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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레 남편 떠난 후 유기견 돌보며 삶의 위안과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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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레 남편 떠난 후 유기견 돌보며 삶의 위안과 용기

입력
2018.03.21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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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견을 돌보며 우울증을 극복한 유선희씨.
유기견을 돌보며 우울증을 극복한 유선희씨.

유선희(61ㆍ대구 수성구 만촌1동)씨는 16년 전 우연히 길거리에서 유기견을 만났다. 며칠이 지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 굶주려서 가죽은 달라붙었고 피부병에 털은 엉클어져 있었다. 불쌍해서 외면할 수가 없었다. 가족들과 아이들에게 먼저 양해를 구했다.

“처음에는 밥 좀 주고 목욕이나 시켜서 보내려고 했죠. 그러다 정이 들었습니다. 측은지심에 유기견을 한 마리 한 마리 거두게 되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많이 먹고 다이어트 하는 것보다 내 먹을 것 조금 나눠먹는 것’이라고 설득을 했지요. 이제는 동네 사람들도 이해하고 도와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4년 전 몹시 더운 여름날, 딸아이와 탁구치고 귀가하던 중 길거리에서 길고양이를 만났다. 푹푹 찌는 아스팔트 위에서 눈물, 콧물에 거품을 토하며 죽어가는 고양이를 보았다. 집으로 데려와 급한 김에 개사료를 불려 먹이고 보살폈다. 배가 불룩하니 임신한 상태였다. 요양 후 밖으로 내보냈는데 대문 앞에서 꼼짝 않고 있었다. 그때부터 길고양이도 거두었다. 하루 한 번 동네를 돌면서 굶주린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은 이제 중요한 일상이 되었다. 고양이 사회에서 소문이 났는지 시간이 되면 정해진 장소에서 삼삼오오 기다리고 있다.

“나는 굶어도 사료 들고 동네 한 바퀴 돌고 나면 배부르고 뿌듯합니다. 아파도 나를 기다리는 길고양이 때문에 둥둥 싸매고 나갑니다. 사료비도 한 달 30만원 정도 듭니다. 나만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멈출 수가 없지요. 처음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도 받고 욕도 많이 먹었어요. ‘굶어 죽는 게 마음 아파 그러는 것이니 이해해 달라’며 주위를 설득했지요. 여행도 거의 못 갑니다. 급하면 딸아이와 여동생에게 대행시키는데 못 미더워 꼭 확인전화를 하지요, 하하! 정 붙이면 자식 이상입니다.”

길고양이는 개체 수 조정을 위해 중성수술을 한다. 비용이 20만원 남짓이다. 처음에는 사비로 했다. 비용이 만만찮았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구청 동물과에 문의했더니 구청에서 중성화수술을 해준다고 했다. 수술한 고양이는 귀를 살짝 잘라서 표시를 한다. 만촌1동에 가면 귀 잘린 길고양이를 많이 만날 수 있다.

“비록 환영받지 못한 생명이지만 숫자를 줄이기 위해 중성화 수술은 계속할 겁니다. 학대하고 욕할 게 아니라 사람과 공존하도록 방법을 찾고 보살펴야 합니다.”

2년 전 말복 날, 효목시장 근처 전봇대에 묶여있는 유기견을 식용 직전에 탈출시켰다. 이름을 은순이라 지었다. 유기견 센터에서 안락사 직전에 데려온 두부, 학대로 실명한 듯한 금이 등 강아지들의 사연이 가지가지다.

현재 유씨 집에는 유기견 7마리, 길고양이 5마리가 산다. 두부, 홍이, 은순, 둥이, 동이, 쌤, 금이, 콩이는 터줏대감 유기견이다. 양쌤, 양희, 양희, 순희, 양호, 양철, 양순이 등의 세입자와 평화롭게 공존한다.

비록 상처투성이지만 애교도 많고 재주도 각양각색이다. 쌤이는 빵, 하고 말하면 죽은 척한다. 대부분 잡종견이지만 예쁘다. 똑똑하다. 뒤처리가 깨끗한 고양이는 모래만 갈아주면 된다. 길거리 경험 탓에 외부 사람을 경계하고 할퀴기도 한다. 고양이는 영양실조에 걸리면 꼬리가 오그라진다. 봄이 되면 겨우내 늘어난 새끼고양이가 길거리에 많이 나온다. 5마리 중 1~2마리만 살아남는다. 개와 고양이에 관한 한 박사수준이다.

유씨는 2002년부터 16년째 이 마을에 살고 있다. 현재 4년차 통장이다. 동네 단체마다 소문난 총무이며 몸 봉사의 대명사이다. 늘 바쁘게 살았지만, 10년 전 남편의 급작스런 죽음 이후 우울증에 시달렸다. 유기견을 거두고 길고양이의 먹이를 주면서 몸도 마음도 회복되었다. 오히려 ‘그들이 나를 보살피고 힘이 된다’고 한다.

“굶주리며 나만 기다리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료를 들고 동네를 돌게 됩니다. 이제 중요한 일상이 되었습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외면할 수가 없습니다. 주위에서 ‘이쁜 놈들 키워라’ 합니다. 이쁘면 버리겠어요. 병들고 미우니까 버리는 겁니다. 동물을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바뀌었으면 합니다.”

강은주 기자 tracy11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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