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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미 칼럼] 비속한 한국, 우아한 한국

입력
2017.03.09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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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격 있는 삶” 하면 좋은 옷, 장신구, 차, 집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로 그런 모든 것을 다 지녀도 품성이 추하고 비속하면 우아해 보이지 않는다. 남루한 옷과 집이지만 아름답게 살다 가신 동화 작가 권정생 선생이나 성철 스님 같은 분들의 삶이 실은 정말로 품격 있는 삶이다. 빈부, 귀천, 우아함과 비속함은 전혀 다른 궤도에 있는 것이지 절대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을 실학자 최한기는 감평론에서 이미 자세히 설명한 바 있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소득은 높지만 국민들의 교양이나 행복도는 따라 주지 않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소득은 낮지만 영성이 훌륭하고 전통이 아름다운 부탄이나 네팔 같은 나라도 있다. 속도와 경쟁으로 심성이 황폐해진 요즘엔 특히 느리고 평화로운 삶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는 것 같다. 찾고 싶은 관광지, 이민 가고 싶은 나라의 조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고도성장을 빠르게 이룩한 나라답게 대도시들은 그저 정신 없이 돌아가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빡빡하고 급하게 달리고 걷는 도로에, 고층 빌딩에, 복잡한 상가들, 일상에서 지친 마음과 몸을 달래고 싶은 관광객의 눈에는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은 풍경인 곳도 많다. 물론, 강릉 춘천 전주 광주 순천 같은 아름다운 중소 도시들이 있긴 하지만 외국인 관광객들을 끄는 다양한 관광 상품이 그 동안 상대적으로 너무 빈약했다.

국민의 공감도, 주변 국가와의 소통과 이해도 없이 대통령 혼자 전격적으로 결정한 사드 배치 때문에 중국 관광객에 의지했던 면세점은 텅텅 비고, 항공편은 취소되니 관광업계가 거의 빈사상태라 한다. 개성 공단의 폐쇄나 사드 배치 결정은 그리 급히 하면서 메르스나 AI, 중국의 한국관광 제한 조치에 대한 대처는 왜 그리 느렸던지. 도덕적 결함 여부를 떠나 일 머리 없는 무능함만으로도 탄핵감이라는 소리가 나오게 생겼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힘은 휘두르지만, 문화적 정치적 소양 없는 대통령이 저지른 일들의 뒤처리를 힘없는 국민이 해야 했던 적이 어디 한 두 번이었는가.

우선 쇼핑에만 매달리는 유커들의 관광 특수에 취해서, 한국 고유의 문화 콘텐츠를 개발해 내놓지 못한 안일함에 대한 뼈아픈 반성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일본이나 중국은 전통 문화가 비교적 외부에 잘 알려져 있어서 다양한 체험 관광에 대한 수요가 있다. 하지만 한국은 좀 다르다. 가전제품, 화장품, 성형수술, 한류 스타 같은 이미지뿐이니, 문화 관광국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렇다면 조상들이 우리에게 남긴 게 정말 그렇게 없는 걸까. 절대 그렇지는 않다. 일례로 일본의 관광 상품 중 하나인 “노”란 복합 공연 연극을 보자. 노래는 매우 느리고, 장면 변화는 거의 없어서 얼핏 지루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교토나 나고야 같은 전통 도시에는 노 전용 공연장들이 있어서 속도와 물량으로 영혼까지 아프게 만드는 디지털 시대의 독을 빼고 싶은 선진국의 관광객에게 깊은 사랑을 받는다. 우리나라에는 판소리뿐 아니라 “노” 보다 더 아름답고 못지 않게 느린 “가곡”이란 장르가 있다. 다만 외국인은 물론 내국인조차 아는 사람이 드물다. 가곡이나 판소리 한국무용 전용 공연장으로 안내하는 관광상품도 찾아 보기 힘들다. 물론 국악 공연장이 있긴 있지만, 교통이 불편하고 공연계와 관광업계가 서로 적극적으로 협업하지 못하는 것 같다. 세계적인 연주자들 못지않은 실력을 갖춘 음악가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거의 실직 상태로 있다. 지금이라도 문화상품을 자꾸 만들면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미술계도 그렇다. 일본은 이미 19세기에 회화와 염색 작품 등이 서구에 소개 되어 자포니즘(Japonism)이란 말이 있을 정도라 중소 도시 곳곳에 다양한 미술관과 박물관이 외국 관광객을 끌어 들인다. 우리 언론이나 국민은 누구 작품이 얼마에 팔렸냐는 식에만 관심을 보이고 정작 자국의 문화 가치를 올릴 만한 전통 되살리기에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역량 있는 작가들은 넘치지만 문화대국이란 소리를 못 듣는 이유다.

물려받은 문화적 전통을 못 살리고 있다는 자괴감과 부끄러움을 조금이라도 달래고픈 마음에 천문, 지리, 의약, 수학, 외국어에 모두 뛰어난 중종 시대의 천재 음악가 북창 정렴의 시 한 편을 소개해 본다.

“문장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는 일/ 한갓 누가 되고/ 부귀로 번성해도 역시 쓸데없는 일/ 산속의 창가 적막한 밤에/ 분향하고 말 없이 앉아/ 솔바람 소리 듣는 것은 어떠할까” (송지원 지음 한국음악의 거장들).

느리게 살자는 휘게에 열광하여 요즘 북유럽 관광, 북유럽 이민을 꿈꾸는 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전통 문화에도 북유럽 못지않은 여유와 품격의 미학이 차고 넘친다. 전통을 제대로 가꾸고 발전시켜 외국인들에게 자랑스럽게 소개하지 못한 건 순전히 우리의 무책임, 무능함 때문이다.

이나미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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