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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출판사는 책 메시지와 안 맞아" 저자가 먼저 제안

입력
2015.06.19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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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헤이북스는 없는 게 참 많다. 사무실이 없고 직원도 없고 자본력도 없다. 출판계 인맥도 없을 뿐 아니라 인지도도 없다. 출발한 지 1년이 채 안 된 1인 독립출판사 헤이북스는 이제 책 2권을 출간했다. 이런 출판사가 장하성 교수의 ‘한국 자본주의’를 출간했을 때 사람들은 꽤나 의아해했고 내게 쏟아지는 질문은 한결같았다. 내가 어떻게 거물급 저자를 섭외할 수 있었는지, 왜 저자가 이런 듣보잡 출판사에서 책을 냈는가였다. 쏟아지는 이 질문에 대답하면서 헤이북스와 첫 책 ‘한국 자본주의’의 탄생은 더욱 더 견고한 이유를 갖게 됐다.

나는 지난 13년간 직원 10여명의 작은 홍보대행사 대표였다. 홍보용 책자를 제작하는 것이 주 업무였는데 소신을 갖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것이어서 정말 신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점차 대형 대행사들이 이 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부터 회사는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차별화된 전략과 아이디어를 갖고 최선을 다해도 화려한 실적과 조직을 확보하고 있는 대형 대행사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는 쉽지 않았다. 나의 아이디어와 열정은 엄청난 분량의 회사소개서와 맞붙어볼 경쟁의 기회조차 얻기 어려웠다.

몇 가지 이유로 회사의 대표 자리를 내놓게 된 순간, 홍보용 책자를 만들면서 오랫동안 염원하던 출판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까지 나에겐 단 한 편의 원고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즈음 한국의 자본주의에 대해 시대와 사회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책으로 엮을 계획을 세우고 오랫동안 원고를 쓰고 있던 장하성 교수가 당신의 책을 나의 첫 책으로 출간하길 제안했다. 그러나 자금이나 조직은 물론 출판경력도 없는 신생출판사가 ‘열정과 최선’만 갖고 대형조직과 경쟁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뼈저리게 경험한 나는 정중히 사양했다. 장하성 교수는 “내가 쓰고 있는 책은 한국의 정의로운 자본주의에 대한 것입니다. 정의로운 자본주의는 열정을 갖고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작은 기업이나 창업자가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대형출판사를 거절하고 헤이북스를 선택하는 이유입니다”라고 답했다. 이후 수십 차례의 회의를 하며 원고를 완성하고 편집을 해가는 과정은 그 어떤 경험과도 비교할 것이 없을 정도로 치열했다. 출판을 준비하는 과정의 에피소드와 책이 출간된 이후 울고 웃던 좌충우돌 사건들은 모름지기 단행본 한권쯤은 족히 될 이야깃거리다.

첫 책을 집필한 저자와 첫 책을 출간한 신생출판사가 만나 탄생한 ‘한국 자본주의’가 작년 12월 한국일보의 제55회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듣고 주저앉아 눈물을 펑펑 쏟았던 것은 단순히 기뻐서만은 아니었다. ‘듣보잡’ 취급도 받았고 ‘이 책으로 뻔뻔하게 출판연습을 하는 것이냐’는 비아냥거리는 소리도 들어야 했지만 작은 출판사 헤이북스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가 헤이북스에게 준 것은 ‘용기’였으며 ‘기회’이자 ‘책임감’이기 때문이다.

윤미경ㆍ헤이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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