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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은 선거 중] 갈길 먼 ‘300년 독립의 꿈’

입력
2017.08.25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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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동네 바르셀로나 상당수

“무능한 마드리드 먹여 살려” 인식

주정부, 연쇄 테러에도 투표의지

중앙정부 “스페인 모두 동일가치”

위헌결정ㆍ예산제한 등 저지 자신

투표 찬성 여론도 40%대 머물러

독립여론 미칠 테러 여파 주목

마리아노 라호이(왼쪽부터) 스페인 총리, 펠리페 6세 국왕, 카를레스 푸지데몬 카탈루냐 주지사가 18일 바르셀로나 카탈루냐광장에서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바르셀로나=EPA 연합뉴스
마리아노 라호이(왼쪽부터) 스페인 총리, 펠리페 6세 국왕, 카를레스 푸지데몬 카탈루냐 주지사가 18일 바르셀로나 카탈루냐광장에서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바르셀로나=EPA 연합뉴스

18일(현지시간) 오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카탈루냐광장. 세 사람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 펠리페 6세 국왕, 카를레스 푸지데몬 카탈루냐 주지사다. 국가를 대표하는 총리와 상징적 존재인 국왕, 자치정부 수반 등 내로라하는 스페인의 정치 거물들은 한 데 모여 슬픔을 표했다. 전날 바르셀로나와 인근 해안도시 캄브릴스에서 발생한 연쇄 차량테러로 숨진 희생자 14명의 넋을 기리며 “테러에 맞서 싸우자”고 한 목소리로 호소했다. 하지만 영국 BBC방송은 “애도 기간이 끝나면 ‘암묵적 휴전’은 빠르게 풀릴 것”이라며 이들의 의기투합을 미심쩍게 바라봤다.

세 사람의 만남을 휴전이라고 표현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대형 테러가 미묘한 시점에 터졌기 때문이다. 10월 1일, 카탈루냐주는 스페인에서 떨어져 나와 새 출발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앞두고 있다. 분리ㆍ독립을 놓고 중앙정부와 카탈루냐주 사이에 300년 넘게 이어진 지난한 싸움이다. 힘겨루기 구도는 매번 똑같다. 독립투표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마드리드(정부)와 “찬성이 한 표라도 많으면 주저없이 독립을 선언하겠다”는 바르셀로나(카탈루냐)의 재대결을 국제사회는 불안한 눈으로 응시하고 있다.

겉으론 단합 외쳤지만

라호이 총리와 푸지데몬 주지사는 이날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테러 대응을 위한 양측의 협력을 다짐했다. 전대미문의 국가적 비극 앞에 여론을 다독이려는 제스처였으나 각자의 속내는 금세 드러났다. 홀로 언론 앞에 선 푸지데몬 주지사는 “유럽에서 우리만 이런 식의 학살을 당하지 않았다”며 주민투표가 무산되거나 일정이 미뤄질 가능성을 일축했다. 일부 주민 역시 추모 기간임을 감안해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않았을 뿐, 카탈루냐 독립기 ‘에스텔라다’를 도시 곳곳에 내걸고 정부를 향한 무언의 시위를 이어갔다.

반면 라호이 총리는 “스페인 국민은 모두가 자랑스러워 하는 동일한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면서 무수한 인터뷰 내내 한 번도 카탈루냐란 단어를 언급하지 않았다. 유력 언론들도 카탈루냐 성토 대열에 가세했다. 스페인 최대 일간 엘파이스는 사설을 통해 “대규모 공격은 카탈루냐가 처한 현실을 되돌아 보고 독립 의지는 잠시 접어둬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고 주장했다. 테러 수습이나 똑바로 하라는 얘기다.

마누엘 아리아스 말도나도 말라가대 정치학과 교수는 “카탈루냐 분리주의자들은 전략적 차원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를 적극 활용해 ‘국가가 될 준비를 마쳤다’는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다”며 대립 전선이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향 평준화는 이제 그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두 지역은 ‘구원(舊怨)’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오랜 앙숙 관계이다. 대대로 자치권을 누려온 카탈루냐는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에서 줄을 잘못 섰다가 1714년 9월 독립 지위를 빼앗겼다. 역사와 문화는 물론, 언어도 카탈루냐어 및 카스티야어(스페인어)를 공용어로 쓸 만큼 마드리드와는 이질적 요소가 많다. 카탈루냐의 불만은 한 나라로 묶일 구석이 별로 없는데 중앙정부가 수백년 동안 강압적 통치 방식을 지속해 온 데에 있다. 독립운동이 불붙게 된 1차 원인도 카탈루냐의 숙원인 자치권 확대 노력이 무참히 짓밟혀서다. 카탈루냐 주의회는 2005년 주정부에 세수를 더 많이 배정하는 내용의 자치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이듬해 스페인 의회도 법안을 가결했다. 그러나 집권 국민당이 끝까지 반대하면서 헌법소원을 청구하자 2010년 헌법재판소는 위헌 결정을 내렸다. 정치전문지 폴리티코유럽은 “시 당국이 공항, 항구 등을 자유롭게 운영하는 독일 함부르크와 달리 바르셀로나의 모든 교통시스템은 마드리드가 관할권을 갖고 있다”며 “카탈루냐 측은 자율권을 확대해 달라는 제안을 정부가 일부러 거부하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카탈루냐가 홀로서기를 추구하는 보다 근본적인 배경에는 스페인의 속주로 있어 봤자 경제적으로 전혀 득이 될 게 없다는 현실론이 자리잡고 있다. 기폭제는 2010년대 초 남유럽을 휩쓴 금융ㆍ재정위기다. 카탈루냐는 원래 바스크, 마드리드 등과 더불어 스페인의 대표 부자 동네다. 서비스업과 농업이 어우러진 산업구조 덕분에 인구 규모(745만명)는 스페인 전체(4,700만명)에서 15.9%에 불과하지만 국내총생산(GDP)의 20%를 담당할 정도로 높은 생산성을 자랑한다. 문제는 매년 수입의 9~10%가량을 다른 가난한 지자체를 지원하는 데 쓰는 탓에 금융위기의 파고를 비껴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2012년엔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중앙정부에 손(구제금융)을 벌리는 수모까지 당했다. BBC는 “주민 다수는 카탈루냐가 무능한 마드리드를 먹여 살린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전했다.

300년 독립 염원의 결말은

이번 테러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주민투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다만 현재로선 카탈루냐 주정부 쪽에 별다른 우군도, 호재도 없어 전망이 낙관적이지 않다. 중앙정부는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얼마든지 투표를 막을 수 있다고 자신한다. 앞서 2014년 11월 정부 승인 없이 치러진 독립 찬반투표에서도 81%가 찬성표를 던졌으나 투표율은 절반에도 못 미쳤다. 여기에 헌재마저 투표를 위헌으로 판단했고, 독립 투표를 강행한 아르투르 마스 전 주지사는 불복종 혐의로 기소돼 2년 간 공직출마가 금지됐다.

내부적으로도 주민투표를 둘러싼 주정부와 주민들 사이의 괴리가 큰 편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독립이 아닌 주민투표 실시 여부를 묻는 질문에도 찬성 의견이 40% 초반대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스페인 정세 전문가인 세바스티안 발푸어 런던정경대(LSE) 교수는 “중앙정부는 자치정부의 채무상환을 목적으로 지원한 유동성기금이 투표 예산으로 전용되지 못하도록 강제할 것”이라며 “유럽연합(EU)도 카탈루냐가 독립하면 복잡한 재가입 절차를 밟아야 해 주정부에 호의적이지 않다”고 진단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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