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김이구의 동시동심] 펠리컨

입력
2016.07.08 20:00
0 0

장 보러 갈 때 펠리컨을 데려가세요. 장바구니 필요 없어요. 물건을 사는 대로 펠리컨 부리에 넣어 두세요. 단 물고기만 빼고요. 물고기는 펠리컨이 먹어 버릴지도 모르니까.

펠리컨은 우리나라에 살지 않아서 잘 볼 수 없지만, 커다란 부리 아래가 죽죽 늘어나 반달형으로 커다란 주머니가 되는 이색적인 새다. 이런 새 한 마리 키우고 싶다.

강기원 시인의 ‘펠리컨’은 ‘주머니 속 동시집’으로 나온 ‘토마토개구리’에 실려 있는 작품이다. ‘주머니 속 동시집’은 무엇인가. 어린이문학 작가들과 독자들이 뜻을 모으고 후원하여, “자본에 휘둘리지 않는 출판을 해 보자”는 의욕으로 새로운 출판 형식을 실험하는 ‘출판놀이’의 첫 기획으로 나온 책이다. 공모를 통해 작품을 선정해, 한 권에 동시 딱 열 편을 멋진 그림과 함께 수록한 손바닥만 한 동시집이다. 첫 두 권의 ‘주머니 속 동시집’ 출판을 기념하는 ‘만남의 밤’이 지난 6월 25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성미산 마을극장에서 진행됐는데, 이영애 시인과 강기원 시인의 작품에 꿈휴가 곡을 붙인 노래들을 ‘마을어린이 합창단’이 불러 주었다. 동시가 책 밖으로 튀어나와 아이들 어른들과 어울려 노는 시간이었다. 동시인이 직접 참여하는 ‘작가놀이단’이 도서관과 초등학교를 찾아가, 아이들과 함께 쓰고 그리고 노래 부르고 이야기 나누는 활동을 하고 있음도 알 수 있었다. 와우, 동시가 대단해!

장 보러 가는 데 따라가고 싶어 하는 펠리컨의 마음에는 아이들의 마음이 투영되어 있다. 신기한 물건들을 구경하고 맛있는 것도 사 먹으려는 거다. “절대!/먹지 않을게요”라고 다짐하지만 속으로는 은근슬쩍, 소심하게 “물고기만 빼고”라고 단서를 단다. 검사장도 그룹 회장의 딸도 물고기(정당한 몫)뿐 아니라 주식도 먹고 수십억원도 먹는, 가진 자의 탐욕이 무서운 세상에서 펠리컨의 애교는 안쓰럽기조차 하다.

김이구 문학평론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