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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후라도 북에 전해지길…” 이산가족 2만명 영상편지 남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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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후라도 북에 전해지길…” 이산가족 2만명 영상편지 남겨

입력
2018.01.29 04:4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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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 1세대 대부분이 90대

생전 모습 등 영상에 담아 기록

‘북 가족에 알린다’로 출발했지만

현재까지 전달된 편지 ‘20편’뿐

후손들의 혈육 확인 용도될 듯

적십자사 “작년 1500편 더 촬영”

북의 여동생에게 전하는 글을 읽으며 눈물짓는 김성호 할어버지. 이산가족 영상편지 캡쳐
북의 여동생에게 전하는 글을 읽으며 눈물짓는 김성호 할어버지. 이산가족 영상편지 캡쳐

벼가 노랗게 익은 벌판이 멋있었던 고향, 황해도 연백. 고향이 참 살기 좋았다는 옥선봉(92) 할머니는 어느 겨울밤 6살 큰아들 석우에게 “돌아온다”고 말하고 피란길에 올랐다. 치맛자락을 붙들며 같이 가겠다고 떼쓰는 석우를 두고 작은아들만 업고 남으로 왔다.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던 길은 막혔고, 이제 석우는 70대가 됐다. 옥 할머니는 그 상황을 설명할 때마다 목이 메고 눈물이 난다. 옥 할머니의 증손녀 김민희씨가 할머니의 편지를 대신 낭독한다. “사랑하는 아들 석우야, 보고 싶구나. 나는 남한에 와서 잘 사는데 너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밥은 잘 먹고 있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정말 궁금하구나. 나 죽기 전에 꼭 한번 보고 싶다.”

대한적십자사가 2013년 제작한 10분가량의 옥 할머니의 영상편지에 담긴 장면이다. 통일부와 적십자사가 2005년부터 신청을 받아 제작한 이산가족 영상편지는 총 1만9,541편. 이산가족 1세대가 초고령화에 접어들면서 죽기 전에 꼭 한 번, 죽은 후라도 이만큼 너를 그리워하고 사랑했다는 것을 알리려는 영상편지들이다. 이산가족의 생전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 기록ㆍ관리하고,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북측과 합의 후 북측 가족에 전달한다는 목표로 사업이 출발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북에 전달된 영상편지는 2008년 20편뿐이다. 결국, 언제가 될지 모르는 통일 이후 이산가족 1세대가 아닌 2ㆍ3세대가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는 용도가 될 가능성도 상당하다.

영상의 내용은 하나같이 애틋하다. 함경남도 흥남에 살았던 김화순 할머니는 큰 오빠 병준씨를 잊을 수 없다. 공장에 다니면서 엄마 생일에 밥을 해놓고 나가고, 동생들을 끔찍이 예뻐했던 자상한 큰 오빠. 피란 길에 오빠와 헤어진 김 할머니는 “예전 뱀에 물렸을 때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는데, 오빠를 못 보고 죽는다는 것만 그렇게 서럽더라”고 했다. 김 할머니의 어머니는 오랜 기간 큰아들을 그리워하다 이미 세상을 떴다.

김천섭 할아버지는 가족이 모두 피란 기차를 타고 남으로 내려왔지만, 군대에 가 있던 18살 형 수명씨는 동행하지 못했다. 수명씨만 북에 남았고, 평생 가족의 한이 됐다. 김 할아버지는 영상편지에서 “형님, 저는 바로 밑에 천섭이요, 천섭이. 형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살아서 한번 만날지, 못 만날지는 모르겠지만 만났으면 원이 없겠습니다”라고 전했다.

평안북도 정주가 고향인 김성호 할아버지는 누이동생 성애씨를 애타게 찾았다. 김 할아버지는 “난리가 나서 엉겁결에 아버지와 나만 떠나오게 됐다”며 “어머니와 동생 곁을 떠나고 그날부터 타향살이가 시작돼서 오늘까지 왔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그는 “누이동생도 아버지도 없고 참으로 험한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희 오누이의 운명이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했다. 까마득한 어린 시절, 학교에 다녀오면서 여동생이 ‘오빠’하고 뛰어오던 모습이 그가 여동생에 대해 생각해낸 기억의 전부이다. 그러나 기억이 적다고 사랑이 크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는 동생에게 쓴 편지를 읽으며 목이 메었다. “우리가 죽기 전에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겠지, 꼭 그날이 오겠지 성애야. 우리 남매 만세! 목이 터져라 불러볼 그날은 꼭 오겠지, 그렇지 성애야.”

최원우 할아버지는 혹시라도 북에 있는 누나와 형을 찾는 데 도움이 될까 아직도 북한 고향 마을의 구조를 줄줄 외고 있다. 그는 “우리 집 좌측으로 두 채가 있고. 정태진이라는 사람 집이고, 다음에 김동운이라는 사람이 있었고”라고 회고했다.

이미 상봉을 했던 북의 가족이라도 보고나니 더 그립다고 담은 영상편지도 있고, 남쪽에서 가족들의 결혼식, 행사, 행복한 모습들을 사진과 함께 전하거나 남쪽 가족들을 소개하는 내용도 다수 담겼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영상편지에 수줍게 등장하는 어린 손주, 증손주들은 언젠가 세대를 넘어서라도 이어질 만남을 약속하는 듯하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애초에 2012년 수요조사를 완료해 2015년까지 모두 찍었지만, 추가로 원하는 이산가족이 많아서 지난해 1,500편을 더 촬영해 지금 후반 작업 중이다”고 설명했다.

이진희 기자 river@hankookilbo.com

북의 아들과 헤어진 상황을 설명하면서 눈물짓는 옥선봉 할머니. 이산가족 영상편지 캡쳐
북의 아들과 헤어진 상황을 설명하면서 눈물짓는 옥선봉 할머니. 이산가족 영상편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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