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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비린내

입력
2017.01.09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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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속이 좋지 않을 때면 나는 냉동실 속 멸치 봉지를 꺼내곤 한다. 멸치가 담긴 지퍼백을 열기만 해도 비린내가 훅 풍겨온다. 그러면 속이 좀 나아진다. 두어 마리 씹기라도 하면 더 말할 것도 없고. 속이 안 좋을 때마다 멸치 봉지를 꺼내는 나를 보고 친구들은 벙 찐 얼굴을 했다. “그건 뭐 하는 짓이야?” 나도 놀랐다. “그럼 넌 속이 울렁거릴 때 멸치 냄새를 안 맡아?” 나는 모두가 그런 줄로만 알았다. 할머니는 늘 안방에 앉아 TV를 켜놓고 오징어를 찢었다. 우리가 밑반찬으로 자주 먹는 하얀 오징어채 말이다. 동네 할머니들은 오순도순 모여 앉아 흰 살이 두툼한 오징어를 찢었다. 그래서 할머니네 집에 들어서면 늘 비릿한 바닷내였다. 엄마는 새벽시장에서 사온 생선들을 다듬어 옥상에다 한 마리 한 마리 널었다. 우리 집 옥상은 덕장 같았다. 길고양이들의 습격이 흔했으므로 채반에다 널 수는 없었고 빨랫줄에 대롱대롱 매달았다. 고양이들은 아무리 점프를 해도 생선에 발이 닿지 않아 서글프게 야옹야옹 울었다. 노랗게 말린 가자미며 열기, 대구를 커다란 솥에 넣고 찐 다음 엄마는 일일이 손으로 생선살을 발라주었다. 잘 마른 생선들에선 윤기가 반질반질 흘렀다. 엄마 집에 들를 때면 골목부터 그렇게 비린내가 풍겼다. 그러니까 울렁거리는 내 속을 잠재우는 멸치 비린내는 내 태생의 비밀 같았던 거다. 나처럼 비린 것들만 곧잘 받아먹고 자란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묘약 같은 것 말이다. 냉장고에는 엄마가 보내준 가자미조림이 있다. 좋아, 오늘 아침은 가자미조림에 흰밥이다. 고양이가 팔짝팔짝 뛰어도 한 입 깨물지 못했던 그 가자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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