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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칼럼] 대마초의 불운

입력
2017.06.21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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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와 고흐, 풍차와 튤립, 쇼킹 블루(‘비너스’를 부른 록 그룹)와 히팅크의 나라인 네덜란드. 고색창연한 건물들 사이로 운하가 흐르는 이 나라의 수도 암스테르담은 전 세계 대마초 애호가들의 성지다. 인구 100만인 암스테르담에 흩어져 있는 3백50여 개의 커피 숍에서는 예외 없이 커피와 맥주 그리고 질 좋기로 이름난 네덜란드산 대마초나 해시시를 즐길 수 있다. 우리로서는 경악할 네덜란드의 대마초 정책은 이 나라가 약 40여년 동안 보듬고 발전시킨 것이다. 네덜란드는 이 때문에 대마초 불법화를 주도해온 미국과 국제 외교무대에서 늘 부딪쳤다.

뽕나뭇과의 한해살이풀인 대마(大麻)는 인류가 재배한 식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의 하나로, 그 역사는 무려 기원전 8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삼베의 재료이기도 한 이 작물의 줄기는 돛, 밧줄, 그물, 모기장, 천막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1세기부터 대마를 원료로 종이를 만들었는데, 대마로 만든 종이는 양피나 파피루스보다 50~100배 가량 내구성이 강했다. 또 대마의 씨에서 추출한 기름은 식용은 물론 디젤유(油)를 대체할 수 있다. 대마로 직물을 만들 때 쓸모 없는 잎과 꽃은 쳐내게 되는데, 이 부분에 진통을 억제하고 긴장을 푸는 테트라하이드로카나비놀(Terahydrocanabinol) 성분이 있다. 인류는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5,000년 동안 대마를 약용과 기호품으로 사용해 왔다.

대마를 이용한 가장 널리 알려진 기호품이 대마초 곧 마리화나다. ‘취하게 만든다’라는 포루투갈어 마리왕고(Marigunango)에서 기원한 마리화나는 1937년 마리화나 세금법이 공표되기 전까지는 미국에서도 불법이 아니었다. 유현의 <대마를 위한 변명>(실천문학사,2004)을 보면, 미국은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대마 재배와 관련 산업이 융성하던 나라였다. 그러던 미국이 지구상에서 대마 박멸에 앞장서게 된 이유는 화학섬유 회사 듀퐁과 목재펄프 사업에 자신의 이해가 걸려 있던 신문 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가 대마 직물과 대마펄프 산업을 고사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두 거대 기업의 영향력 행사로 대마 재배 농가에 막대한 세금을 물리는 법이 만들어지자 “듀퐁과 허스트는 대마가 사라진 섬유와 제지산업 분야에 무혈입성하게 되었다.”

마리화나 세금법의 목표는 대마 재배 농가를 억제하는 것만 아니라 마리화나 자체를 불법화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보수 정치인과 거대 자본가의 세계관을 반영하는 연방마약관리국은 마리화나 세금법이 재정될 당시 마리화나를 흑인과 멕시코인의 악습으로 덧칠했고, 1950년대 들어 마리화나 상용자에 대한 인종주의적 딱지 붙이기가 통하지 않게 되자 매커시즘에서 새로운 박해의 명분을 찾았다. “공산주의자들이 미국의 10대들에게 마리화나의 사용을 조장함으로써 국가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박정희 정권이 대마초를 불법화하고 대마초 사범을 탄압했다지만, 그의 대마초 불법 정책은 대한민국을 병영 국가로 만들겠다는 박정희 개인의 발상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미국은 1961년 유엔 마약 단일협약을 주도하면서 대마를 마약에 포함시키고 소지와 사용은 물론 유통과 수입ㆍ수출을 불법화했다. “미국의 과격한 반(反) 대마 정책은 유럽과 아시아의 이른바 동맹국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세계적으로 대마는 급속하게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대마초ㆍ니코틴(담배)ㆍ알코올ㆍ카페인(커피)의 약물성분을 비교하는 온갖 연구에서 대마초는 의존성ㆍ금단성ㆍ내성ㆍ강화성ㆍ독성이 두루 낮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강화성과 독성에서만 대마초가 카페인을 근소하게 앞섰을 뿐이다. 중독성과 의존성뿐 아니라 사회적 해악과 사망자 수에 있어서 술과 담배는 대마초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나쁜 수치와 결과를 보여주지만, 지구상 어디에서도 마약으로 취급 받지 않는다. 이는 “마약이 단지 성분과 유해성만으로 정의되지 않는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최근 반 대마초 정책의 발생지인 미국에서 대마초 합법화가 논의되고 있다. “대마초 사용은 머지않은 시기에 합법화 될 것이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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