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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가이 포크스 (1.31)

입력
2018.01.31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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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의 주인공 가이 포크스가 1605년 1월 31일 반역 혐의로 처형됐다.
가면의 주인공 가이 포크스가 1605년 1월 31일 반역 혐의로 처형됐다.

잉글랜드 국왕 헨리 8세(1509~1547 재위)는 궁녀 앤 불린과 재혼하기 위해 1534년의 ‘수장령(首長令)’으로 교회재산과 성직 임명권을 포함, 모든 교회 관련 권한을 국왕인 자신에게 귀속시켰다. 스스로 성공회의 수장이 됐고, 후속 법령 ‘반역법’을 제정,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모든 종교적 저항을 대역죄로 억눌렀다. 대상이 가톨릭과 개신교였다.

존재감 없던 후계자 에드워드 6세(1537~1553 재위)와 9일 만에 퇴위 당한 제인 그레이에 이어 집권한 게 ‘피의 메리’라 불리는 메리 1세(1553~1558 재위)다. 하지만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메리는 강력한 가톨릭국가 재건을 위해 성공회와 개신교 성직자 300여 명을 참수했다. 이어 집권한 엘리자베스 1세(1558~1603년)는 수장령으로 탄생한 헨리 8세와 앤 불린 커플의 딸로, 성공회 신자였다. 탁월한 내ㆍ외치로 잉글랜드의 세계제국 기틀을 다진 그는 종교에 관한 한 차별 없는 중용정책을 펼쳤다. 메리 치세 튜더 왕조의 공포정치를 벗어난 성공회는 국가(왕실)의 간섭 없이 보편교회로 성장하는 전기를 맞이했다. 가톨릭 교회세력과 귀족들은 자못 불만스러웠지만 왕실의 위세에 숨을 죽여야 했다.

스코틀랜드에서 건너와 상대적으로 기반이 약했던 제임스 1세(1567~1625 재위)는 즉위 직후 청교도들의 성공회 개종을 강요하는 등 선대와는 달리 공격적 종교정책을 펴나갔다. 그에 반발, 골수 가톨릭 집단이 도모한 테러 모의가 이른바 1605년의 ‘화약음모사건’이었다. 주모자 로버트 캐츠비(Robert Catesby, 1572~1606) 등 13명의 공모자들은 그 해 11월 5일 상원의회 개원일에 웨스트민스터 궁을 폭파해 왕과 귀족들을 몰살시키고자 했다. 궁 지하실에 폭약 통 36개를 옮겨두고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임무를 맡았던 이가 가이 포크스(Guy Fawkes, 1570~1606)였다. 하지만 한 공모자의 밀고로 폭파 계획은 실패했고, 포크스는 현장에서 체포돼 고문 끝에 가담자 등 계획 전모를 실토한 뒤 1월 31일 처형됐다.

가톨릭 광신도에다 극단적 보수주의자였던 가이 포크스가, 특유의 가면과 함께, 자유와 혁명, 반정부 저항의 상징으로 부각된 것은 작가 앨런 무어의 1980년대 그래픽 노블 ‘브이 포 벤데타’와 2006년 할리우드에서 만든 동명의 영화 덕이었다. 우리가 아는, 영웅들의 가면 뒤에는 낯선 얼굴도 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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