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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슬'의 무대 동광마을 큰넓궤 참극과 헛묘

입력
2018.03.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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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넓궤를 찾은 동광리 희생자 유족들.
큰넓궤를 찾은 동광리 희생자 유족들.

제주4ㆍ3항쟁이 70주년을 맞고 있다. 4ㆍ3을 얘기할 때 많은 분들이 제주 조천읍 북촌리를 떠올린다. 암울한 시기 4ㆍ3을 세상에 알린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의 무대인 북촌리는 하루 만에 400명 가까이 희생된 곳이다. 하지만 제주도 대부분의 마을마다 4ㆍ3의 아픈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중 하나가 서귀포 안덕면 동광리다. 영화 ‘지슬’의 무대로 더욱 유명해진 마을이기도 하다.

한라산 중턱에 위치한 동광리는 약 300년 전에 관의 침탈을 피해 숨어든 사람들이 화전을 일구며 정착한 곳이다. 조선 후기 제주지역 대표적인 민란이었던 임술년 무장봉기, 방성칠난, 신축년 항쟁에 이르는 과정에서 주도적으로 활약한 마을이기도 하다. 4ㆍ3 당시 일대에는 현재의 동광육거리를 중심으로 무등이왓(130여호)ㆍ조수궤(10여호)ㆍ사장밧(3호)ㆍ간장리(10여호)ㆍ삼밧구석(45호) 등 5개 자연마을이 있었다. 하지만 1948년 11월 중순 중산간마을에 대한 토벌대의 초토화 작전이 벌어지면서 마을은 모두 파괴되고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됐다. 이후 동광초등학교를 중심으로 한 간장리만 복구돼 주민들이 거주하고, 4곳은 잃어버린 마을로 변해 대나무 숲 널려있는 집터만이 남았다. 4ㆍ3으로 무등이왓에서 약 100명, 삼밭구석에서 약 50명, 조수궤에서 6명이 희생됐다.

삼밧구석 위령탑
삼밧구석 위령탑
삼밧구석
삼밧구석

동광마을이 더욱 주목을 받는 것은 그 참혹함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소위 ‘잠복 학살’이다. 1948년 12월 11일 토벌대는 일대에서 대대적인 수색작전을 벌여 체포된 주민 11명을 학살한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희생자의 가족들이 시신을 수습하러 올 것이라 여겨 근처에 잠복했다가 다시 19명을 붙잡아 불에 태워 생화장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들 중 12세 이하 어린이가 12명이었고, 나머지도 모두 부녀자와 노인들이었다.

무차별적인 학살이 자행되면서 주민들은 더 깊숙한 곳으로 숨어야만 했는데, 대표적인 곳이 큰넓궤다. 큰넓궤는 동광목장 안에 있는 용암동굴로 1948년 겨울 동광 주민들이 40~50일 집단으로 은신생활을 했다. 당시 이 굴에서 120여명이 피난생활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큰넓궤는 험한 대신 넓어 사람들이 숨어 살기에 적당했다. 동굴 입구는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지만 그곳을 지나면 5m 가량의 절벽 아래로 넓은 공간이 펼쳐진다. 하지만 토벌대의 집요한 추적 끝에 동굴이 발각되고 만다. 당시 주민들이 토벌대의 총알을 막으려고 쌓은 돌담과 깨진 그릇 파편이 그날의 참상을 오늘날까지 보여준다. 토벌대가 굴 안으로 진입을 시도하자 주민들은 이불 솜과 고춧가루를 모아 불을 붙이고, 매운 연기가 동굴 밖으로 나가도록 열심히 키질을 했다. 이 때문에 동굴로 들어가지 못한 토벌대는 밖에서 총을 난사하다가 밤이 되자 굴 입구에 돌을 쌓아 주민들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조치한 후에 철수했다.

큰넓궤 동굴 내부
큰넓궤 동굴 내부
임문숙 가족 헛묘.
임문숙 가족 헛묘.
김여수 가족 헛묘
김여수 가족 헛묘
동광리 무등이왓 4ㆍ3길
동광리 무등이왓 4ㆍ3길

다행히 인근에 숨어있던 청년들이 돌을 제거해 주민들은 무사히 밖으로 나올 수 있었지만, 토벌대를 피해 더 깊은 산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유난히 추웠던 그해 겨울 주민들은 무작정 한라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들이 찾아간 곳은 영실 인근의 불래오름이었다. 하지만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생활하던 주민들은 끝내 토벌대에 총살되거나 붙잡혀 서귀포 한 단추공장 건물에 일시 수용됐다가 정방폭포 위에서 집단으로 학살당한다.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정방폭포에서 희생된 상당수의 시신이 바다로 떠내려가 버리거나 시일이 흘러 신원 확인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른다. 결국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유족들은 헛묘를 만들게 된다. 대표적인 곳이 동광육거리에 위치한 임문숙씨 가족의 경우로 희생자 9명의 헛묘 7기(2기는 합장 묘)를 조성했다. 이 외에도 동광리 곳곳에 4ㆍ3유적들이 산재해 있는데 지난 2015년 4ㆍ3길이 개통돼 탐방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제주, 그 아름다움 너머의 아픔도 함께 봐주길 당부 드린다.

강정효 ㈔제주민예총 이사장 hallasan19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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