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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북핵, 위기 관리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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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북핵, 위기 관리의 시대

입력
2017.09.15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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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 개발에서 보유로 넘어가는 단계

폐기 노력보다 위기 관리가 당장 중요

조급증 대신 인내로 北 변화 유도해야

클린턴 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윌리엄 페리는 대북정책 조정관을 맡아 1999년 북한을 방문한 뒤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미국은 북한 정부를 우리가 그랬으면 하고 바라는 모습으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다루는 정책을 펴야 한다”. 제재와 대화를 반복하면서 끌어 온 북핵 문제는 지금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시험 발사와 수소폭탄 실험이라는 현실에 도달해 있다. 이대로라면 북한이 미국을 포함해 거의 전 세계 어디든 타격할 수 있는 전략핵무기를 손에 넣을 날이 멀지 않았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한미일을 위시한 국제사회가 수십 년 목표였던 북핵 폐기를 북한이 핵폭탄을 장착한 ICBM을 실전 배치하기 전까지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페리가 말한 ‘있는 그대로‘의 북한은 지금 핵무기 개발국에서 핵무기 보유국으로 바뀌는 전환점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두 차례 북핵 위기를 거쳤고, 대화를 통해 한때 북핵 폐기를 끌어내는 듯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결국 실패였다. 아직 더 강력한 수단이 있다고는 하지만 갖은 제재도 소용이 없었고, 관련국들이 똘똘 뭉쳐 북핵을 저지해야 한다고 노래를 불렀지만 복잡한 이해 관계로 그마저 온전하지 못했다.

이는 조만간, 아니 지금부터라도 북한을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시리아, 리비아가 아니라 러시아나 중국, 인도나 파키스탄처럼 다루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 두 그룹의 사이에 가지고 있던 핵무기를 모두 폐기한 우크라이나 같은 사례가 있긴 하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옛 소련의 일원으로서 배치되었던 핵무기를 나중에 포기했지, 자력으로 개발한 무기를 버린 게 아니었다. 자체 개발한 핵무기는 지금까지 감축한 경우는 있어도 완전 포기한 사례가 없다. 그렇다고 북핵 폐기가 불가능해졌다고 단언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것이 지난 수십 년간보다 더 어려워졌다는 건 분명하다. 대북 정책의 초점을 북핵 폐기보다 북한과의 돌발적 전쟁을 막는 위기 관리로 옮겨 가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미국 핵 전문가 스콧 세이건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CISAC) 교수의 최근 ‘포린 어페어스’ 기고를 참고할 만하다. ‘한국 미사일 위기’라는 글에서 그는 미국이 러시아와 중국의 핵무기 개발을 막으려다 결국 실패한 사례를 상기시키며 “미국 정부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 저지에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부터 중요한 것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같은 돌발적 핵전쟁 임박 상황의 재연을 막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는 지금 상황이 그때보다 더 위험하다고 봤다. 쿠바 위기 때는 전쟁으로 돌진하자는 미소 군부를 케네디와 흐루시초프가 통제하는 리더십을 발휘했지만 지금 트럼프와 김정은은 오히려 전쟁을 부추기는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인내하면서도 확고하고 방심하지 않는 봉쇄”가 결국 “소련을 해체하거나 점차 유연하게 만들 것”이라는 ‘미소 냉전의 설계자’ 조지 케넌의 1947년 대소련 전략을 언급하면서 세이건은 이렇게 글을 맺는다. “북한 역시 자신의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약점 때문에 무너질 때까지 미국은 경계하고 또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

세이건의 ‘인내’란 물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시간만 보내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때로 압박하면서 끊임없이 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그 결과 북미가 갈등하면서 가까워질 수도, 남북이 인도적인 차원의 대화와 협력을 복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동서 냉전이 그랬던 것처럼 큰 문제가 풀릴 때까지는 긴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 사이에 중요한 것은 인내할 줄 아는 여유와 위기를 관리하는 리더십이다. 실익도 크지 않은 전술핵 논란이 불거져 여론마저 거기에 솔깃해 하는 것을 보면서 아직 사람들이 조급하기만 했지 인내의 시간을 맞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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