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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5월 모스크바와 9월 베이징

입력
2015.04.05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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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을 부반장 시키자.”

최근 중국 인터넷에 올라온 의견이다. 중국이 제창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부총재 자리를 영국에 주자는 얘기다. 한달 전만 해도 성공 여부가 긴가민가했던 AIIB가 50여개국이 가입할 정도로 흥행에 성공한 데엔 영국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실제로 영국이 창립 회원국 신청을 한 뒤 그 동안 미국의 반대에 눈치만 보던 독일 프랑스 등 서방 주요 국가들과 우리나라, 호주 등이 그 뒤를 따랐다. 중국으로서는 물꼬를 터준 영국이 고마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실 영국은 1840년 아편전쟁으로 중국 침략의 최선봉에 섰던 나라다. 당시의 충격은 청나라, 나아가 중화 사상의 붕괴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홍콩이 영국에 넘어간 것도 이때다. 더구나 영국은 1860년 제2차 아편전쟁, 1900년엔 8국 연합군의 일원으로 베이징(北京)의 원명원(圓明園)을 약탈하고 불태워 중국인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긴 국가다. 원명원은 청나라의 황금기 때 지어진 황실 정원이자 궁궐이다. 중국인은 굴욕의 역사를 잊을 수 없다며 당시의 폐허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100여년 전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은 중국의 원수였다. 그러나 지금은 중국의 비위를 맞추는 데 누구보다 민첩하게 움직이며 중국의 가장 고마운 친구로 변했다. 영국의 변신은 국제 사회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것을 다시 보여줬다. 바뀌지 않는 게 있다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언제든 입장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밖에 없다.

사실 지난해 미국과 쿠바가 국교 정상화 선언을 한 것도 세상의 변화를 실감하게 해 줬다. 50여년 간 국교마저 단절한 채 서로 으르렁거렸던 미국과 쿠바다.

최근 미국 등 서방과 이란의 핵 협상에서 역사적인 합의안이 마련된 것도 같은 예다. 미국은 10여년 전 북한과 함께 ‘악의 축’이라고 지목했던 그 이란과 이제 손을 잡았다.

국제 사회에선 이렇게 불가능할 것 같은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지구에서 딱 한 곳 변하지 않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한반도다. 아무 상관없는 나라들도 어제의 원수가 오늘의 친구가 되고, 한 때의 적과도 손을 잡고 있다. 하물며 남북한은 같은 민족이다. 그럼에도 현재 남북한의 지도부는 마치 지금의 적대 관계가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여기는 듯 보인다. 나아가 이를 더 악화시키는 쪽으로만 행동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사가 그렇듯이 남북 관계도 바뀔 수 밖에 없다. 적어도 남북 지도자는 이러한 긍정적 변화를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남북한 관계를 다른 나라들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남북한 못지 않게 치열하고 잔혹하게 싸운 중국과 대만도 이미 실리적 협력을 모색한 지 오래이다. 대만은 한 때 중국으로부터 수백만 발의 포탄을 얻어 맞았지만 최근 중국에 AIIB 가입 신청서를 냈다. 자존심이 없어서도, ‘원칙’과 ‘격’의 중요성을 몰라서도 아닐 것이다. 대만인의 이익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린 천안함 폭침과 5ㆍ24 조치의 틀에 얽매인 채 여전히 시간만 허비하고 있다. 길게 보고 크게 생각해야 한다.

더군다나 지금 중국은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하나하나 실현하고 있다. 남북이 합쳐도 힘든 때 서로 대립해선 답이 없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추모식장에서 만나 나눈 짧은 악수를 계기로 양국은 적대감을 버리고 국교 정상화로 나아갔다. 한반도의 남북 지도자에게 이런 드라마를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전승 70주년 기념식이 열릴 5월 모스크바와 9월 베이징이 주목된다.

박일근 베이징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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