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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행 이민 길목 막고... 울고 있는 니제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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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행 이민 길목 막고... 울고 있는 니제르

입력
2018.09.03 16:23
수정
2018.09.03 19:44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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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중해 접한 리비아 정세 불안에

EU, 니제르서 이민자 선제 차단

“강력한 파트너십... 95% 줄어”

# ‘이민 특수’ 사라지자 수입 감소

일자리 없어져 마약 등 범죄 늘어

극단주의 세력 파고들 위험 커져

2018년 6월 4일 니제르 북부 도시 아가데즈에서 리비아로 향하는 제3국 이민자들이 차에 타고 있다. 니제르 당국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유럽행을 시도하는 이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일부 밀입국 알선업자들은 당국에 적발되면 사막에 이민자를 버려두고 도망치기도 해 사막에서 사망자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아가데즈=AP 연합뉴스
2018년 6월 4일 니제르 북부 도시 아가데즈에서 리비아로 향하는 제3국 이민자들이 차에 타고 있다. 니제르 당국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유럽행을 시도하는 이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일부 밀입국 알선업자들은 당국에 적발되면 사막에 이민자를 버려두고 도망치기도 해 사막에서 사망자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아가데즈=AP 연합뉴스

아프리카 대륙 북서부, 국토의 절반 이상이 사하라 사막에 걸쳐 있는 내륙 국가 니제르는 한때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각국의 이민자가 몰려드는 요충지였다. 2013년 말부터 시작된 이민 행렬은 2016년 5월 한 달 새 7만명이 지나가며 절정을 이뤘다. 험난한 사막을 건너 리비아로 향하는 이들의 최종 목표는 지중해 너머 유럽이었다.

더 이상 이민자를 받을 수 없다는 불만이 높아진 유럽연합(EU)이 자연히 니제르를 주목했다. 지중해와 접한 리비아는 통합 정부가 없어 통제력을 기대하기 어려우니, 사막 이남 니제르에서 이민자 행렬을 선제적으로 막자는 구상이었다. EU의 압박 속에 니제르는 2016년 8월부터 엄격하게 국경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2015년 통과된 밀수방지법을 근거로 밀입국 알선업자를 체포하고, 이들이 이용하는 차량 200대 이상을 몰수했다. 차량에 탄 이민자들은 경찰서나 국제이주기구(IOM) 산하 임시 캠프로 보냈다.

유럽 입장에서 효과는 뛰어났다. 2016년 니제르에서 리비아로 가는 이민자 수는 33만명이었는데, 2017년에는 1만8,000명까지 줄었다. 2018년에는 1만명 정도다. 안토니오 타야니 유럽의회 의장은 “EU의 재정지원과 강력한 파트너십으로 니제르에서 리비아로 넘어가는 이들이 95% 줄었다”고 자찬했다.

그러나 정작 니제르는 울상이다. 니제르 북부 지역의 ‘이민 특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미국 잡지 애틀랜틱에 따르면 이민자들에게 교통편 등을 제공한 밀입국 알선업자는 물론 이들에게 사막을 건널 보급품을 팔던 상점 주인, 자동차 수리공, 식당 운영자 등이 급격한 수입 감소로 사실상 실업 상태다. 북부 최대 거점도시 아가데즈에서 한 달에 수천 달러를 벌던 아두 아마(40)는 이 매체에 “우리 가족 입에 풀칠할 것이 없다”고 한탄했다.

일자리가 없어지니 범죄도 늘었다. 니제르군 정보문건에 따르면 일자리를 잃은 이들이 주로 찾는 대안 수입원이 마약 밀수나 노상 강도다. 이민 특수의 혜택을 보던 운전사 마하마두 이수프는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에 “일자리가 없어서 도적떼에 가담한 이들을 대략 20명 정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 자신도 실직 상태로 트럭 2대를 압수당했다. 같은 문건은 니제르 내 ‘이민자 루트’에 있던 마을이 교육ㆍ보건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8월 15일 마하마두 이수푸(왼쪽) 니제르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해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회담하고 있다. 유럽은 이민자를 차단하는 니제르에 대규모 지원을 약속했지만 니제르 주민들 사이에서는 아직 투자금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 높다. 메제베르크=로이터 연합뉴스
8월 15일 마하마두 이수푸(왼쪽) 니제르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해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회담하고 있다. 유럽은 이민자를 차단하는 니제르에 대규모 지원을 약속했지만 니제르 주민들 사이에서는 아직 투자금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 높다. 메제베르크=로이터 연합뉴스

니제르 정부와 EU가 이런 상황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민자 행렬이 봉쇄되면서 ‘일자리’를 잃은 이들에게 새로운 사업 기회를 주는 투자를 하겠다고 공언했다. 니제르와 EU의 합의에 따르면 EU는 2020년까지 니제르에 약 10억유로를 투입하기로 했다. 이에 고무된 전직 밀수업자들이 대거 새로운 사업안을 제출해 정부 승인까지 받았지만, 아직 약속했던 투자금은 들어오지 않고 있다. 올 초 사임한 이브라힘 야쿠바 전 니제르 외교장관은 “수백만 유로가 쏟아져 들어온다고 말은 많았지만 정작 국내 산업에는 아무런 변화의 조짐이 없다”라고 말했다.

엄격한 국경 통제의 역설은 니제르만 겪고 있는 일이 아니다.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 등도 느슨하던 국경 통제 정책을 엄격하게 바꿨다. 미국 등 국제사회의 지원으로 수백㎞에 이르는 국경 벽이 설치됐다. 미국 싱크탱크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진단에 따르면, 여기서도 니제르와 비슷한 문제가 발생했다. 국경을 넘나드는 ‘밀수 경제’에 의존해 살아오던 주민들이 살 길이 막히자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국경 개방을 요구했다. 돈줄이 마르자 청년층이 알카에다 서아프리카지부(AQIM)와 이슬람국가(IS) 계열 극단주의 무장단체에 가담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과거의 북서 아프리카 국가의 정부들은 밀수업자의 월경과 밀수품의 거래를 묵인하고 대신 이들로부터 사막을 떠도는 무장단체의 정보를 얻거나, 일부 구역의 치안을 아웃소싱하는 등 나름대로 효율적인 통제를 해 왔다. 그러나 유럽의 압력이 가해지고 극단주의 반군이 창궐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과거처럼 국경을 내버려 두기는 어려워졌다. 문제는 사막 위로 가로놓여 있는 방대한 국경을 모두 감시할 현실적인 방법도 없고, 국경 지대 주민들을 구제할 방법도 없다는 점이다. 극단주의 무장세력이 이런 불만의 틈바구니를 파고들며, 사하라 사막 전역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전근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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