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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인류학] 빈곤, 아동학대의 또 다른 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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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인류학] 빈곤, 아동학대의 또 다른 요인

입력
2016.03.28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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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선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 전문의ㆍ신경인류학자
박한선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 전문의ㆍ신경인류학자

18세기 영국에서는 많은 아이들이 죽은 채로 아침에 발견되곤 했다. 잠 자는 중에 엄마가 ‘우연히’ 아이 위로 굴러서 질식한 것이었다. 프랭크 맥린의 연구에 의하면, 당시 영국의 많은 어머니들이 천연두에 걸린 사람의 옷으로 아이를 둘러싸거나 혹은 템즈강에 아이를 빠트리곤 했다. 마음이 약한 부모들은 그 방면에 뛰어난 유모에게 아이를 맡기기도 했다. 물론 유모가 ‘열심히’ 돌보던 아이는 곧 죽었다. 비슷한 시기 프랑스는 보다 우아한 방법으로 어머니들의 필요에 부응했다. 국립병원 입구에 ‘베이비박스(baby hatch)’를 설치한 것인데, 1822년 한 해에만 무려 13만명의 아이들이 이 베이비박스를 이용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의 80% 정도가 일년 내에 ‘여러 가지 이유로’ 사망했다.

유아살해를 포함한 심각한 형태의 아동학대는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보편적으로 관찰된다. 피터 호퍼에 의하면, 구석기 시대 영아살해는 그 비율이 무려 50%에 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영유아살해는 그 은밀성으로 인해 정확한 추산이 대단히 어렵다. 하지만 다양한 이유로 남아를 선호하는 사회의 남녀비를 통해 그 심각성을 간접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 연구에 의하면, 19세기 북부 인도는 남녀의 성비가 평균 3대 1에 달했고 중국 푸젠성에서는 여아의 약 60%가 10살을 넘기지 못했다. 남아라고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남미 테네테라족은 세 명의 아이가 동일한 성을 가지면 안된다는 전통이 있었는데, 따라서 두 명의 형을 둔 셋째의 운명은 참혹할 수 밖에 없었다.

인류사회에서 발견되는 영아살해의 보편성은 많은 학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는 한다. 이는 종족번식이라는 생물학적 기본 전제를 무너뜨릴 뿐만 아니라, 모성애나 부성애라는 문화적 보편가치에도 위배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때문인지 영유아살해에 대한 연구는 그다지 선호되는 연구 주제는 아니다. 대개의 경우는 ‘태어나자마자 시름시름 앓다가 죽은’ 경우나 혹은 ‘우연히 산 속에서 길을 잃어 죽은’ 경우로 취급되기 때문에, 정확한 데이터를 얻는 일부터 쉽지 않다. 게다가 특정 사회에 아동학대나 유아살해가 많다는 식의 연구 결과는 즉각적인 반발을 일으키기 십상이다.

아동학대와 유아살해는 다소 다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은 만성적인 정서적 방임이나 혹은 과중한 학업 강요, 아동 노동 등도 아동학대의 범주에 넣기 때문에 고전적 의미의 학대와는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상당수의 아동학대가 3세 이전의 영유아에게 일어나고 사망으로 끝맺는 경우도 아주 드물지 않다. 실제로 아이를 집에 방치하고 일을 나가거나 혹은 병든 아이를 적극적으로 보살피지 않는 수준의 소극적 방임으로도 영유아사망률은 상당히 높아질 수 있다. 즉 아동학대가 보다 넓은 개념이지만,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비슷한 조건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끔찍한 현상과 관련된 공통된 사회적 요인은 바로 빈곤이다. 물론 계모에 의한 양육이나 혹은 낮은 부성확실성(친부가 아닐 확률이 높은 경우)도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적되지만, 이는 일반적인 유발인자라고 하기는 어렵다. 상당수의 아동학대나 유아살해는 친모나 친부에 의해서 일어나는데, 이는 빈곤, 즉 해당 지역의 식량공급 패턴과 관련이 있다. 또한 부모의 사회ㆍ경제적 위치나 기존 자식의 숫자도 중요한 요인이다. 예를 들어, 거친 땅에서 밀을 재배하던 인도 북부에서는 여아 살해가 광범위하게 일어났지만, 이보다 손쉬운 (여성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벼농사를 짓던 인도 남부에서는 여아 살해 현상이 잘 관찰되지 않는다.

인류학자 낸시 쉐퍼-휴즈는 무려 50년간 브라질 북부의 한 마을의 영아살해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처음 연구를 시행할 당시 많은 아이들은 ‘소홀한’ 양육의 결과로 이내 죽곤 했다. 그곳에서 태어난 약 1,000명의 아이 중 대략 200여명이 생후 1년 내에 소위 ‘작은 천사’가 되어 하늘로 떠났다. 심지어 엄마들은 슬픔조차 잘 표현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결과는 아주 고무적이다. 브라질의 2010년 영아사망률은 1,000명당 약 20명, 즉 십 분의 일로 감소한 것이다. 다양한 이유를 제시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출산율의 저하를 들고 있다. 여성 일인당 여섯 명이 넘던 자식의 숫자가 미국 수준인 약 두 명으로 줄어든 것이다. 피임에 대한 남미 가톨릭 교회의 암묵적인 허용, 그리고 브라질 경제 상황의 호전도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잇달아 보도되는 인면수심의 아동 살해와 학대 사건으로 많은 시민들이 큰 슬픔이 잠겨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일반적인 반응은 부모의 ‘극악성’에 대한 지탄이나 혹은 강력한 ‘처벌’에 대한 주문에 머무르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자신의 자식을 학대하고 잔인하게 시체를 유기하는 등의 죄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긴 역사 동안 모든 문화권에서 지속되었던 유아살해의 이면에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던 인류의 비정한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물론 이러한 생태학적 설명은 여아에 대한 성적 학대나 약물, 계부모에 의한 정서적 학대 등은 잘 설명하지 못한다. 분명 일부 아동학대는 부모의 명백한 정신적 결함에 의해서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아동학대의 직접적인 원인이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에게는 악한 본성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정해야만 한다. 숭고한 모성애라는 신화에 의해서 가려진, 어두컴컴한 인간성을 직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본성 속에 선한 천사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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