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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은 어떻게 여성 탄압과 혐오의 도구가 됐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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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은 어떻게 여성 탄압과 혐오의 도구가 됐는가

입력
2015.11.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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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의 정치학

박이은실 지음

동녘ㆍ272쪽ㆍ1만5,000원

“그 날이냐?”

언쟁 중 종종 튀어나오는 이런 질문은 여러모로 공격적이다. 네가 화가 난 이유는 지당한 다른 탓이라기보다는 ‘네가 여성, 즉 월경을 하는 동물이라서’라는 비난이라는 점에서, 또 월경을 비정상적인 히스테리의 원인인 양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그런데도 이런 인신공격은 적잖은 대화에서, 여러 극의 대사에서 발견된다. 인류는 언제부터 월경을 마땅히 신경질적인 것, 드러내놓고 말해선 곤란한 것으로 여겨 왔을까?

‘월경의 정치학’(동녘) 은 월경 터부의 역사를 인류학적, 비교종교학적, 지식사회학적, 문화경제학적으로 분석한 연구서다. 저자 박이은실 박사는 몸, 성, 사랑, 소득과 주체성 등을 연구해온 여성학자로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연구위원이자, 현재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교과위원이다. “오랫동안 여성의 몸은 덮이고(베일), 잠기고(정조대), 주물 틀에 넣어지고(코르셋), 뒤틀리고(전족), 조형되고(성형) 때로는 인간을 생산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돼(대리모)”왔음을 고민해온 그는 월경을 둘러싼 10년 간의 문제의식을 담아내기 위해 다양한 자료 분석과 리서치를 망라했다.

2003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에서 열린 제5회 월경페스티벌 ‘백여백색(百女百色)’에서 참가자들이 월경을 공론화하는 전시물을 걸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3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에서 열린 제5회 월경페스티벌 ‘백여백색(百女百色)’에서 참가자들이 월경을 공론화하는 전시물을 걸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저자는 월경이 “생물학적 존재로서 여성을 규정하는 대단히 중요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대와 문화권에서 금기로 여겨졌음에 주목한다. 고대 서양에서는 월경을 죽음에 이르는 독극물, 죽음의 징후, 인간이 되려다 만 물질로 여기고 여성에 대한 배제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고대 로마의 자연학자 플리니는 월경혈이 ‘포도주를 상하게 하고, 철을 무뎌지게 하며, 개를 미치게 한다’고 믿은 나머지 “월경 중인 여성들이 고기 간을 하거나 농사일, 포도주 및 맥주 주조에도 참여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던 것. 월경을 ‘오염원’이나 ‘모호한 것’으로 여기는 사회도 있었지만 이를 ‘긍정과 해방’으로 여겨 과도한 의미를 부여한 사회도 있었다. 월경혈이 밀밭의 생식력을 북돋는다거나 상처 치유에 효과적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여러 토속신앙과 종교에서도 “월경 중에는 귀신이 가까이 오지 않는다”는 등의 황당한 신념들을 양산했다.

월경에 대한 별난 관심은 과학의 시대에 와서도 “성적 분리를 유지시키거나 강화”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소위 월경증후군(PMS) 진단이 “월경 중 일어나는 갖가지 부정적 측면들을 여성 일반의 문제로 보편화하고, 여성들이 중요한 결정을 내릴 위치를 차지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여성의 능력을 폄하하는데” 이용된다는 것이다.

“과학은 생리를 처방과 약으로 다스려야 하는 상태라고 생각하도록 가르쳤다. 과학의 이름으로 월경의 주술적 마력이 제거되고 모종의 오염상태에서 벗어나게 되었지만 그 대신 여성은 한 달에 한 번 비정상적 상태 혹은 열등한 상태로 존재하는 인간이 되었다.”

책은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정치와 일상을 가로지르며 월경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돌아보는 동시에 이를 둘러싼 페미니즘의 고민과 논쟁을 꼼꼼하게 소개한다. 저자는 월경이 부정적으로, 혹은 긍정적으로 포장되는 두 경우 모두 억압과 통제의 개연성이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월경하는 몸이 더럽다고 여기든, 생식 기능을 발휘함으로써만 가치 있다고 축하 받든, 여성을 ‘통제될 수 있는 유순한 몸’으로 규정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저자는 “어떠한 의미도 구구절절 붙어 있지 않은 상태”의 추구가 오히려 해방적 전략이 되지 않겠냐”고 반문한다.

‘그대로 존재하게 하자’는 저자의 묵직한 일갈은 숱한 일상을 돌아보게 한다. 불과 수 년 전 한 목회자는 학생들에게 “어디 기저귀 찬 여자가 강단에 오르냐”며 여성 목사 안수 반대의 궤변을 피력했고, 생리대를 구입하는 일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편치 않다. 여성의 몸을 남성의 가계를 잇고 새 노동력을 생산하는 도구쯤으로 여기면서도, 정작 월경 임신 출산을 거듭하는 동료를 골칫거리로 여기는 정서는 지금 여기에도 만연하다. 도대체 여성의 몸은 당신에게 무엇인가. 뾰족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일독을 권한다.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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