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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인형병원 찾는 어른들 "추억을 치료해 주세요"

입력
2018.03.28 04:4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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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인형 병원’ 토이테일즈에서 직원들이 망가진 인형을 살펴보고 있다. 배우한 기자
서울 강남구 ‘인형 병원’ 토이테일즈에서 직원들이 망가진 인형을 살펴보고 있다. 배우한 기자

“우리 예삐 잘 치료해주세요.”

서울 강남구 한 ‘병원’에 예삐가 입원했다. 어깨 한쪽과 목 부분이 심하게 찢어진 상태였다. 혹여 진찰하다 추가적인 문제가 발견되면 그 또한 치료해달라는 편지도 들려 있었다. 이윽고 수술이 시작됐다. 병원 ‘의사’들은 천과 단추, 그리고 재봉틀을 가지고 능숙하게 예삐를 고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낡고 해진 예삐는 새 인형으로 다시 태어났다. ‘인형병원’에서 매일같이 벌어지는 일과다.

망가진 인형을 새것처럼 고쳐주는 인형병원을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어린 시절 잠자리에서 껴안았던 인형을 추억하는 어른들이 주 고객이다. 80대 할머니부터 10대 고등학교 남학생도 있다. 이곳으로 들어오는 인형은 한달 100개, 상담은 200~300건에 달한다. 개가 물어뜯은 인형 얼굴을 복원해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병원은 더 유명해졌다.

실제 국내 유일 인형병원인 토이테일즈 사무실에는 수많은 인형 환자들이 치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솜이 빠져 몸통이 찌그러진 곰돌이부터, 반려견에 의해 팔 한쪽이 뜯겨져 나간 녀석까지 부상 유형도 다양했다. 남들에게는 헝겊쓰레기에 불과해 보여도, 주인들에게는 가족처럼 소중한 존재다. 이들이 원래 인형 가격보다 훨씬 비싼 돈(수십만 원대)을 내고 치료를 부탁하는 이유다. 자신 상반신만한 수면인형을 들고서 토이테일즈를 방문한 이모(38)씨는 “항상 껴안고 자던 인형이라 정이 들어 가지고 왔다”고 했다. 인형과 함께 수리를 잘 부탁한다는 신신당부가 담긴 편지를 주거나, 인형이 배고파 하면 먹이라며 요구르트 한 병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인형만 20년째 다루고 있는 김갑연 대표는 “흠집 없는 새것처럼 고치는 게 능사가 아니라, 원래 가지고 놀던 그대로 복원해줘야 고객들이 만족한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가지고 놀 때 인형 머리가 조금 찌그러져 있었다며, 멀쩡히 고쳐진 인형의 솜을 울면서 빼낸 사람도 있었을 정도다. 이런 일을 수없이 겪었다는 김 대표는 항상 인형 수리 문의가 들어올 때마다 어느 정도까지 손을 볼 것인지 하나하나 꼼꼼히 따지게 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인형 수리는 힘들고 까다롭지만, 불평하는 직원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말끔히 고쳐진 인형을 들고서 행복해 하며 집에 가는 고객들을 볼 때마다 보람을 느껴서다. 토이테일즈에서 인형 수리를 가장 오랫동안 전담해온 이수민(54)씨는 “인형을 고쳐줘서 고맙다며 케이크를 보내준 사람도 있었다”며 “한 달 가까이 인형 하나만 수리했던 적도 있고, 인형 눈알이 1㎜ 차이로 잘못 꿰매졌다며 항의를 받기도 있지만, 고객들이 고맙다며 인사해 줄 때마다 얻는 기쁨으로 계속 일하고 있다”고 했다.

인형병원을 찾는 어른들은 앞으로 많아질 전망이다. 김 대표는 “미국 등 서구 국가에서 자란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가지고 놀던 인형에 큰 애착을 가지고, 자녀들에게 자신의 인형을 물려주기도 한다”라며 “국내에도 이런 문화가 시나브로 퍼지면 인형병원 수요가 더 늘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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