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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증세 없는 복지’의 데자뷔

입력
2017.03.09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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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대선이 가시화되면서 유력 대선후보들의 복지공약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문재인 후보는 81만 개의 공공부문 고용을 창출해 역대 정부가 해결하지 못한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과감하고 야심 찬 공약을 제시했다. 이재명 후보는 수십 조 원에 달하는 기본소득 공약을 발표했다. 이재명 후보의 열정에 호응하듯 영국의 가디언은 지난 2월 19일 자 기사에서 이재명 후보를 머스크 테슬라 회장, 라이시 클린턴 정부 노동부 장관, 아몽 프랑스 사회당 대통령 후보와 함께 기본소득의 열렬한 지지자라고 보도했다. 유승민 후보도 용돈 연금으로 전락한 국민연금의 최저 수준을 80만 원까지 올리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대규모 재정 투입이 요구되는 복지공약들이 봇물 터지 듯 터져 나오고 있다.

데자뷔일까? 어디서 많이 본 상황이 재현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세금을 올리지 않고 복지를 확대하겠다는 ‘증세 없는 복지’를 공약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되자마자 재정적인 이유를 들어 자신의 복지 공약을 줄줄이 폐기하기 축소했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하다. 어떤 후보도 증세를 이야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후보와 이재명 후보가 각각 고소득자와 법인에 대한 증세를 주장하지만 수십 조 원이 넘는 복지공약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고소득자에 대한 증세만으로는 부족하다.

권력의 향배를 결정하는 대통령 선거에서 대다수 국민이 싫어할 증세를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스스로 패배의 무덤을 파는 것일 수도 있다. 영국과 일본의 사례를 보면 증세를 공약한 정권이 선거에서 승리한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증세 공약이 반드시 패배로 이어졌던 것은 아니다. 영국과 일본에서 증세 공약이 패배로 이어졌던 것은 증세의 목적이 복지 확대가 아닌 재정적자를 보충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증세 또한 중산층과 저소득층에게 불리한 인두세와 부가가치세와 같은 역진적 방식이었다. 반면 스웨덴은 국민적 동의 과정을 거쳐 복지 확대를 위한 보편적 증세를 실현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증세 여부가 아니라 어떤 증세인가였다. 사실이 이렇다면 유력 대선후보들은 자신들의 복지공약을 실천할 수 있는 재원 마련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더욱이 복지 확대가 단지 대통령 선거를 위한 일회적 공약이 아니라 지속해서 실천해야 할 국정과제라면 최소한 대선후보들은 재원조달의 원칙과 방향이라는 큰 그림은 제시해야 한다.

정치적 조건 또한 이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 대선은 누가 이길지 모르는 박빙의 승부였다. 쉽게 증세를 이야기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하지만 2017년은 다르다. 박근혜 정부의 실패로 대한민국을 개혁하라는 시민의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높고,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가 완벽한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증세 없는 복지 확대는 처음부터 가능한 공약이 아니었다. 세상 어디에도 증세 없는 복지를 실천할 수 있는 사회는 없다.

개혁적 후보는 물론 보수 후보조차 당선 이후에는 관료정치에 포획되어 개혁적 공약을 실천하지 못했던 과거를 생각해 보자. 당선되면 증세해 복지를 확대하겠다는 약속은 또 다른 대국민 사기극이 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당선과 함께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국정을 운영해야 하는 것이 차기 정부의 운명이다. 야당이 증세에 동의하겠는가. 상황이 이렇다면 공적 복지를 확대할 진정한 의지가 있는 후보라면 마땅히 공정한 증세를 내걸고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패배가 두려운가. 그러면 왜 당신이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지 생각해보라. 차기 정부가 박근혜식 ‘증세 없는 복지’라는 대국민 사기극을 재현하지 않으려면 당당하게 공정한 증세의 필요성을 설득해라. 이것이 시민을 위한 정치이고 정책 선거이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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