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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크리스마스 아침

입력
2016.12.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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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실한 크리스천 집안의 큰딸이었으면서도 엄마는 영 교회엘 나가기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박 집사 아줌마는 주일이면 엄마를 데리러 우리 집에 왔지만 엄마는 없는 척을 하느라 TV 볼륨도 줄였다. 예배를 귀찮아하는 동시에 엄마는 죄책감도 함께 느끼는 사람이어서 주일 아침이면 오천 원짜리 지폐를 한 장 꺼내 성경책 사이에 끼워두었다. 헌금 대신이었다. 나는 킬킬거렸다. “그럴 거면 교회엘 가. 가지도 않을 거면서 돈은 왜 끼워놓는대?” 엄마는 눈을 흘겼다. 성경책 사이사이마다 지폐가 가득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엄마는 늘 초코파이 두 상자를 사두었다. 크리스마스 새벽에 골목을 도는 성가대를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엄마는 두꺼운 스웨터를 껴입고 현관을 열고 나가 초코파이 두 상자를 전하고 들어왔다. 성가대는 그렇게 사람들이 전해준 선물들을 근처 보육원에 가져다 줄 것이었다. “아이고, 춥다, 추워.” 엄마는 양말을 다시 벗고 이불 속으로 들어왔다. 멀어져 가는 캐롤을 듣다 말다 다시 잠이 들었다. 나에게 크리스마스 아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내 초코파이는 없어?” 엄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선물은 막내에게나 돌아가는 것이어서 설렐 것도 하나 없었던 어릴 적의 크리스마스. 산타인 척도 한 번 하지 않았던 아빠와 또 박 집사 아줌마가 교회엘 가잘까봐 마냥 떠드는 딸 셋에게 조용히 하라고, 없는 척 좀 하자고 성질을 내던 엄마. 그래서 가만가만 볼륨을 줄여놓고 크리스마스 특선영화를 보던 아침. 종종 그리운 그 아침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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