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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분투기] 전업맘도, 그렇다고 워킹맘도 아닌

입력
2016.02.11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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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번, 우리 아파트 앞에서는 아줌마들이 여럿 모인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어느 날 유심히 보니 다들 한쪽에 빈 짐수레를 끌고 온 모양새가 특이했다. 호기심이 일어 2층인 우리 집 베란다를 통해 지켜보았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승용차 한 대가 들어섰다. 갑자기 분주해진 아줌마들은 차 트렁크 안에서 커다란 정사각형 판을 꺼내 차례차례 수레에 담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제야 나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문득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릴 적 우리 엄마는 주기적으로 집에 부업용 일감을 가져오셨다. 아빠는 성실하게 일하셨지만 세 딸을 키워내기에는 넉넉지 않은 살림이었다. 파란색 소쿠리에 한 짐을 담아오는 날이면 나는 이번에는 무슨 일일까 궁금해 엄마보다 먼저 들춰보고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대부분 손재주가 필요한 일이어서 나는 도울 수가 없었다. 엄마는 주로 늦은 오후 거실에 앉아 그 일에 열중했다. 그 시절 엄마에게 부업은 돈벌이인 동시에 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바깥일이었으리라.

세상이 하도 변해 이런 종류의 부업은 종적을 감춘 줄로만 알았다. 졸업 후 줄곧 직장생활을 했으니 한낮 아파트 앞 풍경이 어떤지 몰랐던 탓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전히 많은 엄마들은 집 안에서 또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인터넷을 뒤적거려보니 요즘은 부업의 종류도 다양했다. 블로그를 이용해서 인테리어 소품을 팔기도 하고 집에서 온라인으로 학습지 강의를 하는 일도 눈에 띄었다. 그 외에도 방송 프로그램 모니터 요원, 독서 지도사, 공부방 운영 등 엄마들의 소일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전문적인 일도 많았다. 엄마들을 지칭하는 이름에 ‘전업맘’과 ‘워킹맘’이 있다면 부업을 하는 엄마들은 전업맘일까 워킹맘일까. 경계선에 위치해 있으니 굳이 나누자면 ‘깍두기맘’쯤 되려나. 비록 불안정한 일자리인데다 수입도 많지 않겠지만 그녀들은 적게 일하고 적게 버는 대신 남는 시간과 노동력을 가정을 위해 쓴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간신히 양쪽이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면 이들이야말로 참된 의미의 양립을 실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낳은 후 전업맘과 워킹맘의 기로에서 고민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자신의 성향이라고 한다. 내 성격이 바깥일에 어울린다면 워킹맘을, 집안일에 가깝다면 전업주부를 택하라는 뜻이다. 언뜻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사람의 성향을 무 자르듯 나누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성향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많은 엄마들이 일을 하다가도 아이가 생각나고 아이를 키우다가도 밖이 그리운 건 이 때문이다. 실제로 주변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전업맘의 경우 언제 다시 일을 할까가 고민이고, 워킹맘의 고민은 이제 그만 일을 접어야 하나다. 그래서 엄마들에게는 제3의 선택지가 필요하다. 워킹맘들에게는 근무시간과 업무 부담을 줄여 가정에 좀 더 신경을 쓰게끔 배려해주는 직장이, 전업맘들에게는 육아와는 달리 노동의 반대급부가 통장의 숫자로 확실하게 찍히는 일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일종의 ‘부업 같은 직장’ 말이다. 하지만 노동시장이 유연하지 못한 데다 일에 대한 개념도 틀에 박힌 우리나라에서 이와 같은 성격의 일을 제도 안에서 찾기는 어렵다. ‘시간 선택제 일자리’가 존재하기는 하나 대우는 둘째 치고 일의 종류가 극히 제한적이다. 일본에서는 4시간 근무 정사원제라고 일컫는 ‘한정 정사원 제도’가 있다는데 부럽기만 할 뿐이다. 결국 이 나라의 엄마들은 전업맘과 워킹맘 사이에서 힘겨운 선택을 하거나 아니면 진짜 부업을 찾아 나서야만 한다.

전업맘은 워킹맘이 부럽고 워킹맘은 전업맘이 부럽다. 하지만 양쪽 모두 선을 넘는 순간 정반대의 고민이 시작된다. 선택도 어렵지만 한다 해도 고민은 끝나지 않으니 그야말로 딜레마다. 언제쯤이면 이 고민이 사라질까. 엄마는 꿈꾼다. 전업맘도 워킹맘도 아닌 삶을.

이정미 전업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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