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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야구에 빠지다] “걸그룹 노래보다 응원가가 더 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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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야구에 빠지다] “걸그룹 노래보다 응원가가 더 재밌어요”

입력
2017.08.1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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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라이온즈 팬 강다연(7) 양이 대구 라이온스파크 경기장에서 야구를 보며 응원하고 있다.
삼성라이온즈 팬 강다연(7) 양이 대구 라이온스파크 경기장에서 야구를 보며 응원하고 있다.

경기 하이라이트 꼭 챙겨보고

교실서도 가수보다 야구 얘기

원정 응원도 마다하지 않는 열정

여성팬들 야구 몰입도 강해

회원수ㆍ기념품 판매 계속 늘어

초등학교 2학년 박서우(8)양의 하루는 전날 프로야구 경기 결과 확인으로 시작한다. 아침을 먹으면서 아빠의 스마트폰으로 경기 하이라이트를 챙겨 보고 나서야 학교에 간다. 요즘 서우는 응원하는 기아타이거즈가 1위를 달려 기분이 좋다. 오빠(12)가 응원하는 NC다이노스는 2위. 매일 아침 게임 차를 꼬박꼬박 체크한다. 작년에 기아는 겨우 5위를 했고, NC가 2위를 달릴 때 맨날 오빠한테 놀림을 당했는데 요즘은 그걸 되갚아 주는 것 같다. 특히 제일 좋아하는 최형우 선수가 매일 좋은 성적을 내니 절로 신이 난다. 방과 후 학교, 피아노 학원을 끝나고 집에 오면 다시 기아가 이긴 경기 하이라이트에 빠져든다. 인터넷으로 팀 순위는 물론 선수 개인별 순위도 살펴보고 그날 열릴 경기의 선발 투수가 누군지 보면서 경기 전망도 해 본다. 저녁 먹고 숙제 하고 나서는 어김 없이 기아 경기를 본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야구로 마무리하는 것이다.

서우가 야구를 좋아하게 된 것은 작년 여름 가족들과 함께 야구장에 갔을 때부터다. 외야 좌석에 앉아 짙은 초록색 잔디 위에 앉아 TV에서 보던 선수들이 치고 달리는 모습을 직접 보면서 치킨 음료수 과자를 실컷 먹었던 그 때가 너무 좋았다. 할아버지부터 친척들이 다 같이 야구를 좋아하고 할머니, 고모 할 것 없이 여자 어른들도 야구 얘기를 즐겨 하는 분위기에서 서우는 자연스레 야구를 익혔고 실컷 즐기고 있다.

박서우양이 서울 고척스카이돔 앞에서 기아타이거즈 최형우 선수 유니폼을 입고 브이를 그리고 있다.
박서우양이 서울 고척스카이돔 앞에서 기아타이거즈 최형우 선수 유니폼을 입고 브이를 그리고 있다.

야구가 남자들의 스포츠라는 말은 무색해진 지 오래다. 야구장을 찾는 여성 팬들이 드물지 않은 시대. 이제 유소녀 선수의 활약이 무섭다. 야구장을 찾고 선수들을 열렬히 응원하며 글러브를 끼고 야구공을 던지는 소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교실에서 친구들과 야구 얘기를 자주 해요. 남자 아이들이 좀 더 많기는 하지만 여자 아이들도 꽤 있어요. 어떤 여자 아이는 남자 아이들보다 야구 규칙이나 선수들에 대해 더 많이 알아요. 물론 제일 목소리가 큰 건 자기가 응원하는 팀의 성적이 좋은 친구들이에요.” 서우는 걸 그룹 노래와 춤을 따라 하는 또래 친구들과 달리 프로야구 구단과 선수 응원가를 따라 부르는 게 더 재미있다. 아이돌 그룹의 멤버 이름을 외우는 것보다 복잡한 야구경기의 규칙을 하나씩 알아가는 게 더 짜릿하다. 엊그제는 아빠에게 사이클링히트(히트 포 더 사이클)가 뭔지를 배웠다.

롯데자이언츠 팬 최혜아(7)양이 엄마와 함께 서울 야구장에서 롯데 응원의 상징 오렌지색 비닐 봉투를 머리에 쓰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롯데자이언츠 팬 최혜아(7)양이 엄마와 함께 서울 야구장에서 롯데 응원의 상징 오렌지색 비닐 봉투를 머리에 쓰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야구 규칙 공부하는 소녀들

두산베어스를 응원하는 초등학교 2학년 민지우(8)양의 아버지 민병훈(41)씨는 얼마 전 야구장에서 들은 딸의 한 마디에 꽤 놀랐다고 한다. 두산이 지고 있던 경기를 역전하자 “아빠,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것 같아요”라고 했단다. 유치원 때부터 한 달에 한 번 이상 아빠 따라 야구장을 열심히 다니던 딸이 어른처럼 야구 보는 맛을 알아 버린 것 같아 흐뭇하면서도 당황스럽기도 했다는 것. 지우는 2년 전 두산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할 때가 가장 기뻤다고 한다. 아빠와 야구장에 가서 수 천 명 관중 속에서 응원가를 부르고 율동을 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다는 지우는 엄마에게 프로야구 가이드북 등 야구 책을 사달라 졸라서 틈 나름대로 읽는다. 민씨는 “처음엔 그저 야구장 가는 걸 좋아하더니 게임 규칙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혼자 책 찾아보고 공부를 해요. 어떤 선수가 나오면 그 선수의 옛날 성적까지 찾아보기도 하구요. 학원 버스 안에서 다른 팀 응원하는 남자 아이들과 야구에 대해서도 열심히 얘기를 한다네요. 야구장에 가면 여성 팬들이 갈수록 늘고 있어 여자 어린이들이 야구 좋아하는 게 더 이상 이상한 일도 아니죠”라고 말했다. 민씨 부녀는 다음달 대구로 원정 응원도 함께 가기로 했다.

두산베어스 팬 민지우양이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막대 풍선을 들고 응원을 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팬 민지우양이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막대 풍선을 들고 응원을 하고 있다.

야구를 사랑하는 소녀들이 늘고 있다는 것은 각 구단의 상품 판매 액수나 회원 가입자 수에서도 알 수 있다. LG트윈스에 따르면, 올해 여자 어린이 회원 수는 지난해에 비해 40%가량 늘었다. 어린이 회원 중 여자 어린이 비율은 지난해 23%에서 올해는 26%로 3%포인트 증가했다. 올 상반기 유니폼, 모자 등 LG트윈스 기념품 중 여성용 제품의 판매 액수는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해 약 7%포인트가 늘었다. LG트윈스 관계자는 “3년 전부터 헬로키티 등 캐릭터 회사들과 손을 잡고 캐릭터 제품을 출시하고 있는데 여성과 여아 팬들을 겨냥한 이런 마케팅이 적중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남녀 공용 제품도 남성보다 여성들이 더 많이 구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NC다이노스의 경우, 올 들어 현재까지 각종 기념품의 전체 판매 액수는 약 15% 줄어들었는데도, 여자 어린이를 포함한 여성용 상품 판매액은 약 15% 늘었다. 여성 회원 가입자 수도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약 2,400명이 늘었다. 전체 회원 수가 약 7,000명이니 회원 4명 중 1명이 여성인 셈이다.

LG트윈스 팬 전예인양(오른쪽)이 동생들과 함께 수원KT위즈파크에서 LG트윈스를 응원하고 있다.
LG트윈스 팬 전예인양(오른쪽)이 동생들과 함께 수원KT위즈파크에서 LG트윈스를 응원하고 있다.

여학생 팬 위한 마케팅 나서는 프로야구 구단들

구단들은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여성 팬들을 겨냥한 이벤트도 꾸준히 늘리고 있다. 여성 야구팬들의 몰입도가 남성 팬 못지 않게 강하다는 판단에서다. 사실상 다양한 공연ㆍ영화ㆍ전시 등 대중문화에서 ‘빠’ 문화를 형성한 주축 세력이 소녀 팬들이고, 가장 큰 구매력을 행사하는 것이 20~30대 여성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야구단은 이 같은 열풍이 스포츠로 옮겨오는 현상이 반갑기만 하다. 특히 앞으로 수 십 년 동안 야구장을 찾을 소녀 팬들은 구단이 가장 확보해야 할 타깃이다.

기아타이거즈 팬 이주은양이 경기 수원KT위즈파크에서 열린 경기를 응원하러 가서 김선빈 선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들어보이고 있다.
기아타이거즈 팬 이주은양이 경기 수원KT위즈파크에서 열린 경기를 응원하러 가서 김선빈 선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들어보이고 있다.

NC다이노스는 창원 지역 내 여자 중ㆍ고생 단체 관람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데, 올해는 처음으로 3개 여중에서 1,400여 명이 단체 관람을 왔다. 여고생들도 작년에 4개 학교 2,500명에서 올해는 상반기에만 5개 학교 2,700명이 야구를 즐기고 갔다. LG트윈스는 키즈데이, 여대생 특강, 응원 버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두산베어스는 어린이날에 ‘두린이날’ 행사, 여성팬을 위한 퀸즈데이 행사를 진행 중이다. 한 구단 관계자는 “고교야구 황금기 때 여중ㆍ여고생들이 동대문야구장 스탠드를 가득 채웠던 것처럼 프로야구장을 더 많은 소녀팬들이 찾도록 해보고 싶고 또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봅니다”라고 말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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