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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푸대접받은 저출산 대책

입력
2017.12.07 20: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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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면담을 마친 뒤 방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2일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면담을 마친 뒤 방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년간 “출생아 수가 급감해 인구절벽이 온다”는 내용의 기사만 10번을 넘게 썼다. 했던 얘기를 또 했던 이유는 그만큼 이 문제가 심각해서다. 한 번이라도 더 떠들면 정부ㆍ국회가 그 심각성을 인식해 좀 더 나은 저출산 대책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였다.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1.17명으로 세계 최하위권이고 올해 1.0명을 겨우 넘을 정도로 추락할 게 확실하다. 경기가 침체되면 다음 상승사이클을 기다리면 되지만, 저출산은 기다려도 개선의 여지가 없는 현상이다. 인구감소→내수부진→생산부진→경기후퇴→경제위기 상시화 수순은 알고도 피할 수 없다. 북유럽처럼 원래 인구가 적던 나라와, 인구 보너스를 누리던 한국의 저출산은 그 무게가 다르다.

그럼에도 나랏돈을 어디에 쓸지 결정할 권한을 쥔 국회가 저출산 문제를 대하는 태도는 욕을 먹어 마땅하다. 며칠 전 여야 3당은 5세 이하 어린이 가정에 월 10만원을 지원하는 아동수당 시행 시점을 내년 7월에서 9월로 미루자고 합의했고, 합의대로 예산은 통과됐다.

국회가 틀어버린 건 이것만이 아니다. 당초 소득과 관계 없이 아동수당을 주기로 했으나, 하위 90%에게만 지급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학교급식에 보편적 복지를 적용하면서, 취지가 다를 것 없는 아동수당은 선별적 복지로 치부한 이중잣대다.

5월 대선에서 각 당 저출산 공약이 어땠는지를 보자. 당시 모든 정당은 현금 지원을 통해 부모 양육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을 주요 저출산 대책으로 제시했다. 아동수당(더불어민주당ㆍ국민의당ㆍ정의당), 가정양육수당(자유한국당) 등 이름은 달랐지만 모든 정치세력이 입을 모아 약속했다. 보수 후보조차 “가정양육수당 2배”(홍준표), “초등~고등학생도 1인당 10만원 지급”(유승민)을 얘기했을 정도니.

7개월 만에 입장이 돌변한 것보다 더 우리를 화나게 하는 것은 아동수당 지급이 미뤄진 이유다. 제1야당은 아동수당 신설(7→9월)과 기초연금 증액(4→9월)이 지방선거(6월)에 이용될 수 있다며 연기를 요구했다. 저출산 대책을 엿 바꿔 먹자는 저 뻔뻔함인지 솔직함인지 모를 노골적 요구를 여당과 제3당이 수용하며, 아동수당 시행 시점은 선거와 상관 없는 저 먼 곳으로 밀렸다.

저출산은 투입 가능한 모든 역량을 쏟아 부어도 달성될까 말까 한 과제다. 그런 문제의 해법이 미뤄진 이유가, 재원을 아끼려던 것도 아니고, 복지에 대한 철학 차이 때문도 아니요, 단지 정당의 선거전략 때문이라니. 한국 정당 수준이 이렇다. 한국당이 주도하고, 민주당이 방조해 일어난 참사다. 제3당은 거기서 실익(예산)과 존재감을 챙기는 데 급급했다.

그거 몇 달 미뤄진다고 저출산 추세를 되돌리는데 영향이 있겠냐는 반문도 나올 수 있겠다. 하지만 이번 해프닝을 통해 우리는 비선거철 국회에서 저출산 대책이 받는 푸대접을 똑똑히 지켜봤다. 국회가 저출산 대책에 재를 뿌린 건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지난달 조세소위에서 여야는 자녀세액공제(1인당 15만원)를 2019년부터 폐지하는 데 합의했다. 원래 2020년 말까지 유지될 예정이었지만, 야당이 “아동수당과 혜택이 중복된다”며 반대해 혜택이 쪼그라들었다. 정부는 재정ㆍ세제 중복지원을 해서라도 육아 지원 수준을 높여보자고 했지만, 말이 먹히지 않았다.

이 시대 청년들이 아이를 안 낳고 못 낳는 주요한 이유는 내 몸 하나도 건사하기가 어려워서다. 그래서 국가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 좀 더 직접적 도움이 될 일을 하나라도 더 찾아야 한다. 하지만 주려던 것마저 빼앗는(그리고 자기 지역구 도로예산을 챙기는) 현실을 보면, 이 나라 저출산 대책의 미래는 어둡다. 이 정도 대우밖에 안 해주면서, 도대체 무슨 낯으로 청년들에게 아이 낳으란 소리를 할 것인가.

이영창 경제부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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