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
소설가

등록 : 2018.01.10 14:37
수정 : 2018.01.10 14:38

[장정일 칼럼] 이석기는?

등록 : 2018.01.10 14:37
수정 : 2018.01.10 14:38

지난해 12월 29일, 대통령 특별사면이 있었다. 내가 구독하고 있는 두 신문은 이튿날 이 소식을 비중 있게 다뤘다.‘한겨레’는 사설을 포함한 여섯 개의 기사를 쏟아냈고, ‘한국일보’도 사설을 포함한 다섯 개의 기사를 실었다. 두 신문의 기사 수는 비등하지만, 내용을 보면 두 신문을 같은 언론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다. ‘한국일보’는 사설과 별도의 기사(‘용산 참사 철거민 한 명 빼고 25명 사면… 한상균ㆍ이석기는 제외’)를 통해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을 호명했다. 반면 ‘한겨레’는 기사 어디에도 이석기가 나오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이름을 삭제하기 위한 검열마저 서슴지 않았다.

예컨대 ‘한겨레’의 어느 기사(‘강정ㆍ밀양 제외돼… 노동계ㆍ시민단체 “눈치보기 사면”’)는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과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의 말을 이렇게 인용했다. “한상균 등 양심수는 물론이고 강정ㆍ밀양ㆍ세월호ㆍ노동사건과 관련된 사람이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것은 매우 아쉽고 실망스럽다.”(김덕진) “강정ㆍ밀양에 대한 폭력적인 공권력 동원에 대한 현 정부의 입장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박래군)

김덕진 사무국장은 ‘이석기 의원 등 내란음모 사건 구속자 석방 문화제’(2014.7.12.)에서 사회를 봤으며, 2015년 세계인권의 날을 맞아 통합진보당 해산 선고의 부당성을 규탄하는 기자회견(2015.12.10.)을 여는 등의 활동을 펼쳤다. 또 박래군 상임이사는 ‘국정원 내란음모정치공작 공안탄압규탄대책위’ 상임대표로 있으면서 2017년 촛불 정국 중에 ‘양심수석방추진위원회’(2017.6.7.)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이런 이들이 인터뷰를 하면서 이석기를 빼먹었을 리 없다.

다른 신문사를 자꾸 들먹여 ‘한국일보’에 미안하지만, 하필이면 이 글을 쓰는 날 ‘한겨레’ 성한용 정치팀 선임기자의 칼럼 ‘어디다 대고 좌파 타령인가’를 읽었다. 성 기자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불씨를 살리려는 ‘좌파 광풍’을 비판하면서 이렇게 썼다. “색깔론은 분단체제에 편승해 집권한 친일 독재 기득권 세력의 오래된 무기다. 이승만 정권은 야당 의원들을 남로당 프락치나 국제공산당으로 몰았다. 1958년 진보당 사건을 조작해 조봉암 당수를 사형시켰다. 박정희 정권은 재일 유학생과 납북 어부들을 간첩으로 조작했다. 19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조작해 1975년 4월9일 8명을 사형시켰다. 전두환 정권은 아예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을 발판으로 출범했다.(요약 발췌)”

김선수가 대표 집필한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무엇이 문제인가?’(도서출판 말, 2015)와 이재화의 ‘기획된 해산 의도된 오판’(글과생각, 2015)을 보면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의 실체와 증거가 전무하며, 기소와 재판 과정에서 불법과 위헌이 난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 기자는 역대 정권의 공안 조작 사건을 나열하면서 통진당과 이석기를 고의적으로 누락하는 것으로, 인혁당 사건 이후 최대의 공안 조작 사건 피해자들에게 ‘빨갱이’ 낙인을 찍었다.

프랑스 육군 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간첩죄라는 누명을 쓰고 서인도 제도에서 유형을 살 때, 그의 형 마띠외 드레퓌스는 영국의 작은 항구 도시에 있는 신문사에 돈을 주고 ‘드레퓌스, 유형지를 탈출하다!’라는 가짜 기사를 실었다. 그러자 영국의 유명 신문들이 이 기사를 받아썼고, 급기야는 프랑스 신문들이 영국 신문의 기사를 받아쓰게 된다. N. 할라즈의 ‘드레퓌스 - 진실과 허위, 그 대결의 역사’(한길사, 1978)에는 마띠외가 그런 일을 벌였던 이유가 나온다. “동생의 사건에 대해 조용한 침묵이 흐른다는 것이 가장 불리한 것이라는 점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침묵은 동생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는 속임수를 써서라도 이 침묵을 깨버려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겨레’가 이석기 내란 조작 사건에 대한 여론을 봉쇄한 날, ‘조선일보’는 특별사면에 대한 세 건의 기사를 내면서 한 기사(‘文정부 첫 특사… 한상균ㆍ이석기 빠지고 불법집회 사면엔 물꼬’)에서 고맙게도 이석기를 언급해 주었다.

장정일 소설가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일보 페이스북

한국일보 트위터

한국일보닷컴 전체기사 RSS

RSS

한국일보닷컴 모바일 앱 다운받기

앱스토어구글스토어

한국일보닷컴 서비스 전체보기

Go

뉴스 NOW

이전

  • 종합
  • 정치
  • 사회
  • 경제
  • 국제
  • 문화
  • 연예
  • 라이프
  • 스포츠

다음

호되게 혼내되 선물은 확실히… 김정은식 통치
북한 시간 끌기에 美 제재 유지로 장기전 재확인
관중들을 들썩이게 만드는 북한 탁구, 강하다
하태경 “사격 등 포함된 여성 안보교육 의무화 추진”
‘러시아 스파이’ 혐의 20대 여성… “성로비로 보수 정치인에 접근”
중소 문구제조사 화이트산업 “다이소 도움에 일본 시장 뚫어”
성폭력 신고내용 절반이 2차피해… 상담했더니 소문 낸 인사담당자도

오늘의 사진

많이 본 뉴스

  • 1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