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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ㆍ제염노동자, ‘안전’없이 위험에 내몰리다

입력
2016.02.2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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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호복 찢긴 채 작업, 창문 열어놓은 채 식사

피폭위험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10단계 하청 재하청으로 임금 처우 열악

계약서 없이 작업도 다반사

후쿠시마 도미오카에서 한 제염노동자가 오염된 흙이 담긴 검은 자루들을 정렬하고 있다. 피에르 엠마뉴엘 델레트헤 프리랜서기자 pe.deletree@gmail.com
후쿠시마 도미오카에서 한 제염노동자가 오염된 흙이 담긴 검은 자루들을 정렬하고 있다. 피에르 엠마뉴엘 델레트헤 프리랜서기자 pe.deletree@gmail.com

후쿠시마 사고 직후 외신들은 ‘후쿠시마 50인’이라는 영웅적 스토리를 전 세계에 타전했다. 이들은 대부분 원전 직원들이 피난한 상황에서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현장에 남았다고 전해졌다. 기술자와 단순직이 섞여있었는데 약 열흘 만에 그 수가 1,000명 이상으로 늘어났지만 여전히 이들은 ‘후쿠시마 50인’으로 불린다.

이들의 신원은 거의 밝혀지지 않았다. 도쿄전력을 위해 일했다는 점에서 영웅은커녕 사고의 원인, 혹은 사고를 제대로 막지 못한 장본인으로 몰리게 될까 두려워 노출을 꺼린다는 것이다. 리더로 알려진 현장소장은 일반인 연간한도 70배에 달하는 양에 피폭당하고, 식도암 판정을 받아 결국 사망했지만 도쿄전력은 방사능과는 관계없는 죽음이라는 최종 입장을 밝혔다.

아직까지 높은 방사선이 누출되고 있는 원전 내 노동자는 하루 약 7,000명에 달한다.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 재건에 투입되는 제염노동자는 3만~4만 명으로 추산된다. 전례없는 사고이니만큼 적절한 기계도 없어 대부분 사람 손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있다고 해도 그 기계를 현장에 가져다 놓아야 하는 건 결국 사람의 몫이다.

일본 정부는 노출되는 방사능의 양이 한 해 최대 50msv(국제기준 20msv), 5년 이내 100msv를 넘을 경우 일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 규정으로 사고 수습이 어려워지자 긴급상황에 대한 허용치를 연간 100msv에서 250msv로 대폭 상향 조정하기도 했다.

제염작업이 한창인 후쿠시마. 사고 직후 원전 및 제염 노동자 가운데 후쿠시마 지역민이 약 70%에 달했지만 피폭제한량에 도달한 노동자들이 늘어나면서 그 비율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피에르 엠마뉴엘 델레트헤 프리랜서기자 pe.deletree@gmail.com
제염작업이 한창인 후쿠시마. 사고 직후 원전 및 제염 노동자 가운데 후쿠시마 지역민이 약 70%에 달했지만 피폭제한량에 도달한 노동자들이 늘어나면서 그 비율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피에르 엠마뉴엘 델레트헤 프리랜서기자 pe.deletree@gmail.com

위험에 노출됐던 아마추어 노동자들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2년 가량 일한 고노(가명?68)씨는 수소폭발 잔해를 제거할 때 개인선량계를 옷에서 떼어낸 채 작업해야 했다고 고백했다. 허용수치를 초과하는 위험상황에서 작업을 마치려면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현재 그는 무려 세 종류의 암판정을 받은 상태지만 당시 피폭량이 제대로 기록되지 않아 보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는 “원전에서 일할 때 방호복이 찢어져있어 테이프로 직접 수선했다. 하루는 업무를 마치고 나서야 마스크에 필터가 없는 것을 발견한 적도 있다”는 증언도 내놨다.

다른 지역에서 만난 전직 제염노동자(2014년에 6개월 근무)는 “언론이나 주요 인사가 올 때만 제대로 방호장비를 갖췄다”며 “방사선 수치가 높은데도 아무도 그 위험을 알려주지 않아 차창을 연 채 점심 도시락을 먹곤 했다”고 말했다. 일을 그만둔 뒤에는 몸에서 세슘이 발견돼 한동안 우울증에도 시달렸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 방사능으로 인한 발병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은 갑상샘암 뿐이다. 그러나 원전노동자들과 피해지역 주민에게 백혈병 및 각종 암이 자주 발생한다는 연구는 꾸준히 이뤄져 왔다. 지난해 10월에는 후쿠시마 사고 현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에 걸린 전 직원에 대한 산업재해가 처음으로 인정됐다. <미국 정신의학회지>는 “후쿠시마 원전노동자는 현장에 대한 트라우마와 과중한 업무 외에 차별로 인한 스트레스 등에 노출돼 있다”며 정신건강에 대한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인프라가 완전히 무너진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지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편의점은 유일한 편의시설이다. 피에르 엠마뉴엘 델레트헤 프리랜서기자 pe.deletree@gmail.com
인프라가 완전히 무너진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지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편의점은 유일한 편의시설이다. 피에르 엠마뉴엘 델레트헤 프리랜서기자 pe.deletree@gmail.com

하청에 재하청, 노동자 권리는 없었다

전문가들은 후쿠시마 노동자들의 안전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가장 큰 원인으로 낡은 하도급 구조를 꼽는다. 야쿠자 업체가 연루됐다거나 노숙자가 고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도 이런 구조 때문이다. 하청-재하청으로 이어지는, 최대 무려 10번에 걸쳐 하도급이 이뤄지면서 노동자는 업무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지 못한 채 현장에 투입되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사고에 대한 책임소재도 불분명하다. 실제로 취재진이 후쿠시마 제1발전소 오노 아키라 소장에게 하청 노동자들의 안전을 어떻게 챙기는지 묻자 “그들을 고용한 회사의 책임”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업체들은 또 수수료나 식비, 교통비 등을 뗀다는 명목으로 노동자들의 위험수당을 가로채고 있다. 고용 및 계약 상황에 따라 노동자가 손에 쥐는 금액은 크게 달라지게 되는데 후쿠시마 노동자연합 관계자인 사이토 토미하루씨에 따르면 도쿄전력이 일당 5만~10만엔(위험수당 2만~8만엔)을 지불하는데도 7번 재하청급된 노동자는 고작 6,000~1만 2,000엔을 받게 되는 식이다.

2012년 도쿄전력이 하청노동자 4,000명(3,186명 응답)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29.8%가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위험수당에 대해서도 31%는 ‘받지 않았다’, 15%는 ‘잘 모르겠다’고 응답했다. 토미하루씨는 “조사대상이 소규모인만큼 실제 사람을 쓰고 버리는 상황은 더욱 심각할 것”이라며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노조결성을 조언하지만 대부분이 생계형이라 재고용이 안되거나 보복이 두려워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고 말했다. 시간과 비용싸움인 소송도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라고 그는 덧붙였다.

지방정부가 고용하는 제염노동자 역시 하도급은 존재한다. 최종 고용주체가 도쿄전력인 원전노동자에 비하면 그 횡포가 덜한 편이다. 이에 생계형 노동자들은 제한피폭량에 도달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제염쪽으로 자꾸 몰리는 실정이다.

후쿠시마 사고 4주기였던 지난해 3월 후쿠시마 노동자들이 사고로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묵념을 하고 있다. 피에르 엠마뉴엘 델레트헤 프리랜서기자 pe.deletree@gmail.com
후쿠시마 사고 4주기였던 지난해 3월 후쿠시마 노동자들이 사고로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묵념을 하고 있다. 피에르 엠마뉴엘 델레트헤 프리랜서기자 pe.deletree@gmail.com

전문가 없는 원전 현장

과거 스시체인점에서 일했던 한 노동자는 “원전에서 일한 지 반년 만에 베테랑으로 불렸다”며 “불과 1년동안 책임사항이 10번이나 바뀌었다”고 증언했다. 어떤 책임자는 “아마추어 작업자들은 그들이 다루는 도구의 이름조차 모른다. 마치 외계인에게 설명하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이처럼 원전 사고 현장의 전문가 공백도 심각한 문제다. 사고 초기부터 많은 전문가 및 숙련공들이 이미 피폭허용량에 도달해 현장을 떠났다. 또 하도급 등의 문제로 원전노동자들의 근속기간은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 직후부터 원전 및 제염노동자들을 추적 취재해온 후세 유토 프리랜서 기자는 “전문가가 줄어들면서 기존에 없던 안전사고들이 더욱 잦아지고 있다”며 “노동자들이 장기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못하면 나중에는 일할 사람이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초 후쿠시마 원전 및 제염노동자 70%가 후쿠시마 출신이었지만 타지역 비중이 절반까지 높아진 것도 그 징후 중 하나다. 그는 “나는 원전 반대론자이지만 폐로를 위해 노동자 투입은 불가피하다. 대신 국가가 원전 및 제염노동자들의 피폭량을 모니터링해 시프트제도를 마련하는 등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체르노빌 발전소에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하루평균 6,500여명이 발전소 내 폐로작업 등에 동원되고 있다. 후쿠시마 역시 얼마나 오랫동안 ‘후쿠시마 50인’을 더 양산할 지 알 수 없다. 후세 유토 기자는 “체르노빌은 법적으로 국가가 노동자의 질병과 피폭이 관계없음을 규명하지 못하면 보상하도록 하는 반면 후쿠시마는 노동자가 피폭으로 인해 병을 얻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며 “후쿠시마가 체르노빌보다 노동자들에게 더 잔인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후쿠시마=김혜경 프리랜서 기자 salutkyeong@gmail.com

다무라 히사노리 프리랜서 기자 hisanori.ymr@hotmail.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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