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마담 보바리'부터 앤디 워홀까지 모더니즘 120년

알림

'마담 보바리'부터 앤디 워홀까지 모더니즘 120년

입력
2015.08.28 15:42
0 0

작품으로 본 모더니스트 공통점은 권위에 굴복 않는 일탈과 혁신

대항하거나 매혹시키거나 역겁거나 대담함으로 나타나는 자기탐구

모더니즘· 피터 게이 지음, 정주연 옮김· 민음사 발행ㆍ816쪽ㆍ3만5,000원
모더니즘· 피터 게이 지음, 정주연 옮김· 민음사 발행ㆍ816쪽ㆍ3만5,000원

저자의 말대로 모더니즘이라는 문예사조는 정의를 내리기보다는 예를 들기가 훨씬 쉽다. 그것은 ‘워낙 다채롭고 광범위’해서 ‘공통의 기원이나 일관성을 찾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는’, 그러므로 ‘여럿으로 이루어진 하나’ 다.

올해 5월 92세로 세상을 떠난 문화사학자 피터 게이의 ‘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탄생과 성공, 쇠퇴를 다룬 책이다. 시기적으로는 부르주아에 대해 노골적으로 적개심을 드러낸 플로베르의 소설 ‘마담 보바리’가 나온 1840년대부터 앤디 워홀로 대표되는 팝아트가 등장해 고급예술이 더 이상 독자적 영토를 주장할 수 없게 된 1960년대까지, 120년 간의 이야기다.

현대미술에 큰 영향을 미친 마르셀 뒤샹의 ‘계단을 내려가는 나부 2’. 1913년 뉴욕 아모리쇼에 전시했을 때 격렬한 논란과 거부반응을 일으켰으나 지금은 고전이 된 작품이다.
현대미술에 큰 영향을 미친 마르셀 뒤샹의 ‘계단을 내려가는 나부 2’. 1913년 뉴욕 아모리쇼에 전시했을 때 격렬한 논란과 거부반응을 일으켰으나 지금은 고전이 된 작품이다.

한눈에 파악하기 힘든 이 주제에 접근하기 위해 그는 모더니스트들의 공통점을 찾아내 표본이 될 만한 작가와 작품을 불러냈다. 문학 회화 조각 연극 음악 무용 건축 디자인 영화에서 표본을 예시하면서 그가 추출해 낸 공통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단의 유혹, 즉 관습적인 감수성에 저항하려는 충동이고, 다른 하나는 철저한 자기 탐구다.

이단의 유혹은 지배적인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 일탈이고 혁신이다. 이단에 어울리는 수사, 이를테면 반골, 선동가, 급진주의자, 반역자, 아웃사이더, 혁명가, 우상파괴자 같은 꼬리표가 붙는 예술가들의 행진이 이어진다. 저자는 시인 에즈라 파운드가 동료 반역자들에게 선동했던 ‘새롭게 하라’는 슬로건에서 모더니스트들의 열망을 본다. “모든 모더니즘 작품은, 1880년 작이든 1920년 작이든, 동시대인에 대항하거나 매혹시키거나 역겹게 만들었다.”

두 번째 공통점인 철저한 자기 탐구는 주관성, 독창성, 당대성과 연결된다.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는 경향은 예술사 내내 나타나지만, 모더니스트들은 선배들을 뛰어넘는 대담함으로 끝까지 밀어붙였다.

모더니스트들은 대중을 경멸했고 부르주아를 조롱함으로써 분노를 샀다. 이 책에는 그로 인한 수많은 스캔들과 난장판, 비난과 웅변이 줄줄이 나온다. 장면마다 새로운 예술을 옹호하는 소수, 이해하는 척하는 속물, 아예 무관심하거나 몽매한 대중이 뒤섞여 있는데, 저자는 각각의 경제적?사회적?지적?종교적 배경을 개관함으로써 모더니즘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고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설명한다.

한글판 800쪽이 넘는 이 책의 마지막 장 표제는 ‘모더니즘의 부활’이다. 모더니즘은 죽었는가, 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생존 신호를 찾는다. 1960년대 팝아트는 “혁신적인 회화와 평범한 회화, 원본과 복제품, 사회참여적 예술과 예술을 위한 예술을 마구 뒤섞어” 버렸고, 공격적 에너지를 잃었다는 점에서 모더니즘은 죽었다. 사망의 또 다른 징표로 그는 작품이 ‘괴상할수록’ 더 많은 돈을 받고 팔리는 작금의 풍토를 지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할지 모른다는 기대를, 그는 마르케스의 소설과 프랭크 게리의 건축에서 애써 찾아내고 있지만, 확신에 이르지는 못한다.

예민한 독자라면 바로 눈치채겠지만 이 책의 시각은 다분히 엘리트주의적이고 보수적이다. 21세기인 오늘의 현대예술이 영 오리무중이라고 보는 독자라도 이런 인식은 맘에 안 들 수 있다. 하지만 책에 등장하는 질릴 만큼 많은 예술가와 작품과 사건, 그것들을 때로는 삐딱하게 매끈하면서도 품위 있게 풀어가는 문장은 포만감을 준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