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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의 제5원소] 그런데, 다스는 누구 겁니까?

입력
2017.11.07 15:05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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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고대 그리스의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 즉 아르케가 물이라고 했다. 탈레스가 왜 물이 만물의 근원이라고 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후대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석에 따르면 모든 영양분이나 씨앗에 습기가 있고 그 덕분에 생명체가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21세기의 과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탈레스의 주장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물은 지금도 생명에 가장 중요한 물질이다. 2,600여 년 전 사람들 입장에서는 물이 만물의 아르케로 전혀 손색이 없었을 것이다.

정답을 찾는 교육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탈레스 하면 물이라는 그의 대답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탈레스가 철학의 아버지라는 위대한 칭호를 얻은 이유는 물이라는 답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질문 때문이었다. 만물의 아르케가 무엇이냐는 질문은 만물의 보편성을 따져 묻는 질문이고 나아가 자연과 우주의 가장 근본적 원리를 추구하는 질문이다. 위대한 질문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젖힌다. 그래서 질문이 중요하다. 탈레스의 뒤를 이었던 아낙시메네스와 아낙시만드로스, 엠페도클레스 등이 모두 탈레스의 질문에 화답했다. 내가 연구하고 있는 입자물리학도 따지고 보면 탈레스의 2,600년 된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학문이다. 20세기의 과학자들이 알아낸 결과를 종합하면 만물의 근원은 원자로서, 원자는 다시 쿼크와 전자라는 기본입자로 구성돼 있다.

탈레스보다 훨씬 후대에 살았던 독일의 다비드 힐베르트는 20세기를 연 가장 뛰어난 수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00년 파리에서 열린 세계수학자대회에서 힐베르트는 전 세계 수학계가 해결해야 할 23개의 문제를 제시했다. 힐베르트의 23가지 문제는 향후 수학뿐만 아니라 20세기 인류의 문명 전체에 큰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2017년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위대한 질문을 하나 꼽으라면 나는 지난 겨울 촛불의 광장에서 울려 퍼졌던 “이게 나라냐?”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이 반어적 질문은 물론 당시 이 꼴의 나라는 더 이상 나라가 아니라는 시민들의 웅변이 담겨 있다. 사람이 탄 배가 침몰하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라, 질병이 퍼져 사람과 가축이 죽어나가도 속수무책으로 방역의 기본조차 제대로 구축하지 못하는 나라, 피해 당사자와 국민의 뜻과는 무관하게 성 노예 할머니 문제를 자기 마음대로 가해자와 합의해 버리는 나라, 권력에 밉보인 사람은 어김없이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나라, 국민이 위임한 권한이 법과 제도에 따라 행사되지 못하고 사사로운 인간관계에 의해 좌우되고 농락되는 나라.... “이게 나라냐?”는 질문에는 나라, 또는 국가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한민국 시민들의 집단적 고민과 성찰이 담겨 있다. 그런 큰 성찰이 주권자로서의 주인의식과 만났기 때문에 2016~7년 촛불혁명은 세계사에 유래를 찾기 힘든 평화적 정치혁명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

나라를 나라답지 못하게 했던 적폐를 청산하는 것은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포기할 수도 없고 타협할 수도 없는 역사적 과업이어야 한다. 정치적 이해관계나 순간의 이로움을 위해 얼렁뚱땅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탈레스의 혜안을 빌어, ‘적폐의 아르케’를 추적해 그 수준에 맞는 처방과 대책까지 살펴야 한다.

적폐의 아르케가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른다. 다만 박근혜 정부의 탄생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이명박 정부가 적폐의 아르케로 향하는 하나의 포털임은 확실해 보인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난 2012년 대선 자체가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의 치밀한 여론조작 공작 속에서 치러졌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런 이명박 정부의 출생의 비밀 한가운데 이른바 BBK 주가조작사건이 있다. 주가조작으로 수많은 투자자에게 큰 피해를 입힌 투자자문회사 BBK의 실소유주는 BBK에 190억을 투자한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의 실소유주일 수밖에 없다. 꼭 10년 전인 2007년 대선 때부터 세간에는 다스의 실소유주가 이 전 대통령이라는 의혹이 파다했다. 지금은 그런 의혹에 신빙성을 더하는 자료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만약 이 전 대통령이 정말로 다스의 실소유주라면 우리는 주가조작 사범을 대통령으로 뽑아 5년 동안 국가운영을 맡긴 셈이다.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는 질문은 단지 다스의 실소유주가 누구인지만을 묻는 질문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언론이, 검찰이, 국세청이, 왜 진실규명에 철저하지 못했는지, 왜 우리는 합리적 의혹과 질문을 무시하고 그런 분을 대통령으로 선택했는지,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함께 되돌아보는 출발점이다. 따라서 적폐의 아르케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는 질문인 셈이다.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우리는 알 것이다.” 힐베르트의 묘비에는 그가 정년퇴임 연설 때 했던 이 말이 새겨져 있다. 다스는 누구의 것인지, 우리는 꼭 알아야만 한다. 우리는 반드시 알아낼 것이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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