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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27명에 새 삶 주고 떠난 여고생 김유나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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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27명에 새 삶 주고 떠난 여고생 김유나양

입력
2016.01.27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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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미국 애리조나에서 등굣길에 교통사고를 당하고 뇌사 판정을 받은 김유나(19)양이 전 세계 27명에게 장기기증을 했다. 사진은 김유나양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 21일 미국 애리조나에서 등굣길에 교통사고를 당하고 뇌사 판정을 받은 김유나(19)양이 전 세계 27명에게 장기기증을 했다. 사진은 김유나양의 모습. 연합뉴스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세계 각국의 27명에게 새 생명을 나눠준 19살 여고생의 사연이 뒤늦게 알려져 감동의 물결이 일고 있다.

27일 유족 등에 따르면 미국의 한 크리스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김유나양은 지난 21일(한국시간) 오전 1시 등굣길에 여동생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 다른 차와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는 중상을 입었다.

이후 24일 새벽 미국 의료진이 김양에게 뇌사판정을 내렸다. 김양의 부모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딸의 평소 성품으로 볼 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을 것"이라며 장기기증을 결정했다.

26일 오전 6시부터 시작된 장기이식을 통해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각국에서 무려 27명이 새 삶을 얻게 됐다.

심장, 간, 폐 등의 주요 장기는 7명에게 피부와 각막 등의 주요 인체조직은 20명에게 이식된다.

주요 장기 이식 대상자 중에는 어린 꼬마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관계자는 "다른 국가에까지 장기와 인체조직을 기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사례"라며 "장기는 대부분 자국 내에 기증되고 인체조직의 경우 보관했다가 해외에 보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유나양의 장기와 조직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미국 내 장기기증협회를 통해 가장 적합한 기증 희망자에게 전달된다고 유족들은 전했다.

김양의 유족은 "유나는 순수하고 밝은 아이"였다"며 "사고나기 얼마 전 어머니와 이모들 대신 외할머니를 6개월간 투병해 병원에서 보호자로 인식했을 정도"라며 고인을 기렸다.

김양은 제주가 고향이며 제주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시신은 미국에서 화장해 다음주쯤 고향에 온다.

장래 꿈은 항공기 승무원이 돼 세계를 누비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했다.

그러나 교통사고로 김양의 소망은 이룰 수 없게 됐지만 전 세계 27명이 김양의 도움으로 자신의 소망을 이룰 기회를 얻게 됐다. 뉴시스

지난 21일 미국 애리조나에서 등굣길에 교통사고를 당하고 뇌사 판정을 받은 김유나(19)양이 전 세계 27명에게 장기기증을 했다. 사진은 김유나양이 4학년 당시 일기장. 연합뉴스
지난 21일 미국 애리조나에서 등굣길에 교통사고를 당하고 뇌사 판정을 받은 김유나(19)양이 전 세계 27명에게 장기기증을 했다. 사진은 김유나양이 4학년 당시 일기장. 연합뉴스

사랑하는 내 딸 유나야.

엄마는 네가 세상에 없다고 믿지 않는단다. 새 생명을 갖고 다시 태어난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어.

지난 21일 새벽 미국에서 네가 등굣길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

'1%의 기적이 생기더라도 식물인간이 될 가능성이 커요.'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말에 머릿속이 정말 하얘지더구나. 무작정 올라탄 비행기 안에서 혹시나 하는 두려움 그리고 희망.

유나야! 유나야! 힘내! 왜 네게 이런 고통을 주시는지. 아직 19살, 앞으로 살아갈 시간이 많은데 엄마, 아빠 동생들을 두고 그렇게 바삐 갈려고 하는지….

예쁜 유나. 사랑스러운 유나. 항상 앞좌석만 타고 가다가 웬일로 그날 뒷좌석에 앉았어. 동생 대신 착한 네가 다쳤나 보다. 동생을 지키려고 네가 그랬나 보다.

그리고 뇌사상태에 빠져 산소호흡기를 단 네 모습을 보면서 자꾸만 이런 생각이 들더구나.

뇌병변을 갖고 힘들게 사는 17살 소녀 기사를 봤었지. 그 소녀 아이는 뇌사상태가 되자 신자인 아버지가 생활도 어려운 형편에서 딸아이 장기기증을 선택해 여러 명의 사람에게 새 생명을 줬다는….

엄마는 두렵다. 너를 두고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지. 하느님의 뜻일까. 평소 '하나님의 도우미로 살고 싶다'던 네 마음을 이렇게 하나님이 결정해주신 건 아닐까.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내리기 힘든 결정을 했단다. 어제 수술대에 오른 너의 모습이 마지막이었지.

그리고 심장과 피부, 폐, 간, 췌장, 뼈 … 그리고 너의 사랑스러운 눈까지.네 심장으로 다른 사람은 숨을 쉬고 살아갈 수 있겠지. 네 눈으로 어떤 이는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겠지. 엄마는 그걸로 충분하단다.

네가 어릴 적 초등학교 4학년 때였지. '제가 죽으면 지옥에 있을까요? 천국에 있을까요?'하고 썼던 일기장. 넌 천국에서 누구보다 빛나는 천사가 돼 있을 거야.

성당 가는걸 좋아했던 네가 부활의 삶을 제대로 실천하는구나. 너는 27명의 전 세계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을 주고, 다시 태어나는 거야. 그동안 고생했다. 이제껏 잘 커 줘서 정말 고맙고 또 감사해.

유나야! 19년이란 짧은 인생이었지만 행복했지? 엄마 늘 널 위해 기도한단다. 사랑한다 유나야.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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