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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칼럼] 동물원 휩쓸고 간 고약한 ‘잠’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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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칼럼] 동물원 휩쓸고 간 고약한 ‘잠’바람

입력
2018.03.2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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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 왔다고 모든 동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는 없다. 가끔 그들을 따라 멍 때리는 것도 좋은 동물원 감상법이 되지 않을까.
동물원에 왔다고 모든 동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는 없다. 가끔 그들을 따라 멍 때리는 것도 좋은 동물원 감상법이 되지 않을까.

“엄마! 저기 호랑이는 왜 맨 날 잠만 자? 좀 일어서 봐라!” “얘, 저 하마 좀 봐! 아예 서서 졸고 있네.” “어머 저 사자들 망측하게 배 내놓고 자잖아!”

요즈음 같은 따뜻한 오후 한나절 특히 많이 들려오는 소리다. 이런 말을 들으면 그들 뒤에서 ‘사람들은 잠 안 자나요? 쟤네들은 밤중에 더 활발하게 활동하는 동물이라 낮에는 자야 해요!’ 하는 말이 입안에서 뱅뱅 맴돌다 들어간다. “어머, 웬 참견?” 하는 사람들이 분명 더 많을 테니까. 

동물원에서 이런 황당한 상황을 맞이했다면, 밤에 잠을 청하는 원숭이, 새들에게로 가보자. 물론 걔네들도 그 힘겨운 겨울을 이겨내고 찾아오는 봄날의 달콤한 낮잠을 굳이 마다하진 않지만… 모처럼 동물원에 온 심정은 십분 이해하지만 꼭 모든 동물들을 올곧게 보고 갈 필요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그리고 가끔은 그들처럼 함께 멍 때리는 것도 동물원 감상법 중 하나임을 알았으면 한다.

바닥과 한 몸이 된 하마가 낮잠을 즐기고 있다.
바닥과 한 몸이 된 하마가 낮잠을 즐기고 있다.

야행성인 고양잇과 동물들은 심지어 저녁에도 잠을 많이 잔다. 그들은 생후 20일까지는 아예 눈도 못 뜰 정도로, 날 때부터 잠꾸러기들이다. 특히 지금 같은 덥지도 춥지도 않은 봄날 오후는 잠자기에 최상임을 꼭 사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다 느낄 것이다. 그 잦은 잠 덕인지 몰라도 고양잇과 동물들은 전 세계 어느 환경에서나 무척 잘 적응하는 편이다. (우리 동물원은 그래도 비교적 넓은 편이지만) 우리가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로 야생보다는 훨씬 좁고 비탈진 동물원에서도 사자, 호랑이는 잘 버텨내고 새끼들까지 잘 낳는다. 그건 아마도 환경의 스트레스를 잠이라는 걸로 완충할 수 있는 그들만의 독특한 생존전략이리라.

검은 백조도 아예 바닥에 자리를 깔고 누웠다.
검은 백조도 아예 바닥에 자리를 깔고 누웠다.

약간의 현기증과 함께 눈이 게슴츠레 해지면서 몰려오는 졸음을 쉬이 참을 수 없을 땐 봄날의 따뜻한 오후에 한번 잠시 짬을 내 넓은 잔디밭이라도 걸어보시라. 마침 옆에 벤치라도 있으면 그냥 누워서 5분 남짓 졸다 깨면, 그 청량함이란 이루 말로 헤아릴 수조차 없다. 마치 구름 위라도 걷고 나온 그런 기분이랄까! 복잡한 세상만사가 흐릿해지는 기분도 덤으로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학자들은 이런 봄의 나른함이 긴 추운 겨울을 보내고 갑자기 따뜻해진 봄에 몸이 미처 적응 못해 생긴 부작용이라고 이야기한다. 흔히 ‘춘곤증’이라고 마치 무슨 병처럼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병이 아니라 겨울엔 대부분 실내에서 생활하다 보니 몸이 슬며시 도둑처럼 찾아온 환경 변화를 못 따라가서 오는 것일 뿐, 봄날의 기분 좋은 졸림은 지극히 자연적인 것이다. 

춘곤증을 이기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곰.
춘곤증을 이기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곰.

빛과 외부의 공기에 의해 돌아간다는 우리 내부의 생체시계. 그것에 순응하는 동물들이 이 봄날의 꿀잠을 그냥 놓칠 리는 없다. 특히 바깥에서 긴 겨울을 이겨낸 동물들이야말로 봄은 그 인고에 따른 보상이다. 그 잠 많다던 고양잇과 동물들도 춥고 불편한 겨울에는 그리 많은 잠을 자지 않는단다. 그래서 봄의 여신은 그들에게 달콤한 꿈나라를 선물한다. 따뜻한 한낮이면 호랑이, 사자, 하마는 물론 사슴이나 원숭이, 새들까지도 바닥에 눕거나 혹은 선채로 잠을 잔다. 당나귀가 마치 마네킹처럼 멍하니 서서 잠을 청하는 모습도 무척 우스꽝스럽다. 

검은 백조도 아예 바닥에 자리를 깔고 누웠다.
검은 백조도 아예 바닥에 자리를 깔고 누웠다.

관람객들에게 그런 동물들의 모습을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이니 참고 보라고 한다면 그것 역시도 무리일 듯싶다. 그래서 동물들에게 미안하지만 사람 많은 주말만이라도 잠을 좀 참아보라며 귀찮게 자주 깨우고 다니기도 한다. 대신 주중엔 민감한 그들의 잠을 행여 깨울까 봐 정말 발소리마저 죽이며 다닌다. 

글ㆍ사진 최종욱 야생동물 수의사

(광주 우치동물원 수의사, ‘아파트에서 기린을 만난다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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