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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렬하게 게으르게…‘윤식당’ 환상 섬에 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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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렬하게 게으르게…‘윤식당’ 환상 섬에 쉬다

입력
2017.08.15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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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프로그램 ‘윤식당’으로 널리 알려진 인도네시아 롬복의 길리트라왕안 섬의 해넘이. 해가 떨어지고도 검붉은 노을이 하늘을 수놓고 있다. 롬복=최흥수기자
예능 프로그램 ‘윤식당’으로 널리 알려진 인도네시아 롬복의 길리트라왕안 섬의 해넘이. 해가 떨어지고도 검붉은 노을이 하늘을 수놓고 있다. 롬복=최흥수기자

열대 섬의 매력은 게으름에 있다. tvN 예능 프로그램 ‘윤식당’은 인도네시아 롬복에 딸린 작은 섬 길리트라왕안(Gili Trawangan)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배우들에 초점을 맞췄지만, 시청자들이 눈여겨본 것은 스치듯 보여지는 섬의 풍경과 사람들이었다. 왜 똑같은 바다인데 유난히 한가로워 보이고, 똑같이 자전거를 타도 더 여유롭게 느껴지는지, 매일 보는 석양일 텐데 열대의 해넘이는 왜 더 붉고 낭만적인지.

억울하다, 왜 한국보다 시원하고 쾌적하지

“왜 하필 8월에 오셨어요?” 현지 가이드 알렉스가 미안함 가득한 표정으로 변명하듯 내뱉은 말이다. 한국에서 3년을 살았다는 그가 8월초 한국의 무더위가 사람을 얼마나 무기력하게 만드는지 모를 리 없다. 길리트라왕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예상보다 순탄치 못했던 탓이다. 롬복 북서부 해안에서 배를 탈 때만 해도 15분 정도 걸린다고 했는데 1시간을 넘겼다. 8월엔 종종 파도가 높아 수심이 얕은 선착장에 큰 배를 댈 수 없어 해상에서 작은 배로 옮겨 타야 했기 때문이다.

길리 섬을 오가는 소형 보트는 조종사와 선수에서 뱃길을 안내하는 도선사 2명이 한 조를 이뤄 운항한다.
길리 섬을 오가는 소형 보트는 조종사와 선수에서 뱃길을 안내하는 도선사 2명이 한 조를 이뤄 운항한다.
거친 파도를 넘고 왔는데, 섬 풍경은 한없이 평화롭다.
거친 파도를 넘고 왔는데, 섬 풍경은 한없이 평화롭다.
여행객들은 유럽인이 대부분이다.
여행객들은 유럽인이 대부분이다.
유럽의 어느 휴양지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유럽의 어느 휴양지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길리아이르 해변에서 달콤한 한 때를 즐기는 커플.
길리아이르 해변에서 달콤한 한 때를 즐기는 커플.
리조트 해변마다 비치된 쿠션 의자, 탐나는 아이템이다.
리조트 해변마다 비치된 쿠션 의자, 탐나는 아이템이다.

우여곡절 끝에 선착장에 내려 바다 쪽을 돌아보는데 배신감이 밀려왔다. 몸이 공중에 뜨는 스릴을 경험한 게 바로 몇 분 전인데, 눈부신 해변과 에메랄드 빛 바다, 그 위로 뭉게구름이 떠 있는 풍경이 아무일 없었다는 듯 평화롭기만 하다. 볕은 따가웠지만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결엔 끈적거리는 습기도, 비릿한 바다내음도 없었다. 실제 연중 아침 기온은 23~24도, 낮 최고 기온은 29~34도 수준이다. 안도하는 한편으로 또 한번 밀려드는 억울함, 북반구 중위도에 위치한 한국이 적도(실제로는 남위 8도 부근)의 섬보다 더 무더워야 할 이유가 뭔가. 지금은 건기여서 그렇겠거니 했는데, 현지 안내 책자는 우기인 10월에서 이듬해 4월까지가 여행하기 더 낫다고 적고 있다. 우기라도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 일은 드물고, 30분 이상 지속되지 않는단다. 습도도 건기보다 낮다니 교과서 상식과도 맞지 않는다.

‘윤식당’에서 봤듯이 이 섬의 교통수단은 자전거와 조랑말이 끄는 마차, 치도모(Cidomo)가 전부다. 맞은편 승객과 무릎을 엇갈라 앉아야 할 좁은 마차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면서 보는 풍경은 이곳이 유럽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자전거를 타고 뒤따라 오는 사람도, 해변에서 한가롭게 책을 읽거나 몸을 태우는 사람도 온통 백인뿐이다. 실제 여행객 중 상당수는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인이고 호주인들이 일부 있단다. 현지 주민을 빼면 동양인은 우리 일행밖에 없는 듯했다.

길리트라왕안의 주요 교통수단은 자전거와 치도모.
길리트라왕안의 주요 교통수단은 자전거와 치도모.
길리메노 앞바다에서 스노클링을 즐기는 관광객.
길리메노 앞바다에서 스노클링을 즐기는 관광객.

낮이면 섬 여행객은 인근 길리메노(Gili Meno) 혹은 길리아이르(Gili Air) 섬 앞바다에서 스노클링을 즐긴다. 오리발이 지나간 자국마다 바다는 짙은 초록물감을 짓이겨 놓은 듯 진한 유화를 그린다. 수경을 낀 눈앞에는 확대된 바닷속 풍경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산호 군락 사이로 열대의 물고기가 무리 지어 헤엄치고, 운이 좋으면 바다거북을 볼 수도 있다.

오후 5시가 지나자 섬의 서쪽 해변에 하나 둘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해가 지려면 한 시간도 더 남았지만, 바다엔 서서히 은빛 물결이 일렁인다. 물 위에 세운 그네에 올라 사진을 찍는 사람들(커플 그네 앞에서는 호텔 공식 사진사가 기념사진을 찍어준다), 말몰이꾼을 앞세우고 얕은 바다에서 말타기를 즐기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해변 벤치에서 음료나 맥주를 옆에 놓고 느긋하게 바다와 하늘을 응시한다. 노을 빛을 닮은 쿠션의자에 등을 기댄다. 무거운 몸뚱이가 해가 떨어지듯 자연스럽게 가라 앉는다. 좀처럼 풀리지 않던 어깨의 긴장도 붉은 석양처럼 서서히 녹아 내린다. 검붉은 하늘빛이 어둠에 묻힐 때까지 마법 같은 시간이 이어진다.

석양에서 말타기를 즐기는 여행객들.
석양에서 말타기를 즐기는 여행객들.
바다에 설치한 커플 그네의 주 용도는 호텔에서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것.
바다에 설치한 커플 그네의 주 용도는 호텔에서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것.

섬을 떠나는 날 아침, 누군가는 일출을 보고 왔다며 자랑했다. ‘좋았겠다’며 예의를 차리기보다 최대한 게으름을 즐겼다는 말로 대신했다. 아련한 파도소리와 지저귀는 새소리에 눈을 떴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뿌듯한 아침이었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더욱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광고 카피처럼.

간판 그대로 ‘윤식당’은 한국 여행객들의 성지

다소 후줄근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길리트라왕안은 섬을 한 바퀴 도는 해안도로를 따라 고급 리조트형 호텔과 레스토랑, 카페가 끊임없이 이어져 있다. ‘윤식당’은 주인장 윤여정의 걱정대로 북쪽 해변, 섬에서는 상대적으로 여행객들의 발길이 뜸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도로 일부 구간엔 모래가 쌓여 있어 타고 가던 자전거를 끌어야 하고, 마차 통행도 드물다.

한국인이 인수해 한식당으로 운영하고 있는 윤식당.
한국인이 인수해 한식당으로 운영하고 있는 윤식당.
방송 소품도 그대로다.
방송 소품도 그대로다.
식당 전면은 온통 한국인 방문 인증 글귀
식당 전면은 온통 한국인 방문 인증 글귀

밤늦도록 젊음의 열기로 북적대는 섬 반대편 분위기와 상반된다. 그래서 조용히 해변을 산책하며 완벽한 휴식을 갈구하는 이들에겐 오히려 더 나은 곳이다. 방송 촬영이 끝난 후 ‘윤식당’은 한국인이 발 빠르게 인수해 간판도 그대로 둔 채 한식당으로 운영하고 있다. 라면ㆍ비빔국수ㆍ해물파전ㆍ떡볶이 등을 추가해 메뉴도 다양해졌다. 벽면에는 이곳을 다녀간 한국인들의 인증 글귀로 가득하다. 좋든 싫든 한국인에게 길리의 성지가 된 모양새다.

[여행메모]

●한국에서 롬복으로 바로 가는 항공편은 없다. 최근 직항 전세기를 운항한 대한항공이 10월에도 전세기를 띄울 예정이다. 보통은 자카르타나 발리, 싱가포르를 경유한다. 인도네시아 국내선 비행기로 자카르타에서는 2시간, 발리에서는 25분 정도 걸린다. 발리에서는 길리트라왕안이나 롬복 본 섬까지 페리와 쾌속선도 운항한다. ●롬복(Lombok)의 어원이 현지어로 작고 매운 고추인 만큼 롬복의 음식은 기본적으로 고추와 마늘 양념을 많이 사용한다. 열대지방 특유의 향이 강하지 않아 밥과 함께 먹는 닭과 생선 요리는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맞는 편이다.

길리트라왕안(인도네시아)=최흥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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