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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돼지도 거식증에 걸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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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돼지도 거식증에 걸릴까?

입력
2017.07.20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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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중독, 자살, 암, 강박증, 거식증. 인간과 동물이 앓는 신체ㆍ정신적 질병에는 놀라울 만큼 동일한 점이 많다. 책 ‘의사와 수의사가 만나다’는 수의학과 인간의학을 아우르는 통일적 관점, 즉 ‘주비퀴티(zoobiquity)’의 개념에 대해 설명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약물중독, 자살, 암, 강박증, 거식증. 인간과 동물이 앓는 신체ㆍ정신적 질병에는 놀라울 만큼 동일한 점이 많다. 책 ‘의사와 수의사가 만나다’는 수의학과 인간의학을 아우르는 통일적 관점, 즉 ‘주비퀴티(zoobiquity)’의 개념에 대해 설명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의사와 수의사가 만나다

바버라 내터슨-호러위츠, 캐스린 바워스 지음ㆍ이순영 옮김

모멘토 발행ㆍ488쪽ㆍ2만2,000원

자살하는 쥐, 강간하는 물개, 마약에 취한 왈라비의 소식은 인간을 당황스럽게 한다. 문명 안에서만 발생하는 거라 믿었던 온갖 정신 장애가 동물의 세계에서 고스란히 발견된다는 건 뭘 의미할까.

심장전문의 바버라 내터슨-호러위츠와 과학 저널리스트 캐스린 바워스가 함께 쓴 ‘의사와 수의사가 만나다’는 인간의 질병과 동물의 질병에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를 파헤친 책이다. 두 사람이 창안한 개념 ‘주비퀴티(zoobiquity)’는 동물을 뜻하는 그리스어 ‘zo’에 모든 곳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ubique’를 합친 말로, 수의학과 인간의학을 아우르는 통일적 관점이 필요하다는 데서 출발했다.

암에 걸린 공룡, 자해하는 말, 우울증을 앓는 고릴라, 반항하는 사춘기 원숭이의 이야기는 말할 것도 없이 흥미진진하다. 캐나다 로키산맥에 사는 큰뿔야생양 중엔 이가 잇몸까지 닳아버린 녀석들이 있다. 절벽에 자란 향정신성 지의류(곰팡이와 조류가 복합체가 되어 생활하는 식물군)를 이빨이 닳을 때까지 뜯어낸 것이다. 아시아의 아편생산지역에서 사는 물소들은 양귀비 추수가 끝난 뒤엔 금단증상에 시달린다. 이들은 자연의 환각물질을 ‘우연히 한 번’ 접한 게 아닌, 명백한 중독자들이다. 저자들은 여기서 약물에 중독된 인간들의 “못 끊겠어”란 호소를 겹쳐 듣는다. 그리고 묻는다. 동물이 약에 중독되는 이유를 알아낸다면 인간에 대한 처방도 바뀌지 않을까. 의학계가 약물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주로 ‘의지 박약에 대한 질타’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것 또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저자들은 동물의 마약 중독을 생존을 위한, 즉 진화과정에서 살아남으려는 행동의 결과로 본다. 동물이 젖을 빨고, 식량을 저장하고, 둥지를 지을 때 뇌에서는 긍정적인 기분을 자아내는 화학물질이 분비된다. 생존에 적합한 행동을 응원하는 일종의 “생존 회로”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응원’을 받기 위해선 사냥과 같은 ‘일’을 해야 하지만, 약물은 그 과정을 생략해준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긍정적인 기분만 느끼려는 태도는 어쩌면 ‘못난’ 중독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개체의 생존 가능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유전되어온 뇌의 생명활동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 차이는 1.4%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인간의학은 나머지 98.6%의 유사성을 간과한 채 발전해온 측면이 크다. 게티이미지뱅크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 차이는 1.4%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인간의학은 나머지 98.6%의 유사성을 간과한 채 발전해온 측면이 크다. 게티이미지뱅크

독자는 내내 갸웃거리면서도 눈을 뗄 수 없다. 거식증을 앓는 돼지 이야기로 가면 숫제 저자와 대결하는 기분이 든다. 문명, 그것도 매스컴 이후의 최신 문명이 탄생시킨 질병으로 여겨져 온 거식증을 어떻게 동물이 앓을 수 있을까. 저자는 거식증에 걸린 동물이 음식을 줄이는 것은 물론이고 많은 양의 짚을 먹는다는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거식증 환자들이 샐러드만 먹는 행동과 병치시킨다. 그렇다면 돼지도 인간처럼 사회가 원하는 신체상에 반응해 신체 왜곡을 꾀한다는 것일까.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불안과 섭식의 오랜 상관성이다. 지구의 탄생 이래 모든 동물은 포식자의 눈을 피해 불안에 떨며 “순조롭지 못한 식사”를 해왔고, 이는 우리의 DNA에 “오래된 기억”으로 박혀 있다는 것이다. 음식을 먹으면서 포식자를 피해 다니는 동물의 행동은, 섭식장애를 앓는 인간의 사회 공포증과 언뜻 겹쳐진다. 살찌는 데 대한 두려움이 실은 포식자, 즉 사회적 강자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것, 이를 극복하려면 자기 삶 속의 포식자를 먼저 인식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엔 또 하릴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주비퀴티는 진화심리학과 비슷한 위험요소를 안고 있다. 문명 공동체 안에서 일원으로 살기 위해 인간의 본능을 조절하는 일이 완성단계에 이르지 않은 시점에서, 본능에 주목하는 일은 의도치 않은 방종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의학이 놓친 것, 혹은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본다는 점에 주비퀴티의 가치가 있다.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 차이는 1.4%에 불과하지만, 바로 그 부분에 모차르트와 화성탐사로봇, 분자생물학 연구를 가능케 한 신체적, 인지적, 감정적 특질들이 들어 있다. (…) 이 1.4%의 장엄한 빛에 가려 우리는 98.6%의 유사성을 보지 못한다. 명백하지만 범위가 좁은 차이점에서 잠시 시선을 돌려 숱하고 엄청난 유사성을 받아들이자고 권유하는 것이 바로 주비퀴티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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