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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갑질ㆍ폭행’ 릴레이… 재벌 3세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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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갑질ㆍ폭행’ 릴레이… 재벌 3세는 왜?

입력
2017.11.22 04:4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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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 승진 평균 4년밖에 안 걸려

창업자ㆍ2세와 달리 리더십 부족

왜곡된 계급의식ㆍ특권의식 갖기도

‘황제 경영’ 지배구조 개선해야

지난 1월 만취해 술집 종업원을 폭행하고 순찰차를 파손한 혐의로 구속 영장이 청구된 김동선(가운데)씨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 1월 만취해 술집 종업원을 폭행하고 순찰차를 파손한 혐의로 구속 영장이 청구된 김동선(가운데)씨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폭행죄로 집행유예 중인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셋째 아들인 김동선(28) 전 한화건설 팀장이 또 만취 폭행을 저질렀다. 잊을만 하면 터져 나오는 대기업 사주 3세들의 갑질, 폭행 사건은 재벌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막대한 부와 기업 경영권을 물려받고 우리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지위를 갖게 되는 데서 시작된다는 목소리가 새삼 터져 나오고 있다. 이런 낡고 잘못된 관행이 자신은 태어날 때부터 타인보다 우월적 권한을 갖고 군림할 수 있다는 비뚤어진 특권 의식을 버리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김씨가 지난 9월 대형로펌 소속 변호사들의 친목 모임에 참석했다가 만취해 변호사들의 뺨을 때리거나 머리채를 잡는 등 폭행을 한 사실이 21일 뒤늦게 알려졌다. 김씨는 논란이 커지자 이날 입장문을 내고 “피해자들에게 사죄하며 용서를 빈다. 적극적으로 상담과 치료를 받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씨는 이미 수차례 만취 폭행 난동을 벌였고, 그 때마다 “반성하고 열심히 살겠다”는 약속을 반복했다. 올해 1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한 주점에서 만취 상태로 종업원을 폭행했고, 경찰 연행 과정에서 순찰차 좌석 시트를 찢는 등 난동을 부렸었다. 1심 법원은 지난 3월 김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지만, 집행유예 기간 중 또다시 만취 폭행을 저지른 것이다.

재벌 3세의 갑질과 폭행은 고질적인 사회 문제로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12월엔 동국제강 장세주 회장의 장남인 장선익(35) 이사가 술집에서 난동을 부려 입건됐다. 김씨와 장씨의 잇단 폭행이 벌어졌던 당시는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에 대기업들이 연루돼 국민들의 비판 목소리가 커지던 상황이어서 재벌 3세의 일탈이 반기업 정서에 기름을 부은 셈이었다.

김씨의 형 김동원(32) 한화생명 상무도 여러 차례 구설수에 올랐다.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기소돼 2014년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고, 2011년에는 교통사고를 낸 뒤 도주했다가 적발돼 벌금형을 선고 받은 전력이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청계산 보복 폭행’ 사건도 김 상무가 술집 종업원과 시비를 벌인 게 발단이 됐다.

그 외 운전 기사에게 상습 폭언ㆍ폭행한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 ‘땅콩 회항’ 사건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등도 모두 재벌 3세들이다.

재벌 3세의 갑질ㆍ폭행이 유독 두드러진 것은 이들의 성장 과정과 관련 있다는 분석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창업자들은 갖은 고난을 극복하며 기업을 일으키고, 2세들은 아버지가 힘들게 기업 경영을 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며 경영 수업을 받아 일정 수준의 리더십과 기업가 정신을 갖게 된다”면서 “반면 3세들은 대부분 어릴 때 가족의 곁을 떠나 유학을 다녀 온 뒤 경영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아 할아버지 밑에서 밥상머리 교육을 받은 아버지 세대와 달리 투철한 기업가 정신을 갖추지 못했고, 부족함 없이 성장해 무엇을 이루겠다는 뚜렷한 목표 의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저성장 기조가 이어져 계층 간 이동이 줄어들고 부의 세습도 고착화하면서 왜곡된 계급의식이나, 금전 만능주의, 갑질 문화를 당연시하는 소수 특권계층이 생겨났다는 분석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재벌 3세들은 제대로 된 능력 검증 없이 임원으로 초고속 승진해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다. 때문에 우리 경제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기업들이 ‘무자격 경영 리스크’에 무방비 노출돼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업경영평가 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100대 그룹에서 근무하는 사주 일가는 평균 4.2년 만에 임원으로 승진했다. 평균 29.7세에 입사해 33.9세에 임원이 돼 일반 직원보다 17.5년이나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경력이 전혀 없음에도 입사와 동시에 임원이 되는 경우도 11.9%나 됐다.

이런 관행은 사주에게 권한이 집중된 우리 기업 특유의 지배구조 때문에 기업을 더 쉽게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퇴한 대기업 관계자는 “대주주가 그룹 모든 계열사의 경영을 장악하는 이른바 ‘황제 경영’은 일부 문제가 심각한 재벌 3세의 전횡이나 갑질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기업을 어려움에 빠뜨리는 경우가 많다”며 “사주 리스크에 취약한 지배 구조가 바람직한지 고민해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제적 수준에 따라 사실상의 신분이 나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재벌 3세들은 다른 사람들과 신분이 다르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갖게 된다”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스스로 깨닫는 게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무거운 책임을 부여해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갑질을 반복할 때는 그에 맞는 처벌이 이뤄져야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폭행 사건의 파장이 커지자 “자식 키우는 것이 마음대로 안 되는 것 같다. 아버지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무엇보다도 피해자 분들께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한준규 기자 manbok@hankookilbo.com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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