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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표향 기자

등록 : 2018.01.15 18:14
수정 : 2018.01.15 21:48

노력을 재능으로 바꾼 배우 박정민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서번트 증후군 피아노 천재 연기

등록 : 2018.01.15 18:14
수정 : 2018.01.15 21:48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서번트 증후군 청년을 연기한 박정민은 “시나리오가 너무 재미 있어서 출연하고 싶다고 (제작진을) 졸랐다”며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가족 이야기에 매료됐다”고 말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노력도 ‘재능’이다. 배우 박정민(31)이 연기에 쏟는 노력은 질과 양이 다르다.

“재능이 부족하니 많이 노력해야 한다”는 그의 말은 그래서 모순이다.

인물의 본질에 깊숙이 들어가야 하는, 그렇기에 배우의 노력 재능이 필요한 영화들이 박정민을 자주 찾아오고 있다. 영화 ‘동주’(2016)에서 시인 윤동주의 벗이자 라이벌인 독립운동가 송몽규를 살아 있는 숨결로 복원한 그의 재능이 새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17일 개봉)에서 또 한번 값지게 쓰였다. 피아노 천재인 서번트 증후군 청년 진태 역을 맡아 놀라운 연기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한물간 전직 복싱 선수 조하(이병헌)가 난생처음 만난 동생 진태와 가족이 돼 가는 과정을 그린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박정민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지닌 분들과 그 가족들, 복지사들이 영화를 보고 불쾌하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 중 10% 미만에서 특정 분야에 천재적인 서번트 증후군이 나타난다고 해요. 진태는 정확한 이해에서 출발해야 하는 캐릭터였어요. 그게 당연한 예의이기도 했고요.”

진태의 대사는 “네”라는 대답과 단순 의사표현 몇 가지뿐이다. 그 여백은 노력이 채웠다. 특수학교를 매주 방문해 봉사를 했고, 관련 연구 서적만 10여권을 독파했다. ‘동주’ 촬영 당시에도 그는 중국 북간도를 찾아 송몽규 묘소에 참배하고, 대사에 담긴 일제강점기 국제 정세를 알기 위해 역사 서적을 섭렵했다. 그는 “인물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었고, 그게 나 자신을 다잡는 방법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특수학교에서 만난 이들에게서 연기 재료를 얻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신도 모르게 특정 개인의 행동을 따라할까 봐 경계하고 또 경계했다. “연구자들도 알아내지 못한 걸 제가 완벽하게 표현할 수는 없겠죠. 다만 그분들을 잘 소개하는 것이 저의 임무라고 생각했습니다. 관객들이 동정이 아닌 존중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진태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로 그리고 싶었어요.”

피아노 천재 진태는 정말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청년이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박정민(왼쪽)의 꽉 짜인 연기와 이병헌의 힘 뺀 연기가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박정민의 연기 설계도는 무척 치밀했다. 진태의 “네”라는 대답이 긍정이 아닌 부정의 뜻이거나 혹은 대화를 끝내고 싶다는 뜻일 수도 있기에 대화의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 상대 배역의 대사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진태가 피아노를 통해 세상을 만나게 되는 과정에서도 재능으로서의 노력이 진가를 발휘했다. ‘도레미’도 몰랐던 그는 하루 6시간씩 6개월간 피아노 연습에 매달린 끝에 음원에 맞춰 피아노 연주를 대역 없이 해냈다. 진태가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마지막 연주회 장면은 특히 압권이다. “제가 자청한 일이에요. 배우가 직접 연주하는 에너지를 컴퓨터그래픽(CG)이 결코 따라올 수 없으니까요. 마침 캐스팅 당시에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가 개봉해서 자극 받기도 했어요(웃음).”

영화가 언론에 공개된 뒤 박정민에 대한 찬사가 쏟아지고 있지만 그는 긴장하고 있었다. ‘동주’로 청룡영화상과 백상예술대상 등에서 신인상을 휩쓸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무서웠다”고 했다. “언젠가 들통날 것만 같아서요. 그건 제 성격이기도 해요. 안심하면 안주하게 되니 자신을 채찍질 해야 해요.”

‘그것만이 내 세상’을 시작으로 ‘염력’ ‘변산’ ‘사바하’ ‘사냥의 시간’까지 올해만 영화 5편 개봉을 앞둔 배우치고는 지나친 겸손 같다. 하지만 박정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난해에 쉬지 않고 일하다 심리적으로 무너질 뻔한 적이 있어요. 이준익 감독님과 황정민 선배가 조급해하지 말라고 다독여 주신 덕분에 이제야 영화 현장을 즐길 수 있게 됐어요. 즐길 수 있을 때 더 열심해 해야 합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박정민은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한 관객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지닌 분들을 잘 표현해 줘서 고맙다’고 얘기해 줘 마음을 놓았다”며 “장애를 희화화하거나 이용하기 않기 위해 영화적 표현을 연구했다”고 말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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