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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신규 순환출자 금지 위반”… 공정위 회초리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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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신규 순환출자 금지 위반”… 공정위 회초리 들다

입력
2015.12.2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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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DI, 삼성물산 주식 500만주 매각해야”

7,250억원 3월초까지 처분해야…블록딜 유력하지만 짧은 시한이 문제

그룹 지배구조엔 영향 없을 듯.. 향후 기한 연장 두고 공방 불가피

국내에서 재벌 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데는 순환출자의 역할이 컸다. ‘A사→B사→C사→D사→A사’ 식으로 꼬리를 무는 출자 관계를 가지고 있으면, 총수 일가는 A사의 지분만 보유하고 있어도 B, C, D사를 모두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점을 찍었던 2013년 국내 대기업 순환출자 고리는 10만개에 육박(9만7,658개)했을 정도다.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기존 순환출자를 끊도록 기업들에게 강제할 수 없었던 건 지분 처분에 따른 지배력 약화 등 파급이 상당할 것이란 현실적인 판단에서다. 대신 정부가 꺼내든 카드는 지난해 7월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도입한 신규 순환출자 전면 금지다. 기존 순환출자까지야 강제적으로 손을 대지는 않겠지만, 이제부터 새롭게 순환출자가 만들어지거나 기존 순환출자가 더 강화되는 건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바뀐 법을 적용한 첫 사례가 국내 최대 재벌인 삼성에서 나왔다. 지난 9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하면서 기존 순환출자 고리가 더 강화됐다는 최종 판단이 내려진 것. 이에 따라 삼성은 새롭게 더해진 순환출자를 2개월여 내에 해소하지 않으면 강도 높은 제재를 받게 되는 다급한 상황에 처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7일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으로 기존 순환출자 고리 3개가 이전보다 강화됐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으로 삼성그룹 전체의 순환출자 고리 수는 10개에서 7개로 줄었지만, 남은 7개 중 3개는 기존 순환출자 고리가 강화됐다고 판단했다. 순환출자가 강화된 고리는 ①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SDI→구(舊)제일모직→삼성생명 ②삼성화재→삼성전자→삼성SDI→구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화재 ③구 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SDI→구 삼성물산 3개다. ①, ②는 삼성SDI의 구 제일모직 지분(3.7%)에 구 삼성물산 지분(7.2%)이 들어오며 삼성SDI가 가진 통합 삼성물산 주식 수가 404만2,758주 추가로 늘어나(4.7%) 순환출자 강화로 판단됐다. ③역시 삼성SDI의 구 삼성물산 지분(7.2%)에 구 제일모직 지분이 들어오면서 삼성SDI의 통합 삼성물산 주식 수가 500만주 늘었다.

김정기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과장이 지난 24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공정위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통해 기업의 합병 관련 신규 순환 출자 금지제도에 대한 법집행 가이드 라인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김정기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과장이 지난 24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공정위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통해 기업의 합병 관련 신규 순환 출자 금지제도에 대한 법집행 가이드 라인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기존 순환출자를 강화하는 계열출자를 한 회사(삼성SDI)나 대표이사는 위반 주식 취득가액의 10% 이내의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고, 3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다만 합병에 따른 기존 순환출자 강화는 유예기간 6개월 내 지분 매각 등을 통해 해소하면 처벌하지 않는다. 삼성SDI의 통합 삼성물산 지분 500만주(2.6%)를 내년 3월 1일까지만 처분하면 법적인 문제가 없어진다는 얘기다.

삼성은 공정위 결정에 몹시 당혹스러워 하는 표정이다. 의도적인 순환출자 강화가 아니라 합병에 따른 부차적인 결과일 뿐인데 너무 잣대가 엄격하다는 것이다. 물론 오너 일가와 계열사 지분을 합하면 지분율이 40.25%에 달해 삼성SDI의 통합 삼성물산 지분을 매각하더라도 지배구조에는 영향이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문제는 공정위의 최종 판단에 4개월 가까이 소요되면서 유예 시한이 불과 2개월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현재 삼성물산 주가(24일 종가 14만5,000원)를 감안하면 주식 500만주는 7,250억원에 이르는 물량이어서 동시에 풀린다면 주가 급락이 불가피하다. 거래상대자를 구한 뒤 한꺼번에 주식을 넘기는 ‘블록딜’이 유력한 대안이지만, 역시 촉박한 일정을 감안하면 제 값을 못 받을 위험이 있다. 일각에서는 이 주식을 이재용 부회장이 사들이거나 합병 당시 삼성의 우군이던 KCC가 총대를 메지 않겠느냐는 관측을 내놓는다.

만약 조기 매각이 성사되지 않는 경우, 기한 연장을 둘러싼 공방은 불가피해 보인다. 삼성 측은 “처리 기한이 촉박해 기한 연장을 공정위에 요청할 방침”이라고 밝혔지만, 공정위 관계자는 “처리 기한을 연장해 줄 법적 근거가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세종=이성택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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