의 좁은 공간, 상식과 거리가 먼 경계지로 자신의 의식을 몰아넣을 것이기 때문이다. “튀어야 사는 세상”이라는 말이 무성하고, 실제로 그런 좁은 공간을 적극적으로 선택해 나날이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기자로서, 특히 30년 넘게 중도지 기자로서 살아온 사람으로서는 그럴 이유가 없다. 그래서 ‘극성 지지자’란 말로 바꿔 쓰고 싶다.

문 대통령 극성 지지자들의 존재는 해묵었지만,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안희정 충남지사에 보낸 ‘댓글 폭탄’으로 그 존재감과 위력을 본격적으로 보였다. 대선 때는 가수 전인권씨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지지했다가 이들의 공세에 시달렸다. 문 대통령의 취임 이후 이들의 공격성은 수그러들기는커녕 더 날카로워졌다. 오마이뉴스나 한겨레신문, 미디어오늘 기자를 공격해 일부 공개 사과까지 얻어냈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진보 어용지식인’선언에서 이들의 의식 일단을 엿볼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에 만족해 ‘수호 책무’에 소홀했다가는, 무엇보다 우군으로 여겨 온 진보매체가 언론 본연의 비판 기능에 흐르도록 놔두었다가는, 보수세력에 빌미를 주어 ‘참여정부의 불행’이 재연될 수 있다는 경계심이 핵심이다.

괜찮다. 특정 진영의 핵심 수호자가 되든, 진영 독자의 논리와 역사관에 충실하든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게 자유민주주의다. 다만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남에게 압력을 행사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언어 폭력을 포함한 그런 압력이야말로 민주주의와 그 불가결한 요소인 언론자유의 오랜 적이다.

한국일보 창간 사주인 백상(百想) 장기영이 남긴 명구(名句) 가운데 지금도 귀에 쟁쟁한 말이 있다. “신문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신문은 누구도 이용할 수 없다.” 언론은 국민 누구의 뜻이든 대변해야 하지만, 결코 특정 세력을 대변하지 말라는 뜻이다. 문 대통령이 야당 지도자에서 국민의 지도자가 된 지금, 극성 지지자는 언론을 이용할 ‘누구나’가 아니라, 이용해서는 안 될 ‘누구도’이다.

가수 전씨가 5ㆍ18 기념식에 초청돼 왕년의 운동가요 ‘상록수’를 부른 것은 극성 지지자의 잘못에 대한 문 대통령의 에두른 사죄다. 이로써 문 대통령은 이번 사태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다했다. 극성 지지자들의 자숙만이 남았다.

주필 ysh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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