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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낮은 목소리' 길어올린 출판 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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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낮은 목소리' 길어올린 출판 거인

입력
2017.01.22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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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남들이 가지 않는 분야에 발을 디딜 때 쾌감을 느끼곤 했다.”

1966년 서울 청진동 옥탑방에서 민음사를 창업한 이래 50년을 출판인으로 산 고 박맹호 민음사 출판그룹 회장은 2012년 내놓은 자서전에서 자신의 출판인생을 이렇게 요약했다. 실제 그의 출판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민음사는 1970년대 참신한 기획을 발판 삼아 출판계에 우뚝 섰다. 1972년 시작한 ‘세계 시인선’이 한 예다. 당시 해외작품은 해적판 아니면 일본어 중역판이 돌아다닐 때였다. 민음사는 해당 언어를 공부한 전공자들을 붙여다 원전 그대로 번역하는 시도를 했다. 원전에 목말라 있던 문학도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이끌어냈다.

이 작업 덕에 젊은 작가, 평론가들이 민음사를 수시로 들락거리게 되자 1974년 ‘오늘의 시인’ 총서를 내놓기 시작했다. 10년 정도 시를 써봐야 자비 출판으로라도 시집 하나 겨우 낼까 말까 하던 시절, 우리 시인들의 진면목을 내보인 걸작으로 평가 받는다. 이 총서를 통해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 김춘수의 ‘처용’, 천상병의 ‘주막에서’, 고은의 ‘부활’ 같은 책들이 선보인다. 이는 1976년 계간지 ‘세계의 문학’창간, 1977년 ‘오늘의 작가상’ 제정으로 이어졌다. 1981년에는 ‘김수영 문학상’도 만들었다.

파격적 시도는 계속 이어졌다. ‘오늘의 시인’ 총서에서 가로쓰기를 도입했다. 단행본에서 가로쓰기가 도입된 건 처음이었다. 또 오늘날 ‘시집’ 하면 떠올리는 책의 판형도 이 총서에서 시작됐다. ‘띠지’도 민음사가 처음이었다. 책 디자인에도 관심이 많아 북디자이너 정병규씨를 영입해 전권을 위임했다. 올빼미처럼 일하던 정씨를 위해 ‘오후 3시 출근’도 받아들였다. 정씨는 1977년 한수산의 장편소설 ‘부초’를 내면서 그전까지 문학서에서 볼 수 없었던 파격적 디자인과 함께 띠지를 처음 선보였다.

묵직한 인문학 책도 외면하지 않았다. 1983년 대우재단과 손잡고 시작한 ‘대우학술총서’는 우리나라 인문사회과학의 수준을 한단계 높였다는 평을 받는다. 1999년까지 모두 424권을 출간했다. 이승우 도서출판 길 기획실장이 고인을 일러 “한국 교양의 거대한 뿌리”라 부르는 이유다. 1990년대 초반 입사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이영준(현 경희대 교수)씨를 주간으로 파격 발탁하는 등 전문편집자 시대를 연 것 또한 고인의 공로다.

1998년에는 ‘세계문학전집’ 기획을 가동했다. 민음사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1993년부터 기획작업에 착수한 이 시리즈는 최고의 작품에 최고의 번역가를 붙인다는 원칙 아래 지금까지 346권을 출간했다. 고인은 “출판인으로서의 꿈의 시작이자 마지막”이라고 했다. 다양한 분야로도 진출했다. 1994년에는 아동ㆍ청소년 책을 내는 자회사 비룡소를, 1996년과 1997년에는 장르물을 내는 황금가지와 대중과학서를 내는 사이언스북스를 잇따라 설립했다. 민음사는 8개의 출판브랜드를 갖춘 출판그룹으로 발돋움했다.

1955년작 ‘자유풍속’이 탈락한 뒤 58년 만에 명예당선의 영광을 안은 박맹호(왼쪽에서 세 번째) 민음사 회장이 2013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에서 다른 수상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55년작 ‘자유풍속’이 탈락한 뒤 58년 만에 명예당선의 영광을 안은 박맹호(왼쪽에서 세 번째) 민음사 회장이 2013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에서 다른 수상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고인은 “사람은 책을 통해 완성된다”는 말을 끊임없이 되뇌었다. 출판사 이름을 민음(民音)으로 정한 것부터가 그랬다. “세상의 낮은 목소리를, 우아하고 품위 있게 담아내겠다는 의미”라는 설명이다. 책으로 ‘씨알의 소리’를 퍼뜨리겠다는 얘기인 셈이다.

이는 출판인의 길을 택한 이유와도 통한다. 계기는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탈락이었다. 고인은 당시 자유당 정권을 풍자한 소설 ‘자유 풍속’을 내놨다. 작품 자체는 문제없었다. 정반대였다. 심사위원이었던 평론가 백철은 “지금까지 우리 문단에서 그 예가 없는 장관을 창조한 작품”이라 극찬했다. 반어법을 활용해 이승만 정부의 추악한 면모를 정면으로 고발했다. 조지 오웰의 작품을 탐독했다던 고인다운 접근법이었다. 그러나 엄혹한 정치적 환경 때문에 결국 탈락됐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한운사 한국일보 문화부장의 부탁으로 한국일보 일요판에 ‘오월의 아버지’란 제목으로 뒤늦게 게재되기도 했다. 소설의 주인공 ‘맥파로’(麥波路)를 따서 고인은 한동안 ‘맥파로’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심장에 들끓던 ‘민음’을 쏟아내고자 했던 고인에게 한국일보사는 2013년 ‘자유풍속’에다 ‘신춘문예 명예당선’을 안겼다. 그 때 고인은 “건강이 허락한다면, 이런 작품 또 한번 써서 한국일보에 투고하겠다”고 했다. 고인과 함께 그 약속도 영원히 잠들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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