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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검사 출신 대법관에 반대한다

입력
2015.02.06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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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은 안정되고 선망 받는 단순한 직장인이 아닙니다. 강제력이 수반되는 재판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심판해 그의 운명을 결정 짓고 온 사회, 국가에까지 영향을 주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신임법관 임명식에서 빼놓지 않고 이르는 말이다. 지난해 4월에는 이런 말도 했다. “법관 중 한 사람이라도 국민에게 실망을 준다면 법원 전체가 불신을 받게 될 것이고, 그 결과에 대해 다른 모든 법관도 자유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한 법관으로 인해 형성된 법원의 초상은 바로 모든 법관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막 첫 발을 뗀 법관들에 대한 주문이 이토록 추상같은데, 대법관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을 터이다. 양 대법원장에게 묻고 싶다.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가 이런 법복의 무게를 감당할 만한 인물인가. 아니, 같은 잣대로 매서운 평가와 검증을 해 보기나 한 걸까.

양 대법원장은 박 후보자를 임명 제청하면서 “대법관에게 필요한 자질을 모두 갖췄다”고 치켜세웠다. “검사로 재직하면서 엄정한 법 집행으로 사법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헌신했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가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축소한 검찰 수사팀의 일원이었음이 드러나면서 할 말이 없게 됐다.

6ㆍ10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이 사건은 ‘사법정의 실현’은커녕 검찰이 정권과 야합해 ‘엄정한 법 집행’을 거스른 오욕의 사례로 역사에 남았다. 박 후보자가 당시 말단 검사여서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여당 일각의 해괴한 주장이나 “(축소 사실을) 뒤늦게 알고 괴로운 심정이었다”는 본인의 옹졸한 변명으로 넘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더구나 그는 92년 부산지검 재직 시 무고한 시민을 물고문한 경찰관을 이례적으로 불구속 처리한 전력도 있다.

그런데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과정에서 이런 전력은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법원행정처가 제공한 기초자료에서 누락됐고, 추천위도 따로 스크린을 하지 않았다. 국회에 제출된 임명동의안에도 이 대목은 빠졌다. 대법관 후보 추천과 임명제청 과정의 치명적 결함이 드러났는데도, 대법원 관계자는 “세부적인 검증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단다. 양 대법원장이 내세운 ‘법관의 자격’에 따르면 박 후보자는 “대법관 될 만한 분”이 아니다. 여당의 어설픈 방어막에 기대 시간을 끌수록 본인도 대법원도 더 큰 상처만 입게 된다.

이 참에 기준과 절차 모두 문제가 드러난 대법관 인선 과정도 뜯어 고쳐야 한다. 무엇보다 ‘서울대 법대ㆍ판사 출신ㆍ50대’가 장악하다시피 한 대법원의 구성을 다양화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검사 출신에 한 자리 내어준 것을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치를 아우르는” 인선으로 포장한 대법원의 논리에도, 상고법원 추진으로 한층 거세진 대법관 다양화 요구를 한동안 명맥 끊긴 ‘검찰 몫’ 부활로 퉁 치려는 처사에도 동의할 수 없다.

더 나아가 검사 출신이 대법관이 되는 것 자체가 타당한지도 따져볼 일이다. 검찰 출신 대법관은 1964년 주운화 대검 차장이 처음으로, 당시 인선에 박정희 정권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었음은 물론이다. 한국 검찰은 수장인 총장부터 전국 곳곳의 말단 검사까지 한 몸처럼 움직이는 조직이다. 검찰청법에 ‘상사의 명령에 복종’ 등을 명시한 이른바 ‘검사동일체의 원칙’ 규정은 2004년 ‘지휘ㆍ감독’ 규정으로 대체됐지만,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윤석열 수사팀장 항명 논란을 통해 여전히 통용되고 있음이 드러났다. 검사에게 요구되는 상명하복의 전통은 독립성이 생명인 법관의 자질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더구나 ‘정치검찰’의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는 조직에서 경력의 대부분을 쌓은 사람이 “국민이 신뢰하는 사법부를 만들어갈 최적격자”(박 후보자 임명제청서)라는 주장에 국민 몇이나 고개를 끄덕일까. 지난해 재심을 통해 ‘유서대필’ 누명을 벗은 강기훈씨가 23년간 모진 고난을 겪는 동안 사건조작을 지휘한 강신욱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장은 대법관까지 지내며 승승장구했다. 어떤 보상으로도 되돌릴 수 없는 비극을 다시는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박 후보자는 물론 검사 출신 대법관 임명에도 절대 반대한다.

이희정 논설위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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