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개미와 베짱이 그리고 이상화

입력
2018.01.29 04:40
26면
0 0

이상화(29ㆍ스포츠토토)를 보면 ‘개미와 베짱이’ 생각이 난다. 훈련할 때는 한 눈 팔지 않는 ‘개미’ 같은데 성격은 ‘베짱이’처럼 낙천적이다.

2003년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지도자를 할 때 태릉선수촌에서 상화를 처음 봤다. 휘경여고에 다니는 앳된 소녀였다. ‘어떻게 하면 저 녀석을 물건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한참 고민했다. 정답은 ‘지옥 훈련’이었다.

스피드스케이팅은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같은 주요 국제 대회가 1~2월에 열린다. 여름 훈련이 겨울 성적을 좌우한다. 체력이 밑바탕 돼야만 레이스에서 끝까지 안정된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 최근 여자 단거리를 휩쓰는 고다이라 나오(32ㆍ일본)의 상승세 비결을 자세 교정에서 찾기도 하지만 나는 그보다 엄청난 체력 훈련의 결과물이라 생각한다.

이상화는 독한 훈련 프로그램을 군말 없이 소화했다. 정해준 기록 안에 못 들어오면 나는 끊임없이 “다시” “또 다시”를 외쳤다. 처음에 “선생님, 제가 그 기록을 어떻게 깨요”라고 하던 상화는 차츰차츰 0.1초씩 줄여갔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을 앞둔 2009년 여름, 파워를 길러야 한다며 상화에게 스쿼트(허벅지가 무릎과 수평이 될 때까지 앉았다 섰다 하는 동작)로 170kg은 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더니 실제 해냈다. 다른 나라 여자 선수들에게 물어보니 140kg 정도 든다고 했다. 지나가는 말로 상화에게 슬쩍 이야기를 해줬다. 티는 안 냈지만 무척 자신 있어 했다.

입에서 단내 나는 훈련은 강압적으로 시킬 수 없다. 선수들 마음을 사기 위해 훈련 분위기만큼은 밝게 만들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다. 밴쿠버에서 이상화가 금메달을 딴 뒤 기자들에게 “선생님은 웃으면서 시킬 건 다 시켜요”라고 말해 다 함께 웃었던 기억이 난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당시 이상화(오른쪽)와 김관규 대표팀 감독. 연합뉴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당시 이상화(오른쪽)와 김관규 대표팀 감독. 연합뉴스

많은 사람들이 상화를 예민하고 날카롭다고 여기는 듯하다. ‘빙속여제’라는 이미지 때문일까. 실제 상화는 아주 긍정적이다. 동갑인 (모)태범이나 (이)승훈이(이상 평창올림픽 남자 국가대표)와 달리 상화는 혼나도 금방 잊고 털어버린다. 운동선수로 아주 이상적인 성격이다.

상화가 지난 해 여름 훈련을 착실하게 소화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더 기대가 된다. 상화는 이미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다. 10년 가까이 세계 정상급 기량을 유지하며 3연패에 도전한다는 것만으로 이미 대단하다. 8년 전 밴쿠버에서 첫 금메달에 도전할 때처럼 마음을 비우면 된다. 지금 상화가 넘어야 할 벽은 고다이라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다. 상화야, 상화를 이겨라.

김관규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위원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