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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리비아 모델 혼선

입력
2018.05.28 18:3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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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정상회담 취소까지 거론된 최근 북미 간 신경전에는 ‘리비아 모델’에 관한 오해와 혼선이 크게 작용했다. 대북 강경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제시한 리비아 모델은 북한 비핵화가 과거 리비아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얘기다. 먼저 완전한 핵포기를 선언하고 검증까지 끝낸 후에 제재 해제 등 보상을 해주는 ‘선(先)폐기, 후(後)보상’이 골자다. 무아마르 가다피 전 리비아 대통령은 이 원칙에 따라 미국과 협상하며 2003년 12월 핵ㆍ생화학무기 완전 포기를 선언했다.

▦ 볼턴은 리비아 비핵화가 진행되던 2001년 5월~2005년 7월 국무부 군축ㆍ국제안보 담당 차관을 지냈다. 리비아 비핵화 선언 직후인 2004년 1월엔 리비아 핵무기 관련 서류와 장비 일체를 미국으로 옮기는 일에 간여했다. 6자 회담을 통한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 방안이 실패했다고 보는 볼턴으로서는 비교적 간명하게 마무리된 리비아식 비핵화 모델이 낫다고 본 셈이다. 하지만 볼턴 주장대로 리비아 모델이 온전히 ‘선 폐기, 후 보상’으로 진행된 건 아니다. 협상과정 중에 이미 체제 보장과 지원 방안이 협의됐다.

▦ 따라서 볼턴의 리비아 모델은 애초 사실관계가 부정확하다. 더 심각한 건 볼턴 언급(5월13일) 후 리비아 모델에 대한 혼선이 더 증폭됐다는 점이다.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헷갈렸다. 그는 지난 17일 “우리는 리비아를 초토화했다. 만약 (북한이) 비핵화 협의를 이루지 못하면 그 (리비아) 모델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리비아가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폐기한 건 2005년 10월이고, 가다피가 축출된 건 그로부터 6년 후인 ‘아랍의 봄’ 때였는데, 마치 가다피가 핵 합의를 하지 않아 축출된 걸로 말한 것이다.

▦ 지난 21일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나서 “대통령이 분명히 밝힌 것처럼 김정은이 합의하지 않는다면 리비아 모델처럼 끝나고 말 것”이라며 가다피 피살까지 암시했다. 이처럼 리비아 모델에 관한 혼선이 턱없이 증폭되면서 초토화 협박까지 나오자 북한이 반발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북한의 ‘분노와 적대감’을 이유로 정상회담 취소 성명을 낸 게 그간의 전말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상황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을 “정말 이해하기 힘든 서양인!”이라고 개탄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은 동양인으로서도 이해하기 어렵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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