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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선 기자

등록 : 2018.02.02 04:40

[북 리뷰] "입술은 저항할 수 있다"

김현 두번째 시집 '입술을 열면'

등록 : 2018.02.02 04:40

두번째 시집 '입술을 열면'(창비)을 낸 김현 시인. “가방에 시집 원고를 넣어 다녔다. 그곳에 시가 있따는 것만으로도 입술이 무거웠다”고 했다. 창비 제공

시집은 ‘박근혜’로 열리고 ‘세월호’로 닫힌다. 2009년 등단한 김현(38)의 두 번째 시집 ‘입술은 열면’(창비).“벗/ 대학시절/ 청년노동자/ 우리들의 하느님//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다”(첫 번째 시 ‘불온서적’) “이 아이들은 이 아이들과 중학교를 같이 다녔습니다/ 역사의 주인공들이지요// 어디서 노란 것을 구조해왔나요// 가만히 있어라/ 안녕들 하십니까”(마지막 시 ‘열여섯번째 날’)

정치가 시집을 가두진 않는다. 53편의 시는 격정과 서정과 생활을 오간다. “빵을 위해 싸우지만 장미를 위해 싸우기도 하는”(산문집 ‘걱정 말고 다녀와’) 시인이 썼으므로. 붉은 표지의 새 시집은, 감각의 전위였던 첫 시집 ‘글로리홀’(2014∙문학과지성사) 못지않게 두껍지만 독자를 조금 덜 괴롭힌다. 김 시인은 1일 전화통화에서 “글로리홀을 낼 때는 ‘시집은 내가 만들어 낸 나만의 세계니까 독자들이 알아서 놀다 가라’는 생각이었다면, 이번엔 독자들이 시집을 사람으로 느끼고 교감하게 하고 싶었다”며 “생활의 가까이에서 생활에 가까운 것을 경계하며 시를 썼다”고 했다. 그가 ‘디졸브(영화에서 두 장면을 서서히 겹치며 화면을 전환하는 기법)’라고 이름 붙인 각주를 따라다니느라 긴장하는 시 읽기를 해야 하는 건 그래도 여전하다.

김현은 행동하는 시인이다. 그는 시로 선동한다. 입술을 열어 불평하고, 비판하고, 위로하고, 이름을 부르라고. 그래야 세상이 바뀐다고. 그는 “‘입술을 열면’ 뒤에 ‘미래가 나타나고’가 생략돼 있다”고 했다. “경언아/ 그래도 전단은 붙여야지 산 사람을 찾아야지// 말해버렸다/ 입술은 행동할 수 있다// 사람이라는/ 진실은 이토록 정처 없이 희망차고”(‘열여섯번째 날’) 경언은 세월호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한 304명을 기억하려는 사람들의 모임인 ‘304 낭독회’에 김 시인과 참여하는 문학평론가 양경언이다. 김 시인은 친한 이들부터 박근혜까지, 이름을 자꾸 부른다. 망각을 거부하고 저항을 다짐하는 호명이다.

김현 시인. 배우한 기자

“입술”만큼 “빛”이 자주 등장한다. “눈앞이 컴컴한 밤의 정부”를 몰아 낸 그 빛이자, 김 시인의 오랜 연인의 애칭이다. “우리는 가난한 게이들이야/ 그도 대꾸한다/ 우리는 가난한 노동자들이지/ 그 역시 대답한다/ 바지를 아껴 입자”(‘빛의 뱃살’) “나는 동성애자의 손목을 본다/ 사랑이 연약한 뼈라는 것을 생각한다// 나는 빛에게 새끼처럼 매달린다/ 머리 쓰다듬어줘”(‘빛은 사실이다’) 김 시인의 넘치는 사랑은 그러나 “비극을 건축”하는, 차별받는 사랑이다.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내가 조선의 호모다”라고 선언하고, “뜻대로 가슴을 얻”고 나서 “그제야 아, 나는 조선의 남자구나 가슴에 손바닥을 올린다”(‘가슴에 손을 얹고’)며 억압에 맞선다.

김 시인은 2016년 문예지에 쓴 글에서 문단 성폭력을 고발했다. 당시 그가 ‘미스김’으로 불린, 커밍아웃하기 전의 과거를 증언한 건 ‘이반의 미투’였다. 그는 “정권이 바뀌었어도 젠더, 성소수자 문제와 관련해 나와 문학이 내야 할 목소리가 있다”고 했다. “십자가로 거짓을 치장하는/ 병든 것들아//…너희는 모두/ 꽃병에 꽂힌 위선자다”(‘빛의 교회’) 몇 년 전 쓴 시이지만, 신에게 용서받았다고 간증했다는 어떤 권력자와 그가 대표하는 힘 있는 자들이 겹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입술을 열어 이름 불러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입술을 열면

김현 지음

창비 발행∙164쪽∙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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