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권경성 기자

등록 : 2017.12.28 12:01
수정 : 2017.12.28 13:50

“철수시키세요” 朴 한마디에 문 닫은 개성공단

통일부 혁신위, 의견서 발표… 적폐 청산 일환

등록 : 2017.12.28 12:01
수정 : 2017.12.28 13:50

“‘NSC서 최종 결정’ 前정부 주장 사실 아냐”

“중단 근거 된 ‘임금 전용’ 문구, 靑이 삽입”

김종수 통일부 정책혁신위원회 위원장이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전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중단 결정 등 대북정책 점검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임강택, 최혜경, 고유환 위원, 김종수 위원장, 임을출, 임성택, 김준형 위원. 연합뉴스

북한의 4차 핵실험 및 장거리 로켓 발사 대응 조치로 지난해 2월 이뤄진 개성공단 가동 중단은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일방적인 구두 지시에 따라 결정된 것으로 드러났다.

중대한 외교ㆍ안보 사안마저도 대통령 독단에 의해 결정되는 일이 잦았던 박근혜 정부의 난맥상이 고스란히 노출됐다는 평가다.

통일부 정책혁신위원회는 개성공단 전면 중단 등 이명박ㆍ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주요 대북 정책의 점검 결과를 담은 ‘정책 혁신 의견서’를 28일 발표했다. 혁신위는 개성공단 중단 결정과 관련, “지난 정부의 발표와 달리 지난해 2월 10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 이전인 2월 8일 박근혜 대통령이 개성공단에서 철수하라는 지시를 내렸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2월 10일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4차 핵실험에 이은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한다고 전격 발표했고, 당시 정부는 2월 10일 오전에 열린 NSC 상임위원회에서 이런 방침이 최종 결정됐다고 줄곧 설명해 왔다.

그러나 혁신위가 당시 통일부 및 청와대 관계자들을 상대로 확인한 결과 이는 사실과 달랐다. 혁신위에 따르면 지난해 2월 7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직후 열린 NSC 회의에서는 개성공단 중단이 결정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튿날 오전 김규현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홍용표 당시 통일부 장관에게 ‘개성공단에서 철수하라’는 박 대통령의 구두 지시를 통보했고, 이에 따라 정부가 같은 날 오후 김관진 당시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세부 계획을 마련한 뒤 10일 발표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다만 지시 배경과 경위까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혁신위는 “대통령이 누구와 어떤 절차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 동안 개성공단 전면중단 결정 과정에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왔지만 진위를 규명하지는 못한 것이다.

아울러 혁신위는 당시 정부가 개성공단 중단의 주요 근거로 내세운 ‘개성공단 임금의 핵 개발 전용(轉用)’ 문구는 충분한 근거 없이 청와대의 의견으로 삽입됐다고 밝혔다. 2월 9일 오후 청와대가 자금 전용 표현이 들어가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10일 NSC 상임위 회의 이후 정부 성명문을 대통령에게 서면 보고하는 과정에서 최종 포함됐다는 게 혁신위 설명이다. 당시 참고한 것으로 보이는 정보기관 문건은 주로 탈북민의 진술과 정황에 기초한 것으로 객관성이 담보되지 않은 것이었고, 실제 해당 문건에도 ‘직접적 증거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표기돼 있다고 혁신위는 전했다.

혁신위는 개성공단 중단 결정을 이행하는 과정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안보적인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통치 행위라 해도 “해당 조치는 반드시 헌법과 법률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게 혁신위 주장이다. 개성공단 철수를 결정했다면 헌법상 긴급처분이나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른 협력사업 취소 등 적법한 절차를 밟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혁신위에 따르면 개성공단 중단은 남북 관계에 큰 파장을 미칠 결정인데도 박 전 대통령의 일방적인 구두 지시에만 의존했을 뿐 부처 간 토론이나 국무회의 심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2월 10일 NSC 상임위는 사후에 절차적 정당성만 부여했을 뿐”이었다. 주무 부처인 통일부가 ‘갑작스러운 운영 중단은 피해가 크다. 철수 시기를 잘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대통령의 지시를 변경할 수 없다’는 청와대에 막혔다.

이와 함께 혁신위는 통일부가 북한 해외 식당 종업원 집단 탈북 및 태영호 전 북한 공사의 망명을 발표한 일은 탈북 사안을 공개하지 않던 관례와 배치된다면서 “북한 정보사항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통일 정책의 수립ㆍ집행 과정에서 남북 관계에 전문성을 가진 통일부의 판단과 의견이 존중돼야 하며 일정한 자율성이 보장돼야 할 것”이라며 “무엇보다 통일부의 깊은 자기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이날 공개된 의견서는 김종수 위원장(가톨릭대 교수) 등 9명의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혁신위가 9월부터 3개월여 동안 대북 정책 추진 과정을 점검한 결과다. 대북 정책 차원의 보수 정부 적폐 청산의 일환으로도 해석된다. 앞으로 통일부는 이를 정책에 반영할 계획이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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