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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문화재지킴이, 문화공동체를 향한 지름길

입력
2018.06.20 14:12
수정
2018.06.20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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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쿠웨이트에서 근무하던 해외근로자 A씨는 걸프전이 벌어지자 목숨을 걸고 탈출했다. 고향인 충북 진천으로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학창시절 매일 같이 건너던 ‘진천 농다리’(시도유형문화재 제28호)였다. 아무 생각 없이 건너 다니던 농다리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농다리에 푹 빠져 공부했고 지금은 농다리를 지키는 문화재지킴이가 됐다.

고등학생 B씨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문화재를 지키는 동아리에 가입했다. 선생님, 친구들과 활동해 보니 문화재를 보호하는 일은 생각만큼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후 자연스럽게 청소년 문화재지킴이로 활동하게 됐고 졸업식 때는 도지사상을 받았다.

오랫동안 공무원으로 근무한 C씨는 퇴직 후 여행을 다니며 전국에 있는 문화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화재청에서 운영하던 문화재 행정모니터 요원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문화재지킴이가 됐다. 한 달에 한 두 번씩 동네의 문화재를 찾아가 쓰레기를 치우고 보수가 필요한 곳은 없는 지 꼼꼼하게 살핀다. 문화재를 지키러 가는 날이면 온 가족이 모여 역사와 문화재 이야기를 나눈다.

국내 굵직한 기업들도 문화재를 지키고 있다. 한화호텔&리조트는 골프장 장비로 왕릉 잔디를 관리하고, 라이엇게임즈는 주미대한제국공사관처럼 국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를 후원하며, LG전자는 자사의 해외 광고판들을 활용해 현지인들에게 우리의 문화유산을 알리고 있다.

이처럼 문화재에 관심을 갖고 자발적으로 지키는 사람과 기업을 ‘문화재지킴이’라고 부른다. 개인이나 가족, 그리고 학교, 기업 등 단체로 활동하고 있는 문화재지킴이들은 현재 8만 4,000여 명에 이르며, 기업과 문화재지킴이 협약을 맺은 곳도 54개에 이른다.

문화재지킴이들은 거주지 근처에의 문화재를 보호하거나 청소하고 문화재가 훼손됐는지 모니터링을 하고, 감시ㆍ순찰 활동을 한다. 문화재를 널리 알리고 홍보하는 등 문화재 알림이의 임무도 맡고 있다.

현재 문화재로 지정된 대상은 총 13만여 점이며, 아직 지정되지 않았지만 보호받아야 할 비지정문화재는 그 숫자를 헤아리기 어렵다. 문화재를 보다 세심하게 보호하려면 문화재 가까이에 있는 국민의 관심과 사랑이 가장 필요하다. 2005년부터 본격화된 문화재지킴이들의 참여는 13년을 이어가고 있다. 문화재는 담당 공무원이나 연구자들만 관리해야 하는 게 아니라 국민 모두가 보호하고 지켜야 한다는 주인 의식이 이들을 오랫동안 문화재 곁에 머무르게 했다. 그 결과 현재는 후손들에게 문화재뿐만 아니라 문화재를 가꾸는 아름다운 문화까지 물려주자는 운동으로 문화재지킴이의 역할이 확장되고 있다.

문화재지킴이들의 열정과 참여는 우리 역사, 문화에 대한 사랑과 스스로 문화재를 가꾸고 지켜가겠다는 시민 의식에서 나온다. 미래를 지향하는 문화재지킴이 활동은 선조들의 주체적 문화재 보호 활동과도 역사적인 맥을 같이 한다. 임진왜란 때인 1592년 불에 탈 뻔한 전주사고의 실록을 정읍의 선비들은 목숨을 걸고 내장산 암자로 옮기고 1여 년간 지역 주민들과 함께 지켜낸 바 있다. 이러한 지킴이 활동 덕에 5대 사고의 실록 중 유일하게 전주사고본만 온전히 후대에 남았으니, 문화재 보호의 상징적 사건이다.

문화재청은 그 동안 열심히 활동해준 문화재지킴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또한 역사적인 문화재지킴이 활동을 기억하고, 지킴이 활동이 미래에 아름다운 유산으로 남을 수 있도록 이달 22일을 ‘문화재지킴이 날’로 지정한다. 전주사고본이 안전하게 지켜진 그 날을 기념하면서 문화재를 고리로 과거, 현재, 미래가 온전하게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김종진 문화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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