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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칼럼] 국방 의무는 서민 몫인가

입력
2015.08.3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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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 본인과 아들 군 면제 높아

젊은 세대 건강한 안보관 안 부끄럽나

‘치킨 호크’ 많은 사회에 평화는 요원

이기택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을 둘러싸고 여야가 대립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7일 이 후보자가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는 모습. 오대근기자 inliner@hankookilbo.com
이기택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을 둘러싸고 여야가 대립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7일 이 후보자가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는 모습. 오대근기자 inliner@hankookilbo.com

무관심 속에 지나갔지만 이기택 대법관 후보자는 병역을 면제받았다. 시력 때문이라는데 자료는 제출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국회 청문회에서 별다른 추궁이 없었다. 일부 의원은 “눈이 아직도 안 좋다더라” “자료는 나중에 제출해도 된다”며 거들었다. 몇 달 전에도 유사한 장면이 있었다. 100만 분의 1이라는 로또 확률로 군 면제 혜택을 받은 황교안 국무총리도 관련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기록이 폐기돼서 없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는데도 그냥 넘어갔다. 병역 면제는 총리가 되는 데 아무런 장애 요인이 되지 못했다.

언제부턴가 고위공직자 병역 면제를 관대히 넘기는 풍토가 형성됐다. 제기된 의혹이 수두룩하다 보니 묻혀가기도 하고 초록이 동색인 국회의원들이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탓도 있다. 더 큰 이유는 공직자 병역 미필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임명하는 최고 권력자의 무신경과 불감증이다. “병역 면제는 고위공직자 필수코스”라는 비아냥이 나온 게 오래 전인데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국회 인사청문회 도입 이후의 국무총리 가운데 절반이 병역 면제자다. 노무현 정부의 초대 내각 병역 면제율은 26.6%, 이명박 정부는 28.5%, 박근혜 정부는 20%다. 일반인의 면제율이 2%(19세 징병검사 기준)인 것과 비교하면 10배 이상 높다. 여기다 석연치 않은 사유로 보충역 판정을 받거나 이병, 일병 제대자를 포함하면 비율은 훨씬 높아진다. 고위공직자 가운데 정상적인 군 복무자를 찾기 쉽지 않으니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

본인들 뿐만 아니다. 고위공직자와 국회의원의 아들과 손자들도 병역 이행률이 일반인보다 훨씬 낮다. 서울신문이 지난달 4급 이상 공직자 직계비속의 병역이행 실태를 조사한 결과, 만 20~25세 대한민국 남성의 현역 비율(90.9%)보다 6.2% 포인트 낮았다. 국회의원 직계비속의 경우는 11.7%포인트나 낮았다. 우리 사회 지도층이 대를 이어 병역 특혜를 받고 있다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남북한 대치 국면에서 젊은 세대의 달라진 안보의식이 크게 부각됐다. 전역을 연기한 병사들과 “언제든지 불러만 달라”는 예비역들의 인터넷 글에 칭찬이 쏟아졌다. 집단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우선할 걸로 알았던 2030세대의 투철한 안보관에 가슴 뭉클했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박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전역 연기신청 병사들을 격려하는 자리를 가졌다.

하지만 젊은 세대의 희생과 헌신 뒤에 안주하려는 기성세대의 안이함과 무책임에 대한 지적은 없었다. “전쟁 불사”라는 구호 뒤에 따라올 젊은이들의 눈물과 고통, 공포와 불안은 생각하지 않았다. 분노가 치미는 건 이런 분위기 확산에 정부와 지도층이 앞장서는 모습이다. 본인과 자식들은 국방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서민들에게만 떠맡기는 듯한 행태는 후안무치하다.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에서 ‘치킨 호크(chicken hawks)’란 말이 유행했다. 겁 많은 병아리면서 겉으로는 매인 척한다는 뜻인데 군 복무를 하지 않은 전쟁광을 비유했다. 베트남전 참전군인으로 부시 행정부의 전쟁 도발에 반대한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인 척 헤이글은 이렇게 말했다. “이 나라를 전쟁으로 몰고 가려고 안달하는 지도층 다수는 전쟁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 그들은 책상에 앉아 머리로 전쟁에 접근한다.”

젊은 세대에게 신성한 국방 의무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지도층에게서 ‘치킨 호크’가 연상된다. 2010년 천안함 사건 때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긴급 소집됐다. 8명으로 구성된 NSC 위원 중 이명박 대통령을 포함해 4명이 병역 미필자여서 조롱이 쏟아졌다.

남북 고위급 회담 타결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수직 상승했다. 원칙의 승리라는 상찬이 쏟아진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합의에 다다랐지만 남북 두 지도자가 ‘강 대 강’ 대치 국면을 고집했다면 한반도는 우발적 충돌 상황으로 휘말려들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가장 나쁜 평화는 가장 좋은 전쟁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군대도 안 갔으면서 호전적으로 치닫는 지도층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평화는 요원하다.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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