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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나는 안전한 곳에서 일하고 싶다

입력
2017.05.19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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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실업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전체 실업률은 3.6%이던 것에 비해 청년 실업률은 9.8%였다. 심지어 지난해 1분기 청년 실업률은 11.3%로, ‘IMF 사태’ 당시 청년실업률과 비슷했다. 청년 실업률이 다른 연령에 비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은 알겠으나 문제는 실업률만 줄인다고 해서 열악한 노동환경이 바뀌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저임금, 폭력적인 조직문화, 계약직이라는 복잡한 환경은 청년들을 상시적인 이직준비 상태로 내몬다.

최근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스토리 펀딩으로 연재하는 ‘십 대 밑바닥 노동’ 이야기는 그 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청소년의 일터를 보여준다.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홍수연 씨는 콜 수를 채우지 못해 자살했다. 그녀가 처음 사회에 나가서 마주한 직장은 성과 압박과 온갖 욕을 하며 해지를 요청하는 고객을 붙잡는 일이었다. 현장실습생이라는 이름으로 수습 기간 동안 그녀가 받은 월급은 110만 원. 수습이 끝난 후에는 130만 원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해 5월 서울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중 목숨을 잃은 김군과 드라마 ‘혼술남녀’ 조연출 고 이한빛 PD의 죽음까지. 한국사회는 청(소)년들이 노동하기에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노동 문제는 비정규직이 정규직만 되면 모두 해결되는 것처럼 다뤄져 왔다. 정규직이 되면 안정적 일자리와 노동권을 보장받을 가능성이 열리지만, 정규직도 예외는 아니다. 여전히 일터에서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 폭력적인 언설과 행동, 괴롭힘, 성추행, 성과압박, 시간규율이 강하게 작동한다. “나를 갈아서 만든 회사”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떠도는 것도 과로와 폭력이 일상이 되어버린 일터의 단면을 보여준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고 바로 일자리위원회가 꾸려졌다.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 창출, 근로시간 단축, 일자리 나눔으로 민간부문 일자리 50만 개 창출은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공약으로 내걸었던 정책 중 하나이다. ‘청년고용의무 할당률’, ‘청년구직 촉진수당’ 도입 등 청년층을 위한 지원 정책도 있다. 그런데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소식이 마냥 반갑지만 않다.

그 동안 정책은 주로 일할 의지가 있는 사람들에게만 지원을 해왔다. ‘일을 해야만’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었고, ‘일 할 의지를 증명’해야만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다시 일터로 소환하는 것만이 정책의 임무이자 행정의 성과라고 믿어왔다. 그러는 사이 니트족은 증가하고, 청년들은 일터를 떠났다. 생계가 달린 문제를 두고도 그들이 왜 일터를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묻는 이가 없다. 죽음의 이유를 묻는 이도 별로 없다. 사라진 이들의 빈자리가 애통할 뿐이다.

오랜 취업난으로 일하고 싶은 사람도 있지만, 동시에 일터에서 받은 상처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있는 사람도 있다. 실업급여 기간을 늘리고 보장을 강화하더라도 탈진한 사람들이 다시 자신을 챙기고 일터로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더구나 한국사회는 안정적 노동환경을 위한 프로그램이나, 치료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지 않으니 그 비용과 시간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다.

노동과 이익 그 자체가 사람보다 우선하는 곳은 사람을 잃는다. 내가 바라는 사회는 일을 하다 죽는 사람이 없는 사회, 쉼을 권리로 당연하게 누릴 수 있는 사회이다. 일터에서 어릴수록, 더 빨리 죽거나 떠나는 사람들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에서 노동은 기피와 조롱의 대상이 될 것이다. 나는 안전한 일자리를 바란다. 그리고 노동자들도 너무 애쓰지 않으면 좋겠다. 죽음과 맞바꾸기에 우리의 삶은 너무 찬란하다.

천주희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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