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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포커스] 헬조선에선 드라마 주인공들도 "환생해서 광명 찾자"

입력
2017.02.07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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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고은(왼쪽부터)의 tvN '도깨비'를 비롯해 이민호 주연의 SBS '푸른 바다의 전설'과 이영애가 출연하는 '사임당 빛의 일기'는 모두 환생을 소재로 한 드라마다. SBS스튜디오드래곤 제공
배우 김고은(왼쪽부터)의 tvN '도깨비'를 비롯해 이민호 주연의 SBS '푸른 바다의 전설'과 이영애가 출연하는 '사임당 빛의 일기'는 모두 환생을 소재로 한 드라마다. SBS스튜디오드래곤 제공

“이번 생은 망했어”

다시 태어나 못다한 꿈 이루는

환생 드라마가 유행

神처럼 삶을 관장하는 존재가

극중 주요 캐릭터로 급부상

#1 최근 화제 속에 끝난 tvN 드라마 ‘도깨비’에서 지은탁(김고은)은 도깨비인 김신(공유)과 사랑을 하다 납치도 당하고, 기억도 잃는다. 숱한 역경을 치르고 도깨비와 다시 만나 백년해로 할 줄 알았더니 29세의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다. 지은탁은 결국 죽었다 다시 태어나 김신과 못다한 사랑을 완성한다.

#2 19세 소녀는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듣다 차에 치여 숨을 거둔 뒤 저승사자가 된다. 저승에서도 정규직은 어려워 7년째 계약직으로 일하며 영혼을 인도한다. 죽어서도 가수만을 생각한 소녀는 가수가 죽을 위험에 처하자 운명에 개입한다. 현재 방송중인 MBC ‘세가지 색 판타지-우주의 별이’(‘우주의 별이’)는 환생을 통해 스타 우주(엑소 수호)를 지키려는 팬 별이(지우)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다.

TV가 ‘환생’에 빠졌다. 주인공의 환생을 소재로 한 드라마 제작이 잇따르고 있다. 올 상반기에만 무려 다섯 편이다. 종방한 ‘도깨비’와 ‘푸른 바다의 전설’을 비롯해 현재 전파를 타고 있는 SBS ‘사임당, 빛의 일기’와 ‘우주의 별이’가 환생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 방송관계자들에 따르면 배우 유아인이 출연을 검토 중인 tvN 새 금토 드라마 ‘시카고 타자기’(3~4월 방송)도 환생을 소재로 한 로맨틱 코미디 작품이다. 2015년에만 해도 환생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단 한 편도 없었던 것을 고려하면 열풍 같은 인기다. 주인공들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타임 슬립’에서 환생으로 드라마 유행이 급격하게 옮겨져 가는 분위기다.

올 상반기에만 5편… ‘청춘 환생 드라마’ 인기 이유

눈 여겨 볼 대목은 환생의 주체다. ‘도깨비’와 ‘우주의 별이’에서는 청춘이 죽고 다시 태어난다. ‘전설의 고향’처럼 한을 품고 복수를 위해 다시 태어나는 것과 결이 다르다. 꿈을 채 펼치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이들이 환생해 생전에 저마다 품고 있던 꿈을 하나씩 이룬다. 환생의 주 무대가 사극이 아닌 현대극이라는 점도 새롭다. 현실에서 끝내지 못한 숙제는 새로운 삶에서 풀고, 삶은 끝나지 않는다고 믿는다.

‘청춘 환생 드라마’ 유행의 원인을 전문가들은 “‘이번 생은 망했어’(‘이생망’)라고 여기는 청춘의 절망”(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에서 찾았다. 취업 절벽을 뛰어 넘기 위해 ‘호모 인턴스’가 된 청춘에게 현실은 지옥이다. 집값 등 생활비 부담으로 예전에는 누구나 제약 없이 누렸던 것이라 여긴 결혼과 출산 등을 포기해야 하고, 취업의 바늘 구멍을 뚫었다고 해도 고용 불안에 평생 시달려야 한다. ‘흙수저’를 자처하는 이들이 시련에서 벗어나는 길은 죽고 다시 태어나는 일뿐이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할 일을 다시 태어나면 이룰 수 있다고 믿고, 삶은 이번 한 번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란 꿈을 꿔야 그나마 현실을 버틸 수 있다.

전생에서 이번 생에 놓인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을 얻기도 한다. ‘사임당’에서 시간 강사인 서지윤(이영애)은 조선시대 속 자신의 전생으로 돌아가 학계에서 퇴출 위기에 처한 현실의 위기를 벗어날 방안을 찾는다. 이런 ‘이생망’ 세대의 절망은 또 다른 삶의 욕망으로 드라마에 반영되고, 시청자는 이를 대리 만족한다. ‘도깨비’에서 지은탁이 명부에도 없는 선택(죽음)을 해 스스로 행복을 찾는 결말을 특히 좋아했다는 대학원생 박민희(33)씨는 “갑갑한 현실에서 어떤 선택도 할 수 없는 내게 마치 선택의 기회를 준 것 같아 위안을 얻었다”고 말했다.

환생을 소재로 한 드라마에서는 저승사자 캐릭터가 인기다. tvN 드라마 '도깨비' 와 MBC '세가지 색 판타지-우주의 별이' 속 각각 저승사자로 나오는 배우 이동욱(사진 위)과 지우. MBC, 스튜디오드래곤 제공
환생을 소재로 한 드라마에서는 저승사자 캐릭터가 인기다. tvN 드라마 '도깨비' 와 MBC '세가지 색 판타지-우주의 별이' 속 각각 저승사자로 나오는 배우 이동욱(사진 위)과 지우. MBC, 스튜디오드래곤 제공

저승사자, 나비, 신… 로맨틱 코미디의 새 주인공

‘환생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극중 주요 캐릭터도 변하고 있다. 트렌디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엔 죽음과 삶의 다리가 되는 저승사자(‘도깨비’ ‘우주의 별이’)와 윤회를 상징하는 나비(‘도깨비’ ‘사임당’)가 ‘간판 손님’이 됐다. 새 삶의 기회를 주는 ‘신’(神)은 비중 있는 역을 독차지 한다. ‘도깨비’를 비롯해 올 하반기 tvN에서 방송 예정인 ‘하백의 신부’에서도 신이 주인공이다. 초월적인 캐릭터는 판타지가 품기 마련인 낭만만을 위해 쓰이는 게 아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구세주가 나타나지 않으면 도저히 이 불행한 현실에서 아무도 날 구해주지 못할 거란 절망이 ‘이생망’의 세계관”이라며 “이 인식이 판타지에 현실감을 불어 넣어 극의 몰입을 돕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실의 무기력함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시청자가 많은 만큼 ‘환생 드라마’의 유행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게 방송 관계자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지상파 방송사에서 일하는 15년 차 드라마 PD는 “환생은 드라마 특성상 주인공의 가장 찬란한 시기로 맞춰지기 마련”이라며 “40대 이상 장년층에겐 청춘에 대한 향수와 삶에 대한 열정을 동시에 줘 의외로 대중성 있는 소재”라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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