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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통일 ‘준비주의’에서 벗어나라

입력
2015.02.27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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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기반을 두지 않는 구상은 망상이듯, 실천에 기초하지 않는 계획은 알리바이일 뿐이다. 망상적 계획은 ‘준비’라는 이름으로 현실적 실천을 건너뛰고 공상의 세계로 진입한다. 박근혜 정부가 ‘준비’한다는 평화통일 정치 이야기다.

정부는 2015년을 “한반도 통일시대를 개막하는 해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실질적 통일준비에 매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올해가 광복 70주년이자 분단 70주년이니 “통일 논의를 확산시켜 나갈 중요한 기회”라고 본다는 것이다. 이에 조응해 통일부는 지난 1월 업무 보고에서 서울-신의주 철도 시범 운영, ‘광복 70주년 남북 공동 기념위원회’ 구성, ‘남북겨레문화원’의 서울과 평양 동시 개설 등을 북측에 제안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런 선언과 발표를 접하며 기대나 열정을 갖거나 감흥과 각오를 다지는 사람이 과연 정부나 통일부에는 있을까? 남북 관계의 오랜 교착 상태와 박근혜 정부의 반복적인 허사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말들의 향연에 헛헛하고 아득하기만 하다. 이미 지난해에도 ‘통일대박론’과 ‘드레스덴 선언’으로 온갖 구상과 계획들이 난무했고, ‘통일준비위원회’라는 기괴한 기구도 등장했다. 다시 올해는 앞의 선언들에 더해 ‘통일헌장’을 제정하고 ‘통일박람회’를 개최하며 ‘평화통일기반구축법’을 제정해 통일준비인력을 양성한다고 한다.

이대로 가면 내년에는 무엇이 나올까? 새로 통일부 장관을 정했으니 또 무슨 구상과 계획이 나올까? 글쎄, ‘통일실행준비위원회’를 만들고, ‘평화통일구상실천법’을 제정하고, ‘전국 통일의 날’을 제정하며 ‘나는 통일 가수다!’로 통일 가요제를 열고 ‘서울과 평양 간 고속도로 건설’ ‘남북 간 상주대표부 설치’ ‘남북 간 합법 이주’ ‘남북 간 우편물 교환’ ‘남북 도시 간 파트너십’ ‘남북한 학생 교류와 대학생 학점 인정제’ 같은 것을 북에 제안하는 것은 어떨까?

한번 망상에 빠지면 꼬리를 물 듯, 준비에 빠지면 그저 준비에 바쁘다. 시험공부를 위해 맘껏 ‘준비’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밤새 공부 ‘준비’하면서 이것저것 찾고 매만지다가 정작 공부는 못한 채 시험은 망친 경험 말이다. 공부한다는 알리바이는 완성되었는데 받은 점수는 냉혹하다, 그것은 일종의 자아도취적 기제고 폐쇄적 자가 상승 동력이다. 현실과 실천에 근거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행하는 일은 없기 때문에 계속 무엇을 할 것인지 궁리하게 되고, 현실적 실천에서 멀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멋진 계획이 마구 떠오른다. 그런 메커니즘을 ‘준비주의’라고 불러도 될 듯하다.

이에 반해 1970, 80년대 서독 정부의 대 동독 정책 선언과 동방정책의 발표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말은 ‘현실적’ ‘실제적’ ‘실용주의적’이란 형용사였다. 서독의 동방정치가들은 ‘준비주의’에 빠질 시간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구체적이고 해결 가능한 문제들에 집중했고 동독과 협상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쌓는 일만으로도 숨이 막혔기 때문이다. 분단의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에 전력을 다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서독 정치 지도부는 ‘통일’이니 ‘통일준비’라는 말들을 망상가의 것으로 간주했다. 그런 유0의 발상과 언급은 동서독 관계의 실질적 발전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비판했다.

그들이라고 왜 공산주의 체제의 인권문제에 무심했겠는가? 그들이라고 왜 베를린 장벽이나 동서독 국경을 넘다 죽어간 희생자의 눈물을 보지 못했겠는가? 그러나 ‘현실적’이고 ‘실제적’이고 ‘실용주의적’ 평화정치가였던 그들은 공산주의 독재자들을 향한 고성과 질타 같은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대신 그들은 동독의 인권 개선과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지속적인 대화와 협상의 최종 결과물로 보았다. 다시 말해 동서독 간 대화와 협력의 전제나 조건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렇게 통일은 장기적이지만 구체적으로 ‘실천’되었다. 망상적 통일 ‘준비’는 ‘평화통일’을 위한 정치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정치가 아니다. 그저 알리바이요 자가당착이다. ‘준비주의’가 아니라 현실적 실천이 통일과 평화의 길이다.

이동기 강릉원주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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