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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퇴근 후 접속 차단권

입력
2017.08.09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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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직장인은 OECD 평균보다 1년에 두 달 더 일한다. ‘단톡 야근’‘24시간 메신저 감옥’이라는 신조어를 낳은 세계 1위 스마트폰 보급률을 감안하면 근무시간은 더 늘어난다. 문자와 카톡은 주말이나 휴가 때도 쉬는 법이 없다. 많은 직장인이 “24시간 출근해 있는 기분이다” “퇴근해도 퇴근한 게 아니다”라고 호소하는 까닭이다. 실제 직장인 5명 중 4명은 퇴근 후나 주말, 휴가 중 업무지시를 받은 적이 있다. 이에 따른 초과 근무시간은 1주일에 11.3시간이나 된다. 전자 사슬에 매여 24시간 긴장해야 하는 공관병 신세와 같다.

▦ 프랑스는 세계 최초로 올 1월부터 근로자의 접속 차단권(Right To Disconnect)을 인정한 법안을 시행 중이다. 퇴근 후 업무 관련 문자나 이메일과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명시했다. 독일 폴크스바겐은 노사협약을 통해 업무 종료 30분 후부터 사내 이메일 기능을 차단한다. 다임러 벤츠는 휴가 중인 직원에게 오는 이메일을 자동 삭제한다. 대신 발신자에게 휴가 중이라는 안내와 함께 대체인력 연락처를 알려 준다. “업무상 중요한 사내 메일은 20%에 불과한 데다 다른 동료가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 국내서도 근로자의 접속 차단권을 인정하는 법안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퇴근 후 문자 카톡 등으로 업무지시를 하면 과태료를 물거나 추가 임금을 지급하게 하는 내용이다. 이미 민간에선 CJ, LG유플러스 등 문자나 SNS를 통한 퇴근 후 업무지시를 금지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관련 공약을 제시했던 만큼, 정부도 스마트폰을 이용한 업무지시 관행을 개선하는데 적극적이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연말까지 SNS 등을 통한 퇴근 후 연장근로 실태를 파악해 대책을 내놓기로 했다.

▦ 일ㆍ가정 양립과 근로자 휴식권 보장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휴식 없는 노동은 근로자의 건강을 해치고 사회적 비용을 높인다. 업무 효율도 떨어뜨린다. 퇴근 후 접속 차단권은 저녁 있는 삶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직장마다 근무 여건이 다르고 직종에 따라 비상연락이 필요한 곳도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업무ㆍ직종별 특성을 무시한 일괄적인 법 적용보다는 노사협약에 따른 지침 마련이 바람직하다. 법이 도입돼도 장시간 노동이 만연한 기업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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