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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가장 다디단 얼음 피서, 빙수

입력
2016.05.2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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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은 여름의 불타는 양기를 단숨에 꺾어준다. 그래서 삼국시대부터 조상들은 지혜를 짜내 얼음창고를 만들어 사시사철 쓸 수 있게 했다. 제빙 기술이 들어온 이후로 얼음 창고는 사라지고, 넘쳐나는 얼음을 좀더 맛있게 먹기 위해 빙수가 탄생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얼음은 여름의 불타는 양기를 단숨에 꺾어준다. 그래서 삼국시대부터 조상들은 지혜를 짜내 얼음창고를 만들어 사시사철 쓸 수 있게 했다. 제빙 기술이 들어온 이후로 얼음 창고는 사라지고, 넘쳐나는 얼음을 좀더 맛있게 먹기 위해 빙수가 탄생했다. 게티이미지뱅크

해가 중천에 올랐다. 쩌렁쩌렁한 불볕에 곡성이 절로 나올 판이다. 한국의 여름은 이제 지독하다. 5월이 채 가지도 않았는데 여름이 성큼성큼 와버렸다. 대체 이 땅에서 산 사람들이 여름을 어떻게 났을까. 지금이 신라시대쯤이라 상상해보면 답이 없다. 치렁치렁한 시대 복식이 땀에 푹 절었을 것이요, 농경민족의 본분을 잊은 채 작물 돌보기를 내팽개치고 산 깊숙이 계곡으로 파고들어 피서나 즐겼을 것이다. 복날이 원래 가장 더운 세 날에 일을 하지 않고 시원한 데서 복달임이나 하며 모처럼 배불리 먹고 물놀이나 하는 날이었다.

백성은 놀지라도 왕은 놀면 안 된다. 왕권에 1+1로 따라붙은 책무가 백성을 돌보는 것이니. 이미 기록으로 따지면 삼국시대부터, 한민족의 왕들은 겨울 얼음을 저장해두고 여름에 꺼내 (선택된 일부) 백성의 몸을 식혔다. 얼마 전 백제 시대 얼음을 저장했을 것으로 보이는 유적이 발굴됐다. 신라에서도 건국 초기부터 얼음을 관리했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고려 시대에도 이 불지옥 반도의 얼음 사랑은 이어졌고, 조선 시대에도 이 땅 곳곳에 장빙고(藏氷庫)가 있었다.

불지옥 반도를 식힌 조상들의 아날로그 기술

장빙고는 주로 나라가 관리하는 것이었는데, 꽤나 과학적인 아날로그 냉장고였다. 단열재로 꽁꽁 싸맨 반지하 장빙고 안에서 뜨거운 공기는 위로 빠져나가고 찬 공기는 아래에 머물며 얼음을 차게 지켰다. 얼음이 녹은 물은 경사를 타고 흘러 얼음을 해치지 않도록 돼 있다. 왕들은 계절이 지나도록 녹지 않은 얼음을 한여름에 꺼내 녹으로도 나눠 주고, 상으로도 나눠 줬다.

한양에는 그 유명한 서빙고(지금의 서빙고동)와 동빙고(지금의 옥수동)가 있었는데, 이는 한강에 언 얼음을 바로 나르기 쉬워서였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민간에서도 장빙고를 두기 시작해 한강변을 따라 사빙고(私氷庫)가 30여곳이나 놓여 있었다고 한다. 얼어붙은 대지가 녹는 봄부터 다시 어는 겨울까지, 조상들은 얼음으로 식재료도 신선하게 보관하고 한여름 불덩이 같은 몸도 식혔다. 단, 이때까지의 얼음은 식용이기보다는 과일을 식히는 용기로, 아니면 정말 열불 난 사람의 양기를 잠재우기 위한 ‘음기 약’으로 음복하게 했다.

제빙기술로 마침내 도래한 빙수

조선 멸망 이후로 제빙 기술이 한반도에 도입됐다. 그러면서 장빙고의 필요가 덜해지고, 얼음은 구하기 점점 더 쉬워졌다. 그토록 시원한 빙수가 한국인의 여름 디저트로 자리 잡은 것은 순식간이었다. 옛날 신문을 뒤져보면 이미 1920년대에도 온 장안에 얼음이 흔했다. 여름이면 얼음 한 그릇, 혹은 ‘아이스케키’를 먹다가 배탈이 난 어린이에 대한 기사가 지면을 덮었고, 한 신사가 한여름 공연장에서 더위에 지친 청중들에게 빙수를 시원하게 돌렸다는 미담도 발견됐다.

그렇다. 일제 강점기다. 불편한 역사를 굳이 들먹이는 것은 일찌감치 개항한 일본을 통해 제빙 기술이 넘어왔기 때문이고, 우리의 빙수는 어쩔 수 없이 일본의 빙수 카키코오리(欠き氷)가 원류이기 때문이다. 얼음을 잘게 부수거나 대패, 칼 등 도구로 긁어내 먹기 편하게 만든 후 단 과일 시럽이나 연유를 붓거나 팥, 과일, 양갱 등 고명을 사용하는데, 현재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빙수 종류가 워낙 다양해져 굳이 원조를 따질 필요도 없을 정도다.

빵집이 현재의 카페 역할을 하던 시절을 잠시 회상해 보자. 계절을 여름으로 한정하면 언제나 그 회상 속엔 ‘팥빙수’가 등장한다. 소금과 설탕을 넣어 절묘하게 삶아낸 팥에 오색 젤리, 조그만 떡과 연유, 새빨간 시럽이 올라가고 좀더 멋을 부린 빵집에선 무지개색 가루사탕 스프링클까지 뿌려줬다. 거기에 과일이 추가되면 ‘과일 빙수’가 됐다. 빵집에 빙수 포스터가 붙는 건 분식집에 내걸린 냉면 깃발과 함께 여름이 왔다는 기별이었다.

팥을 쑤고 떡을 써는 독자적인 재료 준비가 ‘비효율’이라는 가치 폄하를 당하며 밀려가자 점차 이 구식 팥빙수는 획일화된 공장 재료로 대체됐고, 미각이 성장기에 들어선 시장에서 힘을 잃기 시작했다. 그 사이 잠시 1990년대를 풍미하던 것은 대학가에서 발원된 한 빙수 집이었다. 과장 좀 보태 대야만한 그릇에 과일이 듬뿍 든 팥빙수를 담고 소프트아이스크림까지 무겁게 똬리를 얹었다. 백화점 식당가로 여름 쇼핑객들을 불러 올렸던 현대백화점의 빙수전문점 ‘밀탑’은 우유와 연유가 들어간 얼음을 곱게 간 ‘눈꽃빙수’의 원조로 꼽히며 여전히 아성을 유지하고 있다.

한동안 잠잠해진 것 같았다. 다시 빙수가 여름의 중심으로 돌아온 것은 불과 몇 년 전부터다. 빙수 전문점이 한두 곳 생기기 시작하더니, 프랜차이즈로 세포분열을 시작해 금세 동네마다 들어찼다. 호텔에서는 고급화, 차별화의 성공 사례가 드디어 나와 호텔 빙수에 대한 대중적 인지라는 블루 오션까지 창작했다. 물론 기존의 카페들, 패스트푸드점 등 빙수를 팔 만한 곳들은 여름이면 모두가 빙수 메뉴를 출시한다. 편의점 업계도 가벼운 가격의 빙수 제품을 저마다 개발해 냉동고에 비치해두고 있다. 빙수는 이제 확고한 여름 디저트다. 대체로 밥보다 비싸고, 대체로 배부르지만, 더운 날 빠져나간 수분, 염분, 당분을 회복하기에 딱 좋다.

옛사람들 하듯이 계곡에 발 담그고 놀기는 어차피 글렀다. 다들 생계 유지 하기 바빠 복날에도 의연하게 일이나 할 판이다. 복 더위의 기억을 5월부터 진저리 치며 떠올릴 정도로 여름이 서둘러 온 올해도 빙수 시장은 요 몇 년 사이의 열기를 이어갈 전망이다. 여름의 빙수는 도시 한 복판에서 즐기는 다디단 피서다.

이해림 객원기자 herimthefoodwriter@gmail.com

호텔로 떠나는 빙수 피서

호텔 빙수는 ‘프리미엄’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재료를 호방하게 꽉꽉 담아낸다. 어차피 여름은 길고, 시대는 ‘스몰 럭셔리’라는 키워드를 내놓았다. 시원한 호사를 ‘셀프 조공’해도 좋다는 합리화의 기치다. 올해 호텔들은 예년보다 한 달 이른 5월부터 빙수를 출시했다. 그 중 이목을 끄는 것을 추렸다.

신라호텔 서울 ‘더 라이브러리’의 망고빙수.
신라호텔 서울 ‘더 라이브러리’의 망고빙수.

2011년 처음 출시된 신라호텔 서울 더 라이브러리의 망고빙수는 ‘호텔 빙수’라는 카테고리를 대중적인 인지 범위로 끌어 올린 주인공이다. 제주도에서 난 것 중 가장 좋은 것을 선별한 어른 주먹보다 큰 애플망고가 듬뿍 올라간다. 먹어본 사람들은 백화점에서 파는 애플망고보다 더 좋은 재료를 썼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꽉 찬 애플망고 맛에, 녹아 내리는 우유 얼음과 연유, 질 좋은 팥이 조화를 이룬다. 올해는 5월 18일부터 판매를 시작했다. 가격은 작년과 동일한 4만2,000원이다.

JW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 '더 라운지'의 돔빙수.
JW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 '더 라운지'의 돔빙수.

JW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 ‘더 라운지’의 돔빙수는 재작년 처음 등장할 때부터 화제성으로 신라호텔 서울의 망고빙수와 자웅을 겨뤘다. 고가의 샴페인, 2005년산 돔 페리뇽을 아낌 없이 사용하고도 모자라 같은 샴페인 한 잔이 곁들여져 나온다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비주얼부터가 호사스럽다. 구름 같은 솜사탕 위에 식용 장미 잎과 금가루를 솔솔 뿌려 낸다. 우유 얼음에 레몬 껍질, 딸기 쿨리(농도가 진한 소스)로 버무린 딸기, 라즈베리와 패션푸르트로 만든 셔벗이 올라간다. 가격은 8만원.

파크하얏트 서울 '더 라운지'의 허니빙수.
파크하얏트 서울 '더 라운지'의 허니빙수.

파크하얏트 서울 ‘더 라운지’를 대표하는 빙수는 허니빙수다. 월악산에서 채취한 벌집을 그대로 올린 풍채부터가 달달하다. 달콤한 사과 퓨레와 바닐라 크림, 구운 피칸이 올라가 달고 시고 고소한 맛의 균형을 이룬다. 가격은 3만6,000원. 함께 대표 메뉴로 손꼽히는 것이 베리빙수다. 다양한 ‘베리’들과 함께 다크 초콜릿으로 맛을 내 여성 취향을 저격했다. 가격은 3만8,000원.

그랜드 하얏트 서울의 요거트 바닐라 치즈 케이크 빙수.
그랜드 하얏트 서울의 요거트 바닐라 치즈 케이크 빙수.

그랜드 하얏트 서울의 로비 라운지에서 맛볼 수 있는 요거트 바닐라 치즈 케이크 빙수는 우유 얼음 위에 요거트 아이스크림, 바닐라 치즈 케이크, 블루베리와 딸기를 가득 얹고 밀크 시럽을 끼얹은 푸짐한 빙수다. 이곳은 ‘그랜드 빙수’라는 이름으로 이외에도 다섯 종의 빙수를 내고 있다. 열대빙수, 레몬 유자 빙수, 전통빙수 등이다. 가격은 2만8,000원부터 3만2,000원까지.

웨스틴조선호텔 서울의 티라미수 빙수와 코코넛 빙수.
웨스틴조선호텔 서울의 티라미수 빙수와 코코넛 빙수.

웨스틴조선호텔 서울 ‘써클’은 티라미수 빙수와 코코넛 빙수를 새로 내놨다. 여름 디저트 시장의 주인공이 빙수라는 점을 강조하는 듯한 티라미수 빙수는 우유 얼음에 마스카포네 치즈 무스를 풍부하게 올려 딱 이탈리안 디저트 티라미수 케이크 맛을 낸다. 코코넛 빙수는 열대과일의 인기를 반영한 메뉴다. 코코넛 워터와 코코넛 밀크를 혼합해 얼린 고운 얼음에 코코넛 칩까지 풀세트로 올리고 코코넛 껍질에 담아내 열대의 정취를 한데 담아냈다. 가격은 각각 2만9,000원이다.

포시즌스호텔 서울이 프랑스식 사과파이를 이용해 만든 타틴 빙수(쟁반 위)와 럼 바 빙수.
포시즌스호텔 서울이 프랑스식 사과파이를 이용해 만든 타틴 빙수(쟁반 위)와 럼 바 빙수.

포시즌스호텔 서울은 여름 내내 기간별로 빙수 라인업 16종을 2주씩 한정 판매한다. 6월 첫 주와 둘째 주에만 판매하는 첫 빙수는 두 가지다. 클래식한 디저트 메뉴인 사과 파이에서 영감을 얻은 타틴 빙수는 설탕과 버터에 졸인 사과를 곱게 간 얼음 위에 올리고 바닐라 마스카포네, 바닐라 아이스크림 두 종류를 얹어 캐러멜 시럽을 부어 낸다. 바 ‘찰스H’의 바텐더 크리스토퍼 라우더가 올려 보낸 알코올 빙수도 있다. 럼 바(Rum Bar) 빙수다. 캐러멜을 넣고 졸인 파인애플과 코코넛 소르베에 구운 코코넛까지 얹었다. 마무리로 화이트 럼과 코코넛 크림으로 만든 시럽을 뿌린다. 포시즌스호텔 서울의 기간 한정 빙수는 로비 라운지 ‘마루’에서 판매한다. 가격은 각각 2만8,000원이다.

사진 각 호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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