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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나이 잊고~ 깔끔 좀 떨어봤죠”… 꾸미기 열중하는 4050 아재들

입력
2017.09.13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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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밍족→꽃중년→아재파탈로

“외모도 성공 요인” 인식 변화

헬스장서 네일숍까지 찾아 관리

성형외과 40대 남성 시술 급증

남성화장품 매출 작년보다 50%↑

백화점 등 유통가의 큰 손으로

채교욱 신세계 부장이 거래 업체와의 미팅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채 부장은 평소 멋진 옷을 입으려 노력하고, 몸매 관리를 위해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채교욱 신세계 부장이 거래 업체와의 미팅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채 부장은 평소 멋진 옷을 입으려 노력하고, 몸매 관리를 위해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채교욱 신세계 부장이 몸매 관리를 위해 헬스센터에서 운동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채교욱 신세계 부장이 몸매 관리를 위해 헬스센터에서 운동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1

"어머, 직장생활 하시는 줄 몰랐네요."

하얀색 9부 바지에 맨발로 세련된 플랫슈즈를 신은 채교욱(42) 신세계 부장이 내민 명함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반응을 보인다. 그가 다니는 회사 복장 규정은 비교적 자유롭지만 나이 40을 넘은 ‘아재’(아저씨)가 회사에서 입기 쉬운 옷은 아니기 때문이다.

채 부장은 원래 자기 가꾸기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은 아니었다. 잦은 야근과 회식 때문에 젊은 시절 모습을 잃고 늙어가는 게 안타까워 나이 마흔이 넘은 어느 날 스스로를 가꾸기로 마음먹고 실천에 돌입했다. 멋진 옷을 입기 위해 채 부장은 틈틈이 사내 헬스센터에서 유산소 운동으로 몸매를 다진다. 특별한 약속이 없는 저녁에는 집 근처 한강변을 3㎞씩 달렸다. 살을 빼고 멋진 옷을 입으니 회사 안에서 그의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옷차림이 ‘너무 튀는 것 아니냐’는 핀잔을 받기도 했지만 요즘엔 동료들이 ‘젊게 가꾸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응원을 보낸다. 직장 동료들의 호평에 채 부장은 업무에 자신감이 붙었다. 자신감은 업무 실적 향상으로 이어졌다.

채 부장은 “외모가 달라지자 자신감이 생겼다”며 “외모도 경쟁력인 시대에 남자라고 자기 꾸미기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2

A은행에 다니는 40대 송 모 차장은 올해부터 본격적인 외모 가꾸기 작업에 돌입했다. 매일 새벽 헬스센터에 들려 뱃살 빼기 운동을 하고, 한 달에 한번 피부과에서 얼굴 마사지를 받는다. 자신의 외모에 별 관심이 없었던 송 차장이 바뀐 것은 지난 연말 임원으로 승진한 사람들 대부분이 외모 관리를 열심히 한 ‘꽃중년’ 선배들이었기 때문이다. 외모가 임원 배지를 좌우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회사 안에서는 외모 등 자기관리도 인사 평가의 주요 판단 기준이었다는 소문이 났다. 고객을 직접 응대해야 하는 직업 특성상 깔끔한 외모 관리는 은행원들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덕목이다. 송 차장도 신입 교육 때 이런 교육을 받았지만, 마흔을 넘기면서 외모 관리에 소홀해졌다. 그는 “승진 때문이 아니라 신입행원 시절 열정을 찾기 위해서라도 더 늦기 전에 자기 관리에 나서기로 했다”고 말했다.

꾸미는 남자 ‘그루밍족’, 멋진 중년을 뜻하는 ‘꽃중년’이 ‘아재파탈’로 진화하고 있다. 아재파탈은 ‘치명적인 매력으로 남성을 유혹해 파멸에 이르게 하는 여성’을 뜻하는 프랑스어 ‘팜므파탈’이 변형된 말이다. 아저씨를 뜻하는 우리말 방언 ‘아재’에 ‘파탈’을 조합해 아저씨가 젊은 사람 못지 않은 매력을 풍긴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원래 외모가 뛰어난 중년 연예인을 지칭하는 말로 쓰였으나 최근에는 나이에 관계없이 자기 관리가 잘된 사람, 또는 나이가 많아도 신사같이 멋있어 보이는 사람까지 두루 칭한다. 얼굴이 잘생겼어도 자기 관리를 못하는 사람은 아재파탈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남자들이 자기 가꾸기에 신경을 쓰게 된 건 사회 인식의 변화도 크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남녀 직장인 1,76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8%는 ‘외모가 직장생활에서 경쟁력을 결정하는 요소가 된다’고 답했다.

제조업 대기업에 다니는 50대 구 모씨는 “잘생기고 못생기고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관리를 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라며 “예전과 다르게 자기 외모에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 임원으로 승진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말했다.

외모를 관리하는 남성들이 회사나 사회에서 우대받는 분위기가 강해지자 살을 빼거나, 피부를 관리하기 위해 헬스센터나 피부과 등에 다니는 ‘아재’들도 늘고 있다.

서울 중구 을지로 S헬스센터는 퇴근 후 방문하는 40대 이상 남성 직장인이 주고객이다. 이 헬스센터의 트레이너는 “사무실이 근처에 많아 저녁 시간대에는 퇴근 후 운동을 하려는 직장인이 많다”며 “요즘은 젊은 직장인 못지 않게 40~50대 남성 직장인 비중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올리브영 부산 광복본점 남성존. 올리브영 제공
올리브영 부산 광복본점 남성존. 올리브영 제공

피부ㆍ네일관리숍을 찾는 아재들도 많다. 서울 강남역 인근 C네일숍은 최근 남성 고객이 늘어나자 남성전용 존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네일숍을 운영하는 유 모 씨는 “예전에는 여자친구 손에 이끌려 방문하는 남성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스스로 손톱관리를 받으려는 남성 직장인이 크게 늘었다”며 “주말이 가까워지는 목,금요일에는 남성 손님이 많아 아예 전용공간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아재 화장품’ 시장도 크게 성장했다. 이ㆍ미용 용품 전문 판매점인 올리브영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남성화장품 판매는 연평균 40% 이상 성장했다. 특히 올해는 남성화장품 매출이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50% 이상 급증했다. 올리브영이 판매하는 남성화장품 종류도 3년 전 300여개에서 올해 700여개로 2배 이상 많아졌다.

김강호 올리브영 남성화장품 MD(상품기획자)는 “남성 소비자들이 뷰티에 관심을 가지면서 남성 화장품 시장은 매년 큰 폭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며 “특히 최근에는 4050 중년 남성 고객이 매장을 많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아재파탈이 되려는 남성들은 성형 시장도 활성화시키고 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50대 김 모 대표는 이번 추석 연휴 기간에 주름살 개선 수술인 ‘리프팅’ 시술을 받기로 하고 병원 예약을 했다. 나이에 비해 주름살이 많아 고민이었던 김 대표는 지난해 친구가 리프팅 시술을 받고 훨씬 젊어 보이는 것에 자극 받아 시술을 받기로 결심했다.

김 대표는 “예전엔 남자가 성형외과에 간다고 하면 남들이 흉 볼까 걱정했는데 이제 사회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며 “젊어 보이는 것도 경쟁력이라 여겨 주름 개선 수술을 받는 친구들이 점차 늘고 있다”고 말했다.

중년 남성들의 성형외과 출입 증가는 데이터로도 확인된다. 서울 서초동 원진성형외과에 따르면 2011년 4%에 불과했던 40대 남성 시술 비율이 올해 17%까지 치솟았다. 50대 남성의 시술 비율도 같은 기간 1.5%에서 13%로 늘었다.

이 병원 관계자는 “40,50대 남성은 눈꺼풀이나 눈 밑 처짐 현상을 개선하는 ‘상안검ㆍ하안검’ 시술이나 얼굴 주름을 펴주는 다양한 리프팅 시술을 주로 받는다”며 “젊은 얼굴을 유지하려고 병원을 찾는 중년 남성 수가 갈수록 늘어가는 추세”라고 말했다.

그루밍족 아재파탈 등의 말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과거 1990년대 ‘오렌지족’과 ‘X세대’로 불렸던 세대가 ‘아재’인 40~50대가 되면서부터다. 이들은 경제 발전 시대 어린 시절을 보내 자신을 위한 투자에 인색하지 않은 세대이기도 하다.

꾸미는 남자를 우대하는 사회 분위기에, 자신을 위한 투자에 익숙한 아재들이 경제력까지 갖추게 되면서 이들은 자연스럽게 유통가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전체 매출 중 남성 소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2010년에는 28%였지만 올해는 34%까지 늘어났다. 홈쇼핑 업체 CJ오쇼핑의 올해 상반기 4050 남성 구매율은 3년 전인 2014년 상반기 보다 28% 증가했다. 온라인 쇼핑 사이트 G마켓의 올해 상반기 모바일 판매 품목 가운데 4050세대 남성의 구매 비율은 신발이 67%, 화장품ㆍ향수 60%, 브랜드 진과 캐쥬얼 의류는 68%나 됐다.

고현실 G마켓 패션실장은 “4050 중년남성들이 아재 이미지 탈피를 위해 겉모습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며 “데님이나 맨투맨, 스니커즈 등 이른바 오빠패션으로 여겨지던 패션 아이템을 찾는 수요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서울 강북에서 요식업을 하고 있는 40대 자영업자 박 모씨도 자신의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는 ‘큰 손 아재파탈’이다. 그는 가게가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교외 아웃렛으로 나가 쇼핑을 한다. 그가 주로 사는 물건은 자신을 꾸미기 위한 옷과 신발 화장품 등이다. 가끔은 수백만원에 달하는 카메라나 고성능 스피커 게임기도 통 크게 구매한다. 박 씨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 혼자 살다 보니 나만을 위한 소비가 가능해 결혼한 친구들이 부러워 할 때가 많다”며 “맘에 꼭 드는 옷을 사 멋을 낼 때는 남보다 앞서 간다는 생각이 들어 나에 대한 투자는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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